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속의 다이크 소녀

  • 귤과레몬
  • 12-16
  • 1,579 회
  • 0 건
안데르센 동화 중 무엇을 가장 좋아하세요?
무엇이 가장 인상에 깊이 남아있나요?


아마도 저에겐 '장미요정'과 '눈의 요정'이었던 듯 합니다.

여동생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한 남자를 살해한 오빠.
죽은 애인의 잘린 목을 화분에 심어놓고 그 위에 꽃을 피운 여자.
그 꽃이 피고 꽃 속에서 요정들이 나와 오빠를 살해하죠.
기묘한 복수의 완성.

'장미요정'의
그 음습한 로맨티시즘과 기괴한 느낌은 어린 시절 나를 홀렸죠.



'눈의 여왕'의 매력에 대해서는 음,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이들의 어린 환상 속에 새겨져 있는 듯 하니까요.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나눴어요.

"넌 눈의 여왕에서 누가 가장 좋았니?"
"난, 눈의 여왕. 너는?"
"글쎄. 겔다는 아니었다는 건 확실해"
"누가 겔다 따윌 좋아하겠어"
(친구는 이상한 말투로 투덜거렸습니다. 하긴 눈의 여왕을 좋아했다면
겔다가 반갑지 않았을 수 있지요.)
  "..아, 맞다. 기억났어. 산적의 딸이 가장 좋았어!"

그러고 나니 그녀가 무척 보고 싶어졌어요.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오,  '눈의 여왕'과 '장미요정'이 한데 묶여있는
안데르센 동화 완역본이 있었습니다. 옛사랑이 다시 화르르 피어나고 --

당장 사서 행복하게 다시 읽었습니다.

'장미요정'은 내 기억과 조금 달랐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 읽은 책은 축약본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냉정하게 사건만 서술했던 축약본이 더 강렬했답니다.
그러나

다시 만난 '눈의 여왕'은,
그 속의 산적의 딸은 여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이유까지 포함해서요.

- 이 산적의 딸, 아무리 봐도 다이크 소녀같은 거예요 :)


산적들이 겔다의 마차를 덮치고 겔다를 죽이려 할 때
산적의 딸이 막아서지요.
"이 애는 나와 놀 거야! 이 아이는 토시와 예쁜 옷을 내게 줄 거야.
그리고 내 침대에서 같이 잘 거야"

거칠고 난폭한 산적의 딸,
그녀의 대사는 정말 강렬합니다.

겔다를 끌어안고 산적의 딸은 말하죠.
"난 네가 싫어지기 전까지 아무도 너를 못 죽이게 할꺼야"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말을 고칩니다.
"난 네가 싫어지더라도 아무도 너를 죽이지 못하게 할 거야.
그럴 바에야 내 손으로 직접 널 죽이겠어"

그리고는 겔다의 눈물을 닦아주고 겔다의 토시 속에 자신의 두 손을 찔러넣었다고 합니다.

잘 때도 겔다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잠들었다고 써있군요...


아니, 이거 너무 명백하잖아요!


산적의 딸과 함께 잠자리에 누워있을 떄 겔다는 숲비둘기와 순록에게 카이의 행방을 듣습니다.
겔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말하죠.
"아, 카이, 보고 싶은 카이!"

이 말에 대한 산적의 딸의 반응은?
"조용히 해! 안 그러면 칼로 배를 찔러버릴 거야"

...아, 물론 졸린데 시끄러워서 한 말일 수도 있지요
아닐 수도 있구요 :)


그러나 결국 산적의 딸은 겔다를 카이에게 보내줍니다.
그 건..그녀에게 대단한 애정의 표현이겠지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은 다 자신의 곁에 묶어두는 타입이었거든요.

비둘기들도 순록도 다 묶어놓습니다.
"이거 다 내 새야. 단단히 묶어두지 않으면 곧바로 달아나 버리거든"
"이쪽은 내 오랜 친구야. 이 녀석도 꽁꽁 묶어 둬야 해. 안 그러면 당장 달아나 버리니까"

  
그러나 다음날  그 순록을 풀어 겔다에게 내어줍니다.
"뭐, 아무래도 좋아" 라는 말을 세번이나 반복하며 겔다를 보내주죠.

아무래도 좋기는 뭐가 아무래도 좋겠어요.
대신 겔다의 토시를 갖겠다고 합니다.
이 역시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뭔가, 애틋하더군요.




산적의 딸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산적의 딸은 키가 겔다와 비슷했는데, 훨씬 힘이 세고 어깨도 딱 벌어졌으며
피부는 짙은 구릿빛이었어요.
하지만 새카만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어 있었습니다"

(...전형적이군요;;)



당장 팬픽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에 들떴지만.

눈의 여왕 동성팬픽을 쓴다고 누가 읽어주겠어..싶은 마음에  -_-
발견의 기쁨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이름 모를 산적의 딸, 부디 좋은 아가씨 만나길 -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6969 케빈 베이컨 게임 방구석 1,006 12-17
6968 잡담 추가... 오랜변비 547 12-17
6967 잡담012 최원일 602 12-17
6966 모니터는 어느 회사 제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을까요? 새치마녀 937 12-17
6965 제가 사용하는 키보드임다. drlinus 1,425 12-17
6964 카툰 네트워크의 puffy amiyumi 다리아 딜버트 554 12-17
6963 목소리 하나로 먹어주는 보컬 레쓰비마일드 1,604 12-17
6962 소소한 이야기들 jake 673 12-17
6961 이런저런 샹난 1,134 12-17
6960 새 주미대사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내정 새치마녀 1,008 12-16
6959 가장 공포스러웠던 시험 문제 KANA 2,332 12-16
6958 중얼거리는 사람들 kije 1,364 12-16
6957 여유시간 여행하기 푸른날의 기억 775 12-16
열람 '눈의 여왕' 속의 다이크 소녀 귤과레몬 1,580 12-16
6955 외국인들 "코리아 나빠요" creep 1,325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