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는 제노포브스 시리즈를!

  • 김영주
  •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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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포비아 - 외국인 혐오증 예방 서적이랄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 물입니다.

예전에 아주 친한 두 사람과 오붓하게 노닥거렸던 프리챌 소모임에 올렸던 건데...

간만에 들어가서 봤더니 또 재밌어서요. 우울할 때는 틈틈히 제노포브스. 꼬릿말로 달려 있는

슬로건입니다. : )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편과 영국, 독일, 프랑스 편이 있어요.

그 외에 러시아하고 또... 여튼 많은데 제일 재밌었던건 이태리-스위스-오스트리아였습니다.

유시민씨가 편역했고요. 그럼 즐겁게들 보시길.


이탈리아 -  

이탈리아 통일을 이끌어낸 카보우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막 이탈리아가 탄생했다. 이제부터는 이탈리아 국민을 만들어야 한다."

카보우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아마도 여태 그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탈리아인들은 자기네가 하나의 민족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고 또한 민족주의 정신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월드컵에서

축구 국가 대표팀이 선전을 하거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알베르토 톰바가

국제 스키 대회에서 열 번 계속해서 우승을 하는 때가 그렇다. (중략)

  이탈리아인의 희박한 민족 정서를 꼭 나쁘다고 할 수 만은 없다. 흥분 잘

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호전적 군국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

그 덕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은 모든 분쟁은 적당한 타협이나

유화책, 또는 뇌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되도록 정면

충돌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만큼, 만약 이탈리아를 침략하려고 하는

나라가 있다면 쓸데없이 아까운 국인들을 총알받이로 만들지 말고 그들과

거래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임기응변에 거의 통달해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얻는 능력으로 국내외에서 정평이 나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안에서도 그런 능력이 없이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략)


1970년대에 있었던 사건인데, 무능한 정부와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잔돈

부족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도 이탈리아 국민들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사탕을 잔돈 대용품으로 썼다.



이탈리아제 알파 로메오 자동차의 메뉴얼에는 품위 있게 행동하고 생명을

지키려면 어떻게 차를 몰아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앞 차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운전할 것,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서

엑셀러레이터나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지 말 것, 빠른 속도로 회전하지 말 것."

요약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운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문화를 대단히 존중한다. 자기네 문화 유산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이탈리아 국부의 중요 원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잘 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적 창조 행위의 중요한 동기는 돈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종교, 미적 감각, 영적 이해력 등이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탈리아 인들의

선천적 자부심일 것이다. 만사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영구적

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어떤 것이든 아름답게 만드는 데 신경을 쓰고, 그 다음에야 영구적으로 작동하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발렌티노 옷, 피닌파리나 자동차, 베네치아의 산호섬 작업장에서 만드는

유리 곤돌라, 길거리의 성모와 아기 예수상 신선한 파스타 요리 등 여하튼 모든

일에서 마찬가지다.

  2차대전 당시 전쟁포로가 되어 스코틀랜드 동북쪽 앞바다 오크니 군도로

끌려간 이탈리아 군인들은, 연합군이 예배당으로 쓰라고 준 조립식 막사에다

인테리어 장식을 하고 바로크풍 벽화까지 그려서 아주 예술품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포로 생활을 한 노인들은 그 예배당이

여전히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정기적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스위스 - 스위스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에는 열심히 일하면서 다가올 재난에

대비하는 대신 그저 놀고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느낌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책임의식이 부족한 다른 나라 사람들, 다시 말해 스위스를 제외한

전세계에 대해서까지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스위스 사람들이 지닌 이른바 근심지수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제각각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일계 스위스인은 매사에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근심걱정을 하느라 언제나 최고의 근심지수를 기록한다. 프랑스어를 하는

라틴계 스위스인들은 고매한 상념과 원대한 꿈과 '글로벌 비전'을 가진

대사사상가들이라서 근심지수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을 유지한다. 반면에 이탈리아

계 스위스인들은 무슨 일에서든 너무 겁이 없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사람들이

인구의 10퍼센트 밖에 안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스위스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네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근심걱정이 많다. 그들은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네를

끊임없이 주시하면서 비판을 한다고 믿고 있다. 자기네가 남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남들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서양 건너편에서 온 어떤 외국인이'스위처란드'를 남부 독일의

한 지방이라고 한다든가, 오스트리아와 혼동한다든가, (또는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스웨덴으로 착각한다든가 하는 사태가 생길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그야말로 절망감을 느낀다. 스위처란드와 스웨덴은 똑같이

중립국인데다가 나라 이름도 비슷하게 시작되고, 게다가 둘 다 눈이 많은

나라여서 영어 '스노우' 또는 독일어 '슈네'를 연상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또 하나 재미난 것은  스위스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이 퀴즈 게임에 단골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제네바는

국제적으로 제일 널리 알려진 도시지만 수도는 아니다. 제일 큰 도시인 취리히

역시 아니다. 관광객들은 인터라켄을 떠올리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스위스의 수도는 별로 잘난 데도 없는 베른이다.


  세계의 절반을 점령해서 노예처럼 부려먹고서도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점에서 영국인은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서도

패배자라는 자책감 한번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위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영국인을 '차를 마시는 젠틀맨'이라고 생각한다.

악명 높은 유럽 홀리건들이 온 유럽의 축구장을 휩쓸면서 난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독일 사람들은 너무 자신만만해 하기 때문에, 스위스 사람들은 자기네가 독일인

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물론 마음 속에는 어쩌면 저렇게

독일어를 잘 할까 하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지만. (독일어를 영어로 바꾸면 영어권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도 매우 흡사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특유의 매력과

기지와 인생을 재미나게 사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스위스인들은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인은 심심할 때 우스개 소재로 삼기에 알맞은 편안한 이웃이다.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인은 곤란한 처지를 비켜나가는 데 쓰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가지고 산다. 다름 아닌 '정신적 망명' 또는 '현실참여 기피'가 그것이다.

그들의 삶은 공적 생활과 일상적 사생활이라는 서로 다른 두 얼굴 또는 두 차원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이 두 차원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산다.

  그들은 겉으로 평화롭고 친절한 면만을 드러내지만, 그 이면에는 마치 악성

종양과 같은 좌절감과 불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부와 권력과 높은 지위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오스트리아인들이 보이는 이중적 태도는 바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앞에서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비굴한 태도를 보이면서, 돌아서

서는 더할 수 없이 모욕적인 경멸을 쏟아 붓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의 태도는 일종의 '국민적 취미생활'이다. 오스트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이 고약스러운 취미를 즐기는데, 이러한 이중성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이런 면에서 극작가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오스트리아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초반을 고위 공무원으로 지낸 이 극작가는 오스트리아인의 이중적

정신상태를 이렇게 압축했다. '숭고한 것은 위험스러우며, 명예는 공허한 장난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 발명가의 가련한 운명'이라는 속담이 생긴 것도 바로 이러한 벽창호

같은 보수주의 때문이다. '현상 유지의 수호신'들, 또는 현상 유지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앞뒤가 막힌 관료들은 모든 변화와 혁신을 원천봉쇄하는 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다음은 그들이 그 작업을 해치우기 위해 암송하는 유명한

세 가지 주문이다.

  "그건 전례가 없어요."

  "옛날부터 언제나 이렇게 해 왔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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