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켓 부스러기같은 생각들

  • ginger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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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의 조건인 세상이라는 걸 종종 깨닫습니다. 성찰의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은 자기 행위의 결과, 도덕에 대한 고려 따위는 엿 바꾸어 먹은지 오래인 것 같아요. 인간한테 일관성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장치는 자기 반성일텐데, 가까운 친지 중에 그게 전혀 없는 인간이 몇 있어서 흥미롭게 관찰중입니다. 자기한테 직접 이해가 없는 경우 가끔 타인에 대한 동정 비슷한 것도 하고, 자기 가족이 아프면 속상해 하지만 결국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속이 좁은 평범한 작은 악당들이 내던지는 악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같이 퍼지는 느낌을 받아요.


2. 무례무식하고 상스러운 건 사실 사소하기도 하고 크기도 한 악이에요. 물론 근사하게 자격증화된 지식과 교양을 말하는 게 아니죠.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교양, 타인을 고려하는 기본적인 도덕을 말하는 겁니다. 기술적인 지식만을 습득하느라고 바빠서 아주 기초적인 교양 쌓을 틈이 없었던 자들이 타이틀이나 안전한 직업/지위같은 걸 배경으로 자기를 스스로 대단히 여기며 으쓱대는 걸 봐주는 건 심하게 뒤틀린 블랙 코메디를 보는 것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그러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죠. 난 저렇지 않은지. 좋은 반면교사들이세요.


3. 아는 사람이 검사랑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갔다온 친구 말에 따르면 신랑과 그 동료일당들의 얼굴이 다 똑같아 보이더랍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개성없는 얼굴에 안전한 가르마를 타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준 회색 양복의 남자들. 주거부정으로 떠돌아다니고 쓸 데 없이 많은 업무와 역시 쓸 데 없이 많은 술자리에 시달리는 박봉의 공무원에다 권위주의적이고 지루하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랑 그래도 좋다고 결혼한 여자가 있다는 게 저한테는 기적인데, 그 여자한테 주변사람들이 해 준 충고는 '그저 과부인 셈치고 모든 걸 혼자 다 하고 살아라' 였다네요.



4. 50대 이상 예전 경기니 서울이니 하는 고등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의 인간들은 죄다 죽기전에 학벌의 굴레에서 안 벗어날 것같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이 배어나와요. 고대나와서 무슨 기자를 하냐던 이회창이 유별난 게 아니더군요. 교포가 많은 미국에서는 지역마다 경기 동창회 같은 걸 한답니다. 경복동창회는 좀 밀리고, 어쩌고 저쩌고. 이 인간들 서열 매기는 데는 정말 재능이 특출나더군요. 그리고 이런 서열매기기 게임의 패자들은 자기 위치를 알아서 좀 비굴하게 기고요.



5. 전에 서울대 폐지에 대해서 토론이 있을 때, 남보다 공부 더 열심히 했는데 공부 안하고 논 애랑 다 똑같은 대학에 간다면 억울하단 얘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보다 공부 열심히 해서 받는 보상은 학교 이름값이 아니라, 나중에 졸업후 보다 책임이 따르거나 의사결정권이 있거나 보수가 좀 나은 직업, 혹은 공부자체에서 오는 자기 성취감이면 됩니다. 거기다 학교 이름의 후광까지 덧얹어서 파당을 짓고 평생 남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 그것도 죄악이에요.


6. 연말에 한국에 다녀온 친구말이, 한국은 지금 영어 광풍으로 미쳐돌아간다고 하네요.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그 꼬마들을 태운 학원 미니 버스에서 고개를 내민 어떤 녀석이 'mother fucker'라고 소리치더랍니다. 한 여섯 일곱살 쯤 된 것들이요..별 필요도 없는 맥락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성인들도 피부로 실감하도록 많이 늘었다고요. 그렇다고 다들 영어를 잘 하느냐 하면 절대 아니고요....친구 말이, 접촉사고가 날 뻔하자 차에서 내려 'Be careful'을 강한 한국 억양으로 해대는 사람덕에 매우 민망했다고 해요.

영어, 뭐 국제적 소통에 유용하니까 잘하면 좋긴 하지만, 한국어를 똑똑하게 잘 하는 건 그이상 중요하겠죠. 한국에선 한국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기본틀인데. 굳이 의식적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우아하고 풍부하게 한국어를 활용하는 사람을 좀 많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7. 개인 주권이라는 거, 몇몇이 그냥 말로 떠드는 것하고, 공동체 안에 체화된 결과로 자리잡은 것하고는 해의 동쪽과 달의 서쪽만큼의 거리가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8. 무심하게, 혹은 심지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진부한 언어로 관습적인 가치를 들이대는 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나쁜 새 것이 좋은 옛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뭐 그닥 혁명적인 반항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에요. 최소한 한 번 쯤 기존의 것을 차용하기 전에 의심해 본다거나, 자기 걸로 걸러 보는 것, 인간의 뇌세포를 활용해서 생각이란 걸 한다는 맥락에서 말입니다.

자기가 지껄이는 말을 한 번 쯤 의심해 보는 과정을 거치는지, 자기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감정조차도 클리셰에 의존하고, 일일이 자기 내부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며 산다는 게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지, 한번이라도 상상해보는 걸까 싶은 사람들을 가끔 보거든요.


9. 어제 낮 12시에 전 유럽에서 이번 해일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3분 묵념이 있었습니다.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 별 생각없이 묵념을 했었는데,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깨우쳐주는 이런 사건이 있을 때 한 번쯤 멈추어 서서 공동의 애도와 성찰 의식을 한다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은 삶과 필요불가결한 한 쌍이란 걸 조금씩 더 실감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10. 유족이 된다는 것은, 당장의 거친 아픔이 가고 나면 팔다리가 잘려나간 뭉툭한 상처위에 피부가 자라고 적응이 되듯이 그렇게 더께더께 무뎌진 껍질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옛 팔다리의 기억은 두뇌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종종 없는 발로 어딘가 디디려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게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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