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 보고 일찌감치 일말의 기대도 접어야 했거늘... 예고편을 보는 것을 그저 '확인사살' 정도로
생각했던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확인사살' 정도가 아니라 죽은 시신을 관에서 꺼내 채찍질을 하는
격이었습니다. (OTL) 원작이 가지고 있는 암울하고 비장하기 그지 없던 분위기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버렸군요. '생명의 소중함', '사랑은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따위의 레토릭으로 얼렁뚱땅
포장한 채 어린 아이들의 연애질을 관음하겠다는 속셈이 너무 눈에 훤하네요. 역시 '어린신부' 감독
답다는 생각이 막 머리 속에 맴돕니다. 더군다나 홈페이지 인트로의 스타워즈 패러디란 -_-
제가 건너 건너 알고 있는 에이전트 어르신께선 그러셨다더군요. '영화계는 돈이 남아난다니? 어떻게
척 보기만 해도 망할 게 뻔한 영화에 돈을 때려 박아대냐?'
별로 좋아하는 어르신은 아니지만, 100% 동감합니다.
3.
'쿵푸허슬' 시작 전 예고편이 '말아톤', '공공의적2' 였습니다. (아직도 CGV목동은 그 오타난 포스터를
그대로 걸어두고 있더군요. 영화 끝나고 나오다가 보니 복도에 떡하니 걸려 있는 'PUBLIC ENERMY'의
모습이란! 도대체 포스터 한장 더 받아오고 오타난 거 수거하는게 그리도 힘들단 말인지..)
'말아톤' 트레일러는 저만 그런건지는 몰라도 반복해서 볼 때마다 조승우씨의 원래 모습이 자꾸 자꾸
드러나서 좀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더군요. 얼마나 자기를 지워내느냐가 관건일텐데요. 극장에서 확인하는
수 밖에요.
'공공의적2' 트레일러 중간 중간에 설경구씨가 '서울지검 강력반 검사 강철중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같이 영화보러 간 친구가 제 귀에 대고 '강철중이다' 가 나올 부분에 '역도산이다' 라고 속삭이질 않나,
'나야, 김신일이', '난 세계인이다' 등등의 대사를 끼워넣는데, 끼워넣는 타이밍의 절묘함과, '역도산' 에서
설경구씨가 보여줬던 연기와 너무 흡사한 대사처리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이제
'공공의적2' 를 볼때에도 자꾸만 생각날 거 같아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_-
4.
전 '천재 유교수의 생활' 만큼은 드라마화도, 영화화도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애정이랄까요.
'저것마저...' 하는 심정이 들 것만 같아서요. 전 개인적으론 되려 일본의 전후근대사를 그린 20권 이후의
내용들이 더 와닿았습니다. 유교수는 분명 미국 GI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아픈 속내를
따스하게 보듬는 것 따위는 관심이 없는 캐릭터죠. 전쟁이 끝나자 이제 연구를 할 수 있다며 되려 기뻐하거나,
일본인이건 GI건 철저하게 탐구하는 자세로 바라보고 유교수 특유의 냉혹하리만치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하는 모습이
조금은 색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작가의 일본 근대사 인식에 동의여부를 떠나서, 독특한 텍스트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런 역사인식을 거부감 없이 보실 수 있는 분이라면 '철완소녀' 도 한번 보시길. 국수주의적인 분위기로만
치자면 '침묵의 함대' 도 부럽지 않죠. 하지만 흥미롭게 섭취할 여지가 많은 텍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