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헤어지는 걸까요?
참 긴 토요일이었습니다.
발단은 이래요. 금요일 저녁 기차로 서울에 올라오면서, 9시에 서울역에 도착하니 저녁을 사달라고 문자를 보냈지요. 그를 보고싶기도 했고 어찌 나오는지 보자, 란 생각에 '그래줄래?'가 아닌 '해줘'라고 보냈습니다. 12월 31일이었어요.
낮에 기차표 문제로 몇번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통화도 잠깐 했지만, 그 녀석은 제 문자를 받은 이후 대답이 없었습니다. 영등포역에 가까워지면서 실망, 화, 자포자기로 화학반응이 일더군요. 기차표는 원래 영등포역까지였습니다. 제 집에 가려면 이곳이 더 가깝거든요. 서울역은 그 녀석 집에서 가깝습니다. 택시로 금방일 거예요. 영등포역에서 내려서 그냥 집에 갈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르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연락없이 날 놀래주려고 서울역에 나와있을 수도 있으니, 없을 경우 확실히 하기위해 영등포역을 지나쳤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할 무렵, 문자가 왔어요. '문자로 말해 무슨 얘기인데?'. 이대론 이젠 안되겠더군요. 곱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연말이라서 얼굴한번 볼려고 그런다고. 다시 문자가 왔어요. '내일 보잖아'. 저도 보냈습니다. '내일은 안 귀찮아? 그냥 보지 말자'.
잠깐 사전설명을 할께요. 애인은 혼자 살다가 2달 전쯤 룸메이트를 구했습니다. 룸메이트는 스트레이트니 이와 관련되서 문제는 없구요. 문제는 애인 집에서 주말에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걔가 제 집으로 매주 오게 되었죠. 근데 이걸 내켜하질 않는 듯 해요. 자주 무슨 이유로 이번 주엔 못 온다거나, 와도 빨리 갔으면 하는 거예요. 그래도 거의 매주 왔고, 못 오는 날은 밖에서 만났습니다. 주말에 자기 집에서 느긋하게 늘어져서 밀린 빨래도 하고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저도 있으니, 좀 속상했지만 그런 점은 이해하기로 했답니다.
최근 들어 걔 집에 일가 친척이 오게 되었어요. 2달 넘게 있을 것 같고, 1달은 벌써 지났네요. 문제는 룸메이트보다 더 커집니다. 주말에 오는 것은 물론 전화통화도 어렵게 된 거예요. 전 저녁에 한번 전화해 달라고 했습니다. 밖에 나와서 전화할 수도 있잖아요. 걔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당분간은 낮에 직장에 있을 때 통화해야 한다고요. 낮에 전화는, 직장 동료 때문에 이런저런 얘길 못하잖아요. 제겐 불만과 의심과 짜증이 쌓여갑니다. 나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기 위해, 그만두자고 한번 해버려?, 이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전 쌓아뒀다가 터뜨리는 성격인가 봅니다. 어딘가 좀 꼬여있나봐요.
전 미래가 두렵답니다. 최근 전 지방으로 이직했어요. 제가 서울에 있을 때도 거의 주말 밖에 보진 못했지만,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다른 것 같더군요. 서울 집을 처리하고 이곳으로 옮기게 되면, 매주 어떻게 만나야할까요. 걔 룸메이트를 내쫓거나, 걔가 내려와야 하는데, 서울에 있을 때도 제 집에 오는 걸 꺼려하던 녀석이 과연 잘 그래줄까 걱정이 되거든요. 그걸 물어보면 한 박자 쉬고, 내가 내려가야지 합니다.
이직한 직장은 전통적인 기업이라 보는 사람마다 제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습니다. 소개해준다는 사람도 있구요, 애인있다니까 사진보여달라, 데려와봐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전에 울 애인이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그것 때문에 진급에 문제도 있고, 성공하려면 자긴 아무래도 결혼해야겠다고 했었는데 당해보니 그 심정 알 것 같더군요. 나이가 한살 더 늘었는데, 점점 어려워져요. 서로 의지가 확고해도 같이 살아가는 게 어려운데, 걔의 의지는 그렇진 않은 것 같거든요. (모르는 분이 있을까봐서요. 전 게이랍니다)
제 성격은 최소한 애인한테는 아주 좋은 편입니다. 아직까지 싸운 적 없구요, 생각해봐서 그럴만하면 서로 얘기해서 풀어나가고, 걔가 제 생일에 아무 것도 안 챙겨줘도 그래, 뭐, 하고 잠깐만 약간 섭섭해할 뿐 걔 얼굴보면 좋아서, 헤~ 하고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보이는 건 보여요. 걔가 날 정말 좋아하는 걸까, 사랑하는 걸까, 내가 사랑하니 그냥 그렇게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걔 행동을 통해 하게 됩니다. 애인은 자신은 아무래도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합니다. 제가 내가 좋아, 라고 물어볼 때만 반박자쉬고 좋다,고 말해줍니다. 아직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몇번 돌려서 물어봤지만 말해준 것은 강촌에서 함께 자전거타며 '시옷 리을 히읗'이라고 말해준 게 답니다(가장 큰 추억 중에 하나예요). 이런 행동들은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죠. 첫째는 원래 성격이 그렇다는 것. 걔도 '꼭 말로 해야 알아?'라고 하거든요. (제발 남자들, 이런 것 좀 고쳐요...) 둘째는 좋아는 하지만 사랑하진 않으니까구요. (아, 이 무슨 3류 드라마랍니까...)
전 여지껏 걔 성격이 그런 거야, 라고 생각해왔고(그렇게 믿자는 생각이기도 했어요), 내 가치를 알게 해서 날 선택하게 하려고 해왔어요. (가치 얘기는 기회가 될 때 다음에 할께요) 그런데 그게 이번 연말에 터진 겁니다. 크리스마스 때도 그냥 지나쳤어요.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 다시 연말에 이러다니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건 원래 성격이 그래서가 아닌겁니다. 집에 가족이 있어서도 아니구요. 크리스마스 때 룸메이트 눈치보인다고 우리 집에 안 오려고 했던 것을(그때 일가 친척은 잠깐 집에 내려갔답니다) 제가 속상해하니까 와줬거든요(그날 와서 잠깐 있다가 간 거예요). 일요일날 같이 돌아가면서(전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야해요), 전 애인에게 선물을 달라고 했어요. 대화는 아주 유치합니다. "선물? 무슨 선물? 물질적인 것?" "아니, 그런 거 말고 내가 듣고 싶은 말 있잖아." "아, 그거?" "응. 이번 해가 가기 전에 해주길 바래." 크리스마스 전에 문자보낸 것도 있어요. 친척 땜에 어렵겠지만 크리스마스나 연말 중 하루만 밤에 같이 있어달라구요. 그런데, 연말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만 두자고 질러본 후 반응이 어떤지 봐볼까, 잠깐 미친 생각도 했지만, 보다 나은 방법으로 의사를 전했습니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면 나를 이해시키고, 나를 생각해서 일부 행동을 바꾸던지, 그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거라면 이제 그만 두자구요. 널 사랑하는 만큼 힘들다고도 했습니다. 유치찬란하지만, 난 걔를 사랑한다구요... 사랑하니까 (힘들어서) 헤어지자는 말은 맞는 말 같아요. 그런 내용으로 문자를 6통 보냈어요. 이제 그만 두자, 란 단어를 칠 때는 눈물이 아른아른 떨어지는데, 그 녀석이 전화해선 술먹고 왜 그러냐고 소릴 질러대서(그날 제가 몇 통화 전화 안 받은 것에 화가 났나 봅니다. 나라면 걱정, 근심이었을 텐데요) 정말 헤어지는 거구나 해서 꺼이꺼이 입막고 서럽게 울었답니다(저 땜에 술먹은 것도 아닐 거예요). 문자보내면서 전화주고받으면서 30분간 그랬을 거예요. 앞 부분 문자에 난 네가 날 사랑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있었는데(그런 내용이 2통 정도에 들어갔을 거예요), 4통 쯤인가 보낼 때 걔가 보낸 문자가 '솔직히 나도 뭐가뭔지 모르겠다'였습니다.
오늘 내려오면서 내려간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허리가 아파서 못 나갈 것 같다며(나온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런다고 한번도 서운한 적도 없습니다), 네가 어제 보낸 내용은 자신 생각 정리해서 다음에 말해준다고 답해왔습니다.
우린 헤어지는 걸까요? 다음 주 만날 때까지 전 연락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제가 잘못한 걸까요? 그를 결코 잃고 싶진 않지만, 이런 상태로 계속 가는 건 아닌 게 맞지 않나요?
* 시작한지 1년 7개월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