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책 [1894 경복궁을 점령하라]와 국사 교과서에도 안나오고 나와도 이해못할 역사이야기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은 새벽에 기습적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협박,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내각을 구성하고 개혁(일본애들 주장으로는)을 단행합니다. 이게 교과서에 실려 있는 갑오개혁, 혹은 갑오경장입니다.
그런데 이걸 읽다보면 궁금하실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한성과 왕궁을 지키던 조선군은 뭐했지? 사극에서보던 것 처럼 총 발 쏘니까 다 도망쳤나? 당시 조선의 중앙군은 통위영, 장위영, 총어영, 경리청 등의 4개영이 있었고 장위영과 총어영의 병졸만 각각 4천명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경복궁은 별도로 평양 포수 출신 5백명이 경비하고 있었고요.
그럼 이 많은 병력이 어떻게 되었나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의 국가원수이자 군통수권자인 고종 자신이 해산시키고 각 병영의 시설과 무기, 탄약 일체를 일본군에게 넘겨버렸습니다. 일본 공사 오토리의 협박이 있었다지만 부시 2세 보다 더 멍청한 인간 아닐까요?
나카츠카 아카리의 저서 [1894, 경복궁을 점령하라]에 따르면 일본군이 궁궐 침입은 시작과 동시에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오전 4시 20분부터 경복궁을 수비하던 조선군은 궁문을 부수려는 일본군에게 발포를 시작하였고 (일본측은 조선군이 먼저 발포해서 자위차원에서 공격했다고 하지만 남의 나라 왕궁 앞에서 먼저 무력시위를 한건 일본군이었습니다.) 오전 7시 30분까지 교전이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측은 15분만에 제압했다고 거짓발표를 하였습니다.) 고종은 함화당이란 건물에서 일부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는데 일본군 대대장 야마구치는 조선군을 해산 시키고 무기를 넘기지 않으면 돌격하겠다고 협박, 결국 고종은 병사들에게 무장해제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에 따르지 않아서 일본군이 왕궁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오전 9시가 넘어서 였습니다.
게다가 이 소식을 접한 다른 병영의 군사들은 하도감에 모여서 "궁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데다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산하면 일본군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대포를 설치하여 방어하며 일본군이 병영을 빼앗으려 오면 다같이 죽기로 싸울 것이다."라고 결의하였고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일본군은 조선군이 예상외로 격렬하게 저항하자 당황하였습니다. 한성에 있는 조선군의 숫자는 일본군과 맞먹을뿐만 아니라(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군 주력은 약 8천명의 혼성여단이었습니다.) 무기도 서양식 소총과 대포를 보유하여 일본군과 싸워도 밀리지는 않을뿐더러 조선군이 병영에서 뛰쳐나와 시가전을 벌이고 시민들이 여기에 협력하면 서울 지리에 어두운 일본군이 이기기 힘들거란건 불보듯 뻔한 것이었으니까요.
이러자 일본 공사 오토리는 고종을 위협해서 부대 해산과 무장해제를 지시하게 합니다. 병사들은 이 어처구니 없는 소식에 (당연하죠, 왕이란 자가 자기를 구하겠다고 싸우는 병사들에게 무장해제하라고 지시를 하다니요.) 울부짖으며 총과 칼을 부수고 (그냥 두면 일본군이 차지할테니)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일본군은 더 이상 막는 사람이 없자 종횡무진으로 서울을 누비며 궁궐이며 관청의 문서와 재화, 심지어는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쓰는 그릇까지 약탈해 가져갔습니다.
어때요? 도저히 상상이 안가죠? 예, 저도 상상이 안가요. 일국의 국왕이라는 사람이 군사들에게 "지금 일본군이 궁성을 점령하고 나와 중전을 인질로 잡고 있다. 어서 싸워 궁성을 돠찾고 종묘사직을 수호하라. 앞장 서서 공을 세운자에게는 포상과 벼슬을 내리겠고 뒤로 빠져 일신의 안위만 찾는 자에는 엄벌을 내리겠노라." 라고 지시 한번 못합니까? 장군이니 대신이니 하는 자들이 싸움 한번 해보지도 않고 나라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수도와 왕궁을 내줘요?
물론 오만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종이 인질로 잡혀 있다느니, 설령 왕궁에 침입한 일본군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나중에 더 많은 일본군이 처들어올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느니, 일본군과 싸우다가 지면 더 큰 화가 닥쳐올거라느니, 우리는 지금 일본과 싸울 힘이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느니 등등의 의견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당시 김홍집을 비롯한 엘리트 관료들은 거의 이런 생각으로 일본에 협조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결말과 조선의 결말은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계실겁니다.
당시 고종이 취해야할 행동은 일본군을 몰아내고 나라의 독립을 보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왕가만을 생각한 결정을 내렸고 대신들은 자신과 가문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은 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되었고 일본군은 나중에 침략의 걸림돌이 될 동학군을(무기가 보잘것 없건 일단 애국심과 반일정신이 투철하니까) 처치하러 전라도 일대를 누비면서 무차별적인 학살, 방화, 약탈, 강간을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꼭 이라크 이야기하는것 같네요.)
그리고 지금도 이 나라의 자칭 엘리트라는 국회의원, 재벌, 대학교수, 신문기자 등등의 인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당시의 친일파 대신들과 별다르지 않아보여서 더욱 씁쓸합니다. 꼭 소설가 김완섭이나 서울대 교수 이영훈처럼 친일망언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1894, 경복궁을 점령하라]는 일본인이 일본 과거사를 반성하기 위해 청일전쟁 당시 사료를 연구하다가 찾아낸 조선왕궁점령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써낸 책입니다. 이 책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왜 역사는 바로 쓰여져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뒤집어 쓰려는 사람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