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이네요. 올해 서울시 공무원 9급 시험 봐서 올해 임용받아서
동사무소에서 근무한 지 3달 째 되는 공무원입니다. 우리 공익 한 달 넘게
무단으로 오지 않아서 정신없이 바빴는데 다행히도 이제 다시 돌아와서 조금
편해졌네요. 그래도 우리 공익은 늘 지각하지만 뭐 -_-;; 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아침 일찍 매일매일 출근하는데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라 그런지(동사무소 민원대 앞에
앉아 있거든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웃기는 일도 너무 많고요.
그러니까 해프닝이나 일 그 자체가 웃기는 일은 아닌데 웬지 저는 계속 재밌습니다.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게임, 다양한 반응 그리고 인간관계 사이의 권력싸움(?) 이랄까
참 설명하기 힘들지만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은
처음 만나 보고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걸 목격합니다.
무슨 매일매일 순풍산부인과나 똑바로 살아라를 찍는 기분입니다. 일상 속에서 숱한 오지명, 박영규,
노주현, 홍리나, 려원이, 김간호사, 영란이를 만나는 느낌입니다. 아니 그 사람들보다 더 특이하고
더 재밌는 사람들같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평범하면서도 다 제각기 달라서 가지각색의
사정을 안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도 가끔은 이상해질 때도 있고(저도 가끔 제 자신을 돌아보면 이상한 짓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서로간의 오해가 생겨서 이상해 보일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제 생각에 [XX동사무소]나 [동사무소 직원은 해결사!] 이런 제목으로 시트콤 하나 만들면
순풍이나 똑살 만큼 대박날 것 같습니다.(이런 말을 옆 직원에게 하니 막 웃으면서 니가 써봐!
라고 하시더군요.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비록 재능은 별로 없지만. -_-;;)
예를 들어서 [에피소드 1: 어느 시의원의 전화], [에피소드 2: 왜 그녀는 주민번호를 바꿔야만 했나],
[에피소드 3: 주민등록 말소자의 비애], [에피소드 4: 인감은 어려워!] 이런 식으로요. -_-;;
시의원이니, 구의원이니, 어디어디 직함 하나 달고 있으면 와서 무조건 일 빨리 간편하게 해결해주길
바라는 경우도 있고, 주민등록 말소되었다고 동사무소에서 와서 자긴 세금 다 냈는데 왜 말소시켰냐고
난리난리 친 분(나중에 본인이 체납된 세금 고지서 출력해달라고 하셔서 조회해보니 체납된 세금이 170만
원이였습니다. -_-;; 아 그리고 참고로 말소는 세금이랑 상관없습니다. 이 분의 경우에는 우리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취해봤고 말소 자체는 정당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도 있습니다.
비오는 날에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님이 오셔서 등본 떼면서 갑자기 집나간 할아버지를 찾아달라고
우시면서 난리 치신 적도 있고 대형폐기물 신고했는데 왜 안가져 가냐고 20분 가까이 전화로 항의하셔
서 제가 저희 동에 신고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밖에 나가서 딱지좀 보고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확인 좀 해달라고 하니까 '이미 가져갔네... (침묵 3초)' 그리고 뚝 하고 끊기는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하여간 다사다난한 나날들입니다. 재밌어요. 스펙타클하고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에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이 나타날까 기대될 정도입니다. ^ ^ 제가 일해보면서 느끼는
게 왜 공무원이 욕먹는지도 알겠어요. 저도 일하는 입장이라 다른 행정기관과 전화해서 업무연락을
취할 때가 많은데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고 상식적이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물론 또 정말 친절한 분들도
있고요. 이건 제 생각인데 일반 민원인들 중에서도 이상한 사람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 것
처럼 공무원들도 이상한 사람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접하는 공무원들은 그 개인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무원의 대표처럼 느껴지고 거기서 받는
느낌이 공무원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남기 때문에 공무원 전부를 좋게 또는 나쁘게 인식하는 걸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요. 그런 의미에서 더 친절하고 열심히 책임감 있게 제 일에 임해야 겠죠.
행정이란 것, 법을 집행한다는 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공정하고 신중하고
꼼꼼하고 깐깐하게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흠.
일을 하면서 사회를 배우고 세상을 알고 막연했던 것들이 구체화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떤 방식으
로 문제를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힌다고 해야하나 그렇네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일에서 의미를
찾고 보람을 찾는 것도 제 몫이고 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좀더 읽기 좋고 편한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본다든지, index를 만들어 서류를 정리한다든지, 증명서의 종류에 대해서 공부해본다든지
하여간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재미난 것도 많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조금씩 조금씩 터득하는 기분이라
신나요. 요즘 집에 돌아오면서 쌀쌀한 날씨에 추운 겨울 도로에서 노점상하시는 분들 보면 경기도 안좋은
데 저렇게 추운 도로 위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팔려고 힘들게 노력하는 분들 보면 참 저는 따뜻한 사무실
에서 편하게 근무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맡은 이 자리에서 늘 감사하면서 노력하면서 살아
야 겠습니다. 다른 모든 분들도 날씨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면서 늘늘 파이팅! 하면서 사세요. ^ ^
p.s 아 혹시 제가 위에 쓴 내용 중에 타인의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그런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내용은 개인정보와 관련된 것이니 안 적는 게 낫겠다든지 이런 의견이 있으시면
애기리플이나 쪽지로 제게 일러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