창밖으론 침침하고 낮게 내려 앉은 회색의 북유럽 겨울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 줄지어 다닥다닥 붙은 빅토리안 테라스하우스의 지붕들이 뾰족 뾰족 솟아 있습니다. 그 밑으론 대개 흰칠을 한 벽과 창문이 보이죠. 그 창문 안으로 제각기 사는 사람들의 일요일 오후 단면이 보입니다. 진공소제기로 카펫 청소를 하는 아저씨, 소파에 널부러져 티비를 보는 아이들, 고양이와 노는 할머니...노란빛 도는 푸른 이끼가 낀 낡은 붉은 기와타일, 혹은 짙은 회색 슬레이트 타일이 얹힌 뾰족 지붕 가운데에는 어울리지 않게 작은 모자처럼 얹힌 회색 굴뚝대가 앉아 있고 거기 붉은 테라코타 기둥같은 굴뚝이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한 집에 서너개씩 솟아 있습니다. 이제 한겨울이 오면 하나 둘씩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할거에요. 많이들 불붙은 가짜 석탄 모양이 나는 전기 스토브들을 놓고 살지만, 19세기식 오리지날 벽난로를 그대로 보존하고 가끔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특히 크리스마스때는 폼으로라도 벽난로에 불을 지피기도 합니다.
우유맛밖에 안나는 밍밍한 캐드배리즈 인스턴트 코코아에 질린 나머지 좀 전에 프렌치 스타일 핫 쵸콜렛 혹은 쇼콜라 쇼를 만들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레서피가 2인분이라 그냥 2인분을 만들었어요. 방법은 우유를 2 1/4 컵, 생수 1/4컵, 설탕 1/4컵을 섞어 중간 불에 끓입니다.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아주 약하게 줄이고, 100g 짜리 다크 초콜렛 바를 잘게 부순 것과 무설탕의 코코아 가루 1/4컵을 넣어 잘 저어 줍니다....그러면 아주 진하고 걸쭉한 따끈한 핫초콜렛을 한 머그 가득 붓고도 흐뭇하게스리 자기 전에 데워 먹을 게 남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씁쓸하고도 달콤한 따듯한 검은 액체가 감각을 지배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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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라디오4에선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L'Assommoir)'이 나오네요. 무슈 쿠포니 제르베즈니 나나같은 친숙한 이름과 함께 아주 오래전에 한글번역으로 읽으면서 불어로 상상하던 인물들이 영국 노던 액센트로 연기하는게 이상하긴 하지만, 어떤 언어든 간에 술주정뱅이 쿠포의 행패를 비롯해서 19세기 프랑스 노동계급의 생생한 묘사는 쉽게 다가옵니다..나나가 가출해서 '매춘부'가 되는 과정은 21세기 한국 청소년들이 '원조교제'로 시작해서 룸살롱으로 티켓다방으로 집창촌으로 흘러가는 패턴하고도 별로 다를 것도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들고, 부자의 정부가 되어 화사해진 나나의 모습에선 토머스 하디의 시 'The Ruined Maid'도 생각나구요. 빅토리안들은 엄격한 도덕률에 비례해서 fallen women에 굉장히 관심들을 보였던 것 같아요. 프리 라파엘라이트 그림에선 심지어 로맨틱하게 다루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더군요...로제티의 'Found'같은 그림 말이에요..
'Found' by Dante Gabriel Rossetti
The Ruined Maid
- Thomas Hardy
"O 'Melia, my dear, this does everything crown!
Who could have supposed I should meet you in Town?
And whence such fair garments, such prosperi-ty?"
"O didn't you know I'd been ruined?" said she.
"You left us in tatters, without shoes or socks,
Tired of digging potatoes, and spudding up docks;
And now you've gay bracelets and bright feathers three!"
"Yes: that's how we dress when we're ruined," said she.
-"At home in the barton you said 'thee' and 'thou,'
And 'thik oon,' and 'theäs oon,' and 't'other'; but now
Your talking quite fits 'ee for high compa-ny!"
"Some polish is gained with one's ruin," said she.
"Your hands were like paws then, your face blue and bleak
But now I'm bewitched by your delicate cheek,
And your little gloves fit as on any la-dy!"
"We never do work when we're ruined," said she.
"You used to call home-life a hag-ridden dream,
And you'd sigh, and you'd sock; but at present you seem
To know not of megrims or melancho-ly!"
"True. One's pretty lively when ruined," said she.
"I wish I had feathers, a fine sweeping gown,
And a delicate face, and could strut about Town!"
"My dear a raw country girl, such as you be,
Cannot quite expect that. You ain't ruined," said 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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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흘러가는 게 맘에 안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비교적 최근에 참여하기 시작해서 몇 년씩 꾸준히 듀나 게시판에 글을 쓴 분들이 느끼는 감회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애정을 갖고 참여한다면 각자 성의 있는 글을 더 많이 올리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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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극장에서 'The Grudge'를 봤습니다. 저는 주온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일본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했다는 정보정도만 알고 갔는데....일본을 배경으로 주인공들만 미국배우로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공포는 잘 번역이 안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Lost in Translation 입니다. 첨엔 까꿍, 놀랬지 효과라도 있었는데, 나중엔 그냥 좀 지루했어요. 제 개인적으로 비이성적인데 호소하는 공포는 별로 재미없어 하는 것도 이유였겠죠.
일본 공포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잃으니까 공포는 전달이 안되고 그냥 어처구니가 없네요. 역시 공포에 질리려고 해도 기본전제에 동의해야 한다, 혹은 생산자와 수용자사이에 짜고 치는 고스톱스러운 공모가 있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게 어디선가 끊어진 퓨전이다보니 본의아닌 코메디가 되었죠. 예를 들어 장화 홍련 속편을 만든다고 그 집에 미국인 가족이 이사해 들어오고, 거기서 형사반장으로 등장한 송강호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한국 액센트 강한 영어로 소녀귀신과 한국식 한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면 어지간히 설득력 있기전엔 꽤 우습겠죠.
일본식 세팅에다 미국배우들을 데려다 놓으니 그사람들은 유난히 육체적이고, 천진난만해보였어요. 그늘없이 곧게 자란 나무들 느낌 말이에요. 비비틀리고, 어둡고, 열등감과 억압된 감정 따위가 조용하게 순응하는 공동체의 그늘에서 폭발해버리는 일본의 공포영화에 문화적 맥락이 다른 인간들을 갖다놓으니 더 그런 느낌이 나죠. 빌 풀만이 등장한지 30초만에 죽어버려서 좀 놀랐고, 사라 미셸 겔러는 다른 영화보다도 더 딱딱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별로 연기할 여지도 없었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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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번 언급한 마이클 페일린의 새 여행 프로그램 '히말라야'는 정말 잔잔한 재미가 있습니다. 페일린 특유의 점잖은 영국식 유머와 히말라야 주변 소수민족들의 삶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한 인류학적인 접근 때문이죠. 중국 변방의 작은 마을의 한의사 할아버지 미스터 호의 영어가 영국에 온지 3년 된 우리 동네 중국인 한의사 영어보다 훨씬 낫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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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님이 추천한 '주느비에브'를 보려고 했는데,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누가 벌써 대여해 갔더라고요. 예약을 해 두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쳇. 대신 '닥터 후' 시리즈를 잔뜩 빌려왔었어요. 덕분에 감기 몸살 주말을 비교적 잘 보내긴 했죠.
어제는 그냥 친숙한 걸 보고 싶어서 맨 처음에 나온 '스타 워즈'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커튼'을 빌려왔습니다. 커튼은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범인이 누군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즐거운 맘으로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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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친구랑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요즘 듣는 음악 얘기를 했습니다. 어제 갑자기 엘비스 프레슬리 앨범을 하나 사고야 말았거든요. 요즘 하는 비비씨 드라마 '블랙풀'에 나온 '비바 라스베가스'의 영향인 것 같지만 말이에요. 이 드라마는 신나고 참신한 이상한 뮤지컬이에요. 배우들은 직접 노래를 한다기보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낸시 시나트라의 노래를 그냥 따라부르죠. 별 볼일 없는 해변가 도시 블랙풀을 라스 베가스로 만들고 싶은 요란한 안티 히어로와 살인사건을 엮은 드라마인데, 첫 에피소드를 저는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클립을 보실 수 있어요.
예전엔 잘 몰랐는데, 엘비스 프레슬리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어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러브 미 텐더'를 듣고 있으면 심장이 초콜렛처럼 녹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남한테 말하긴 창피했지만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는 '촌스런' 노래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어요. 혹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하게 된 가수들의 노래들 말이죠. 조니 캐쉬도 거기 속했고, 심지어 친구는 돌리 파튼을 꼽더군요.
애니멀즈의 'House of Rising Sun'의 '뽕짝'스런 오르간 연주부분과 그 찐득한 정서를 예전부터 좋아했고, 한국 댄스그룹 노래중에서도 매우 트로트스러운 '영턱스'의 '정'도 좋아했다고 하니까 친구도 웃으면서 자기도 실은...하면서 서로 고백이 줄줄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은 심수봉도 이미자도 김추자도 최백호도 나훈아도 좋아한다고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왜 그렇게 대단한 히트곡인지 이제야 알았다는 둥, 이 립싱크 아닌 진짜 가수분들의 특징은 정확한 가사전달이기도 한 것 같다는 둥,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란 노래가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는 둥. 수년 전 한국에선 들은 척도 안하거나 티비나 라디오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껐던 노래들이었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거리가 생기면 이런 식의 새삼스런 '재발견'을 하게되는 모양이에요.
저는 포크송에는 별 매력을 못 느끼겠는데, 70년대 한국적 포크 운동 하던 사람들 중에 유한그루란 가수의 '물레'란 노래를 그야말로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독특한 음색의 가수더군요. 정서는 좀 낯설지만 저한테는 놀라왔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뭐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