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작은 생각
얼마 전에 어머니께서 친구분들과 놀러 가셨더랬어요. 정릉 쪽인가, 친구분 생신이라고 해서 식사하시고 노래방에 가셨나봐요. 돌아오시고 난 다음에 그러시더군요. 친구들이 왜 이렇게 노래를 못 부르느냐고 타박을 주셨다구요.
"엄마, '님은 먼 곳에' 잘 부르잖수. 안 불렀어?"
"글쎄, 부르려고 보니까 가사들도 기억 안나고, 박자도 못 맞추고 그러더라."
어머니는 예전부터 음정은 좋으신데 박자를 너무 못 맞추셔서 노래에 대한 부분은 제가 그닥 기대를 안 하고 살았어요. 예전에 가정용 노래방 기계가 한참 유행할 때 기계를 들여놓고도 한 곡도 안 부르시고 결국 외할아버지께서 총무 자리를 보고 계신 경로당으로 보내신 분이니, 말 다 했죠.
대수롭잖게 여기고 지나갔는데, 며칠 후 어머니께서 집으로 친구분을 데리고 오셨더랬어요. 38년만에 만난 여고 동창이라고 하시면서. 두 분 즐겁게 이야기하시고, 저도 옆에서 사근사근 변죽을 맞추느라 제가 노상 듣는 기분 나쁘지 않은 평가 - '어머, 넌 아들인데 꼭 엄마한테 하는게 딸같다.' - 도 들으면서 말이죠. 아무튼 이야기 하던 중에 노래방 이야기가 나왔어요.
"야, OO가 나 노래 못한다고 노래를 뭐 100곡인가 보냈다는데, 내가 아직 확인을 못했다."
"그래, 너 그 날 노래 참 못하더라. 아들이랑 같이 좀 노래방도 다니고 그래라."
"아니, 얘가 노상 지 혼자 가지, 어디 내랑 가니."
"(저를 보고) 얘, 엄마랑 좀 노래방 좀 가! 너 혼자 놀지 말구."
뜨끔했어요. 저는 노래방에 가면 머리에 물 뿌리고 놀다가 감전되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헤드뱅잉이랑 점핑하다가 테이블 부숴먹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놈이 되서 엄마와 함께 노래방을 가면 뻘쭘하기 그지 없어서 거의 안 가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날 집에 들어오니까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친구가 노래를 보내주긴 했는데 재생이 안된다구요. 메일 계정에 들어가 메일을 확인하는데, 친구분이 보낸 메일 첫 줄인가를 보고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너나 나나 아직 살 날이 긴데, 노래도 하고 놀면서 재미있게 보내야 하잖니."
글쎄, 어머니께서, 벌써 쉰아홉이시네요. 전 아직 스물 둘인데. 어느 세월에 효도를 할까요. 긴 가족사를 일일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느 어머니들이 그렇듯 어머니도 힘든 세월을 그저 힘들고 힘들게 살아 온 사람일 뿐인데. 폭군 아버지한테 치여 사느라, 성깔머리 더러운 큰 딸에게 팔자에도 없는 욕 먹느라, 철없는 아들이랑 티격태격하느라 남들 몫까지 다 늙은 이 양반이, 노래 한 곡도 시원스레 못 한다 생각하니 난데없이 새삼스레 너무 불쌍하고 미안해지더라구요.
각설하고, asx 파일로 가요무대 선정 100곡을 보내오셨는데, 링크가 다 끊어져 있더라구요. 그런데다가 노래들이 너무 -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 간질거리는 - 이를테면 현철이 구사하는 - 노래들 위주로 편성되어 있길래, 음악 듣는 귀는 그렇게까지 올드하지 않은 어머니를 위해 그날 CD 두장을 구워드렸어요. 현인이나 김추자도 있지만 이문세도 들어있는. (신승훈 노래도 넣어주시길 원하셨지만, 친구분들이 썩 좋아하실 거 같진 않아서 일단은 마흔 네곡만 구워드렸어요. 나중에 재미 붙이시면 더 구워드리기로 하구요.)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 글을 '효도는 멀리 있지 않아요' 따위의 하트워밍스토리를 구사하려고 쓴 건 아니고... 그냥, 어머니랑 재미나게 놀려구요. 효도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어머니가 노실 수 있을 때 같이 놀려구요. 정말이지, '늙으면은 못노' 실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