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페라의 유령을 97년에 런던의 웨스트엔드 Her Majesty's Theatre에서 봤어요. 지치고 피곤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끌려가서 맨 뒤 맨 꼭대기 자리에서 제한된 시야로 불편하게 봤습니다. 사람들이 무대에서 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다리만 보이는 곳에서요. 옆으로 몸을 눕히고 목을 빼고 봤죠. 아무튼 코를 골지는 않았지만 그때 나왔던 출연진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건 노래 멜로디하고 무대장치에요.
저한테 오페라의 유령은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장치와 귀에 잘 들어오고 오래 기억에 남는 노래, 흥미진진한 멜로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웬지 싸구려 페이퍼백 로맨스 소설을 읽은 느낌을 주더군요. 그게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지만 말입니다.
티비에서 앤드류 로이드-웨버에 대한 다큐를 봤는데 그사람 얼굴이 좀 기괴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과 함께, 그사람이 바로 마스크가 따로 필요없는 오페라의 유령이란 생각이...좀 맹하고 한참 어린 사라 브라이트만과 결혼하고 조련해서 프리마돈나로 키워서 내놓은 것도 그렇고요..
아무튼, 마이클 크로포드는 능력있는 배우이고 오페라의 유령이래 이사람의 배우로서의 범위가 꽤 넓다는 걸 보여주었지만, 저한테 그리고 꽤 많은 영국사람들한테 크로포드는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걸어다니는 재난덩어리, 사고뭉치 코믹 캐릭터인 프랭크 스펜서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프랭크 스펜서는 마이클 크로포드가 젊고 비쩍 마르던 시절인 70년대 초에 'Some Mothers Do 'Ave 'Em'이란 코메디 시리즈에서 연기한 주인공입니다. 시리즈 제목의 의미를 전달하자면 '어떤 엄마들은 저런 (아주 곤란한) 애를 낳기도 하지'정도 되겠죠. 프랭크는 남보다 약간 단순하면서도 좀 유별난 인물이고, 이 사람이 손을 대기만 하면 뭐든지 부서지고 무너지고 망가집니다. 이 시리즈는 지금도 계속 재방송이 되는 바람에 젊은 세대도 익숙합니다. 이걸 보고나면 마이클 크로포드가 뭘해도 베레모를 쓰고 트렌치 코트를 입은, 좀 여성적인 남다른 말투를 쓰는 프랭크 스펜서가 생각날 수밖에 없어요.
생각해 보니 대역없이 모든 위험한 사고 장면의 슬랩스틱 코메디를 해낸 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코믹 타이밍도 좋았고요. 게다 뭘해도 다 망치는 인물이지만 프랭크 스펜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고, 도대체 어떻게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정상이고 이해심 많은 부인과 심지어 아이도 있거든요. 마이클 크로포드는 이런 인물을 정말 실감나게 잘 연기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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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bbc.co.uk/comedy/guide/articles/s/video_clips/somemothersdoave_7775905_1.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