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 넘어서 여전히 굉장히 근사하게 나온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The Mrs. Bradley Mysteries'에 탐정으로 나온 거에요. 20년대말을 배경으로 한 맛깔스런 탐정물인데, 원작의 건조하고 냉철하며 따뜻함을 속으로 숨긴 무시무시한 페미니스트에 더해 이 시리즈의 주인공 다이나아 리그의 브래들리 부인은 화려한 멋쟁이에다 우아하고, 아주 쿨하기도 합니다. 탐정물에 흔한 다소 어벙하지만 든든한 상식을 가진 사이드킥은 브래들리 부인의 운전수 조지이고요.
브래들리 부인 시리즈를 보고 도서관에서 글래디스 미첼(Gladys Mitchell)의 원작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책에선 브래들리 부인이 굉장히 못생겼으며 천재적인 심리학자이자 의사이고 아마추어 탐정이라고 나옵니다. 미첼의 원작에선 여자들이 근육 쓰는 일도 많이 하고,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거리낌없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레즈비언 텍스트도 풍부하고요. 약혼 반지에 대해 '그런 굴종의 표시를 공개적으로 끼고 다니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기도 해요. 1920년대 영국의 '노처녀' 학교 선생이 쓴 소설임을 감안하면 꽤 급진적이더군요. 겉보기엔 얌전하고 정신없는 할머니인 체하면서 무서운 냉정함과 지력을 숨기고 항상 사과를 해대는 미스 마플과 달리 브래들리 부인은 위압적이고 유별한 인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로서 엄청난 권위를 행사합니다. 본인이 부자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며 남편과는 일찌감치 이혼하고 의사로서 명성을 쌓은 사람으로 나오거든요. 소설로서는? 물론 아가사 크리스티쪽이 훨씬 더 재밌죠.
비비씨 시대극엔 늘 볼거리가 많지만, 이 시리즈는 살인사건 수사보다도 다이아나 리그의 20년대풍 의상과 모자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내내 눈이 즐거웠습니다. 정말 원없이 멋있게 옷을 차려입고 나온다 싶더군요. 첫번째 에피소드, Speedy Death에는 남장 여자가 나옵니다. 탐험가가 되고 싶은데 여자라고 안 시켜주니까 아예 남자로 사는 사람이 나오죠. Death at the Opera에선 자기 옛날 학교로 초청받아 가서 여자애들한테 남자한테 얽매이지 말고 자기 능력을 펼치라고 연설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