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이후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 번역)

  • Cato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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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월스트리트 저널답게 야세르 아라파트를 매섭게 비난했군요. 죽을 때가 다 되었다고 사정 봐주는 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최근에 쓴 칼럼을 번역할까 하다가 사실관계가 좀 더 많이 들어가 있고, 미국의 보수파들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잘 나타나 있는듯 싶어서 이걸 번역하여 보았습니다.

11월 8일자 A14면에 실린 사설인데 온라인 신문도 유료구독자만 볼 수 있게 해 놓은 관계로 별도로 링크를 걸거나(어차피 유료 구독을 하지 않으시면 못들어 가실테니까) 원문을 따로 붙이지는 않았습니다(유료로만 볼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원문을 가져 오면 저작권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관계로^^;; 뭐..번역권을 얻지 않고 이렇게 번역하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걸리는 것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는 눈감아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더라도 원문을 참조하며 이해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아라파트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의 심각하고 아마도 치명적인, 질병이 한 시대의 종언이라고 불리고 있고, 우리도 [이에] 동의했었다. 그것은 9/11 이전의 유명인사 테러리스트 시대의 상징적인 종언이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아라파트의 시대는 2002년 6월 24일 [현]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민주적인 원칙 위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세워져야 함을 요구하였을 때 [끝났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지도자를 만나거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거부하였을 때, 부시 대통령은 평생의 목표가 한 나라(번역자 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인 사람과 함께 일해서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결정은 [이른바] "평화 과정"("peace process") 엘리트들로부터(번역자 주: 전에 말씀 드린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인용부호라고 보여 이른바라는 말을 앞에 붙였습니다)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테러를 [독립국가를 얻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써 [보지 않고 한 번이라도] 거부하는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아라파트의 손에 묻은 모든 피를 일일이 기록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라지만, 그 하이라이트들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11명의 이스라엘 운동선수들을 학살[한 사건], 1973년 수단에서 두 명의 미국 외교관을 암살[한 일], 1974년 스물 네명의 이스라엘 학교 어린이들을 마로트에서 죽인 일, 1985년 아킬레스 라우로호를 납치하여 휠체어에 타고 있던 늙은 미국 시민 레온 클링호퍼를 배 밖으로 던져 버린 일들을 포함한다. 그의 가장 최근의 유산(legacy)은 젊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민간인들을 겨냥한 무기들로 바꾼 자살폭탄테러이다. 여러 해에 걸쳐, 아라파트가 [죽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가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많았는데, [그는] 특히 감히 비 테러리스트적인 전략을 촉진시키려고 한 어떠한 "온건파"("moderates")(번역자 주: 역시 진정한 온건파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라파트와 입장을 달리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쓰인듯 합니다)들을 [숙청했었다.]

9/11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살인사건들이 아라파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었다. 특히 서구의 좌익들에게는, 테러리즘은 민족 해방을 구하는 집단에게는 정당한 전략으로 보였고, 그래서 아라파트는 베레모 대신에 두건(kaffiyeh)(번역자 주: 잘 아시다시피 아라파트는 항상 아랍남자들이 쓰는 두건인 kaffiyeh를 쓰고 다니는데 전 어떻게해서 그런 모양으로 이해가 되는지 자세히 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항상 교묘하게 두건이 팔레스타인 영토 모양이 되게 만들어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팔레스타인 영토 모양은 당연히 두 국가, 두 민족 해결책 평화안들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논의되는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동 예루살렘이 아니라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 전부를 포함한 모양(즉 이스라엘의 절멸을 전제로 한)이라고 합니다)을 쓴 아랍의 체 게바라가 되었다.

1974년, 그는 빈 가죽 권총집을 엉덩이에 차고 유엔에 나타나 "나는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가지와 자유 전사의 총을 가지고 왔다."고 선언했었다. 그에게는 노벨평화상을 비롯한 영예가 쏟아졌고(번역자 주: 아시다시피 1994년에 이차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야세르 아라파트는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노벨평화상이 그 가치를 점점 잃어 가게 되는데 기여한 결정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특히 파리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았다.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이 목요일 병상의 아라파트를 방문한 것은 프랑스가 중동에서 처한 곤경을 웅변한다.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인 동기에서이든지 그의 세계관 때문이든지 간에 20세기의 희대의 살인자 중의 하나를 존중해야만 했다.

이러한 종류의 테러리스트의 쉬크(chic)함은 9/11 이후에는 점점 더 고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 특히 아라파트의 경우에는 2000년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어떠한 팔레스타인인도 [꿈꿀 수 없었던] 가장 너그러운 이스라엘의 평화안을 거부함으로써 [번역자 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기인 2000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안을 성사하기 위하여 바락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중재에 노력했으나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의 평화안을 거부했고(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이 요구해 오던 영토의 90% 이상을 충족시키는 제안이었다고 합니다), 바락은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에게 총선에서 패해 정권을 잃었습니다(역시 토머스 프리드먼에 의하면 협상이 계속 중인 동안에 바락 측에서는 선거에 도움이 될까하여 아라파트에게 바락을 지지하는 제스처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아라파트가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 [평화안을 받아 들이는] 대신에, 아라파트는 [저항운동인] 인티파타를 다시 시작했고, 이제 [인티파타는] 4년째[에 접어 들었다].

[아라파트 사망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마스와 PLO 간의, 다양한 PLO 내부 파벌 간의, [점령지의 자생 파벌]과 "튀니지사람들"(아라파트와 함께 튀니지에서 온 파타 멤버들) 간의 내전에서부터 상대적으로 무리 없이 새로운 지도자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것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권력 이양 시나리오이든지 간에 아라파트가 만들어낸 부패와 끊임없는 테러의 체제와는 결별하는 것이여만 할 것이다.

(번역자 주: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이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의 남부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다가 1982년에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는 바람에 레바논에서 쫓겨나 튀니지로 망명했었습니다. 파타(Fatah)는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 내부의 최대 조직입니다. 그 후 1986-7년 경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으로 점령했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흔히들 점령지구라고 불리는)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라파트나 파타에 관계 없이 자생적으로 이스라엘군에 대항한 저항운동. 인티파타intifada(인티파타 1)를 일으켰고, 총칼을 든 이스라엘 군에게 돌멩이와 맨주먹으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과 이러한 운동이 적어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서는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있던 PLO와 아라파트와는 무관하게 시작되었다는 점이 국제여론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목까지 받아 결국 당시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팔레스타인 대표와 이스라엘이 함께 참여하는 마드리드 평화회담에 이스라엘이 참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2000년 아라파트에 의해 평화회담이 깨질 때까지 90년대 내내 평화무드가 계속 됩니다.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오슬로 비밀 평화협상의 결과 아라파트도 망명지인 튀니지에서 귀국하고 2년 전 이스라엘에 의하여 라말라의 한 건물의 방안에 사실상 연금상태에 놓이기 전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으로 점령지의 치안을 맡기까지 했었습니다. 아마도 아라파트와 함께 망명했던 인사들과 점령지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한 정치세력 간에 갈등이 존재해서 아라파트 계를 튀니지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하는 유혈과 희망 없는 회담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의 오슬로(번역자 주: 위에서 말씀드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오슬로 비밀 평화회담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이래로 중동평화의 전망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바로 옆에서 번영하는 것을 지켜 보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들을 보면서, 일부 용감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라파트의 죽음]을 앞으로 나설 기회라고 볼지도 모른다. 아라파트의 죽음은 적어도 [그런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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