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수님
전시회 선물로 학생들이 다같이 돈을 모아 선물을 사가기로 했습니다. 과대 부과대가 저한테 임무를 떠맡겨버리더군요. 웬수들. 품목은 가장 무난한 화분. 1천원씩 걷으니 3만원 정도 모였더군요. "1천원이라니 너무 적지 않나요?"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요즘 우리 과 애들이 그만큼 금전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저부터도 점심 시간에 악착같이 학교 밥만 먹을 정도이니...
근데 3만원 짜리 화분이 다 크기가 뻔하더라구요. 그래도 나름대로 이쁘다 싶은 걸 사오기는 했는데, 어머니께서 집에 이걸 들고 온 저를 보시더니 "너는 왜 이렇게 생각이 없냐"는 투로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 어이쿠. 그치만 3만원으로 살만한 게 이것밖에 없는 걸요. 그럴듯한 난이나 커다란 화분을 사려면 돈이 얼마인데...
그치만 어머니 말씀을 듣고보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전시회에는 유난히 커다란 화환이며 난초들이 그득그득하잖아요. 이런 큰 화분들이 너무 많으면 짐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예전에 영화사 일할 때 무슨 행사 뒤에 화분 정리하기도 꽤 큰 일이었던 게 생각나는군요.), 그렇다고 다들 큰 화분인데 쬐끄만 화분 하나 달랑 놓여있는게 본의아니게 "성의없어"보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이게 꽃이 핀 것도 아니고 그냥 아주 작은 "나무"거든요. 꽃가게에서는 이게 꽤 예뻐보여서 골랐던 건데, 집에 들고와보니 어머님 말씀대로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이거 혹시 "선물 사가기 싫은데 억지로 사온" 거라도 되는양 오해라도 하시는 게 아닐까...싶기도 하구요. 기우일까요?
전시회 선물로 화분을 한다. 그런데 그 크기가 너무 작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시 실례일까요? 아니면 여기저기 큰 화환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을까요?
2. 김영수 선생님 사진전
'떠도는 섬'이 오늘 오픈했습니다. 저는 내일 가 볼 예정이구요. 30일까지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평창동 갈 생각하니 또 난감해지는군요. 언젠가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했더니만 친구 한 명이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운전기사(!)가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치만 이런 식의 농담, 평창동 사는 분들이 들으면 불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정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거기 사는(& 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거, 참 재미없죠.
각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한국 민중사진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의 개인전"이라는 식으로 소개가 되고 있더군요. "한국 민중사진계"라는 표현, 웬지 재미없지 않나요? 그것도 제 선입견이긴 하겠지만,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민중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할텐데 이런 설명 너무 성의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구... 허긴 어느 작가든지 "xx로 유명한", "yy로 알려진"이라는 식으로 그 길고 풍부한 프로필이 딱 재미없는 한 줄로 정리되어버리는 게, 이런 기사들의 한계이겠지만요. 허긴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옮겨온 국민일보 기사의 끄트머리보다야 낫군요. 이 기사에서는 무슨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있는 나이든 예술가"라도 되는 양 문장을 써놓았더라구요. 건강이 심하게 나쁘신 건 사실이지만 그런 정서랑은 거리가 먼데 말이죠. 어이구야.
3.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인디다큐페스티벌의
'독립영화인 국가보안법 철폐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교조적이고 촌스러우며 음울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심지어 만든 사람들도 제목이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시국이 시국이라" 그냥 그렇게 지었다고 인정한) 제목에 속지 마시길. 이 영화, 올해 최고의 코미디입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가 아니라 아주 작정을 한 코미디이죠. 그러면서도 영화가 만들어진 목적을 잃지 않고 있고, 또한 국가보안법이라는 문제에 대한 다양하고 적절하면서도 깊이있는 분석과 풍자를 놓치지 않고 있는 작품.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번 본 지금으로서는 '송환'에 버금가는 걸작이라고 불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단편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조금씩 결점도 있겠지만, 만든 사람들이 합의하고 의논한 결과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6편의 단편이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작품이 되어버렸거든요. 특히 '우익청년 윤성호'나 '학습된 두려움과 과대망상' 편에서는 그저 웃음의 대상이었던 "수구 우익 아저씨"들이, 'Catch Me If You Can!'편에서는 여전히 웃음의 대상이면서도 실체적인 폭력과 위협의 주체로 보이는 것은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악랄하거나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신념을 비판없이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위협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 주더군요.
단편 중 가장 기대작/ 인기작은 '우익청년 윤성호'였지만, 전 마지막 에피소드인 'Catch Me If You Can'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코믹함이 아닌 정공법으로 남매간첩단 조작사건을 다룬 '남매와 진달래'편도 맘에 들었구요. '나쁜피'는 기대보다 실망이었지만, 6개의 에피소드를 여는 오프닝으로서 그렇게 모자라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4. 제 주위에도 그렇도 여기 오시는 분들도 그렇고 에릭
로메르 좋아하시는 분들 많은 걸로 아는데요. 전 '영국 여인과 공작'과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두 편만 보기는 했지만 로메르 영화와 영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녹색광선이나 겨울 이야기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없는 시간 쪼개서 굳이 챙겨볼 생각도 들지 않고... 특히 모드 집 보러 간 날은 우연치 않게도 아는 친구들이 10명 가까이(약속하고 만나도 5명 모일까 말까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말 좋아서 또 보러 왔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꾸벅 꾸벅 졸았다는 사람도 있어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취향차이겠죠 뭐. 객관적으로 보면 "잘 만든 영화"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만.
궁합이 안맞기로는 지난 주말 ebs에서 한
'키즈 리턴'도 마찬가지.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비슷한 이유로 영화 내내 불편했습니다. 다른 약한 애들을 짖밟으면서 고뇌하는 젊음 티를 내는 주인공이 "무서웠"거든요. 그런 마초 정서야 본래 다케시 영화에 항상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전 다케시의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이렇게 불편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키즈 리턴'을 보고 다케시 영화에 반하기 시작하신 분들이 많은 줄은 알지만, 전 거꾸로 이제까지 몇년을 좋아해왔던 다케시 영화들을 이 영화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5. 거꾸로 반가운 쪽은
루비치 회고전. 이번 회고전 전에는 사실 이름도 잘 모르던 루비치이지만, '죽느냐 사느냐'를 보고 홀딱 반해버린 거 있죠. 서스펜스와 웃음, 모두 최고조였습니다. 덕분에 그의 다른 작품들도 챙겨보았는데요. '천국은 기다려준다', '당신과 함께 한 1시간', '니노치카'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전 작품을 다 챙겨보고 싶을 정도인데, 그럴만한 시간과 체력이 안되는 것이 아쉬울 뿐이네요.
제가 몸이 정말 약하기는 약한가봅니다. 밤을 꼴딱 샌 것도 아닌데, 이틀 연속으로 잠 좀 모자라게 잤다고 어제 하루종일 좀비처럼 걸어다녔거든요. 덕분에
'비키퍼'의 마지막날 마지막회를 보면서 초반 30분은 꾸벅꾸벅 졸고 말았습니다. 비키버 좋더군요. 근데 앙겔로풀로스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 느낌이 달라서 신기했습니다. 역사나 정치색이 덜하면서 한 노인과 젊은 여인 사이의 열정을 다루는 것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모던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꽤나 웃기기도 하구... 그런식으로 늙은 남자의 욕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점잖떨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꽤 맘에 들었습니다. 결말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 '영원과 하루'는 한 주 늦춰져서 19일 개봉인 모양이더군요.
6.
크로마티 고교(정확한 제목은 아마도 '돌격!! 크로마티 고교') 1권 번역본이 나왔길래 잽싸게 구입했습니다. 마초 학원물을 이렇게 홀랑 뒤집어 패러디해버리다니. 어떻게 보면 아즈망가 대왕의 정서를 남학생 학원물 장르로 옮겨온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특히 "대체 이 녀석이 학교 학생인지조차 알수 없는"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등장하면서부터는 웃지 않을 수가 없던 만화. 메카사와의 매력을 한글로 확인할 수 있다니 기분 좋군요.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 종종 꺼내볼 생각입니다. 2권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