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 창녀?

  • 궁상마녀
  •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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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창녀'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사랑과 생명을 잉태하는 고귀한 행위'인 섹스를 돈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가치와 교환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뭘 몰랐던 거죠. 가부장제의 핵심이 여성의 섹스를 통제하는 것에 있다는 걸 몰랐던 어린 날의 설익은 이론이랄까.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만이 사회적 탄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도 분명 어느 정도의 사회적 처벌은 감수해야 합니다. 문제는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구성비율이 좀 달라진다는 거죠. 성적으로 방종한 남성, 이른바 선수, 꾼, 바람둥이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같은 남성들이 아닙니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자신의 기회(..)를 박탈당해본 경험이 있을 텐데도 같은 남성들은 저 선수들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본드는 아직도 유서깊은 남성판타지입니다. 물론 여성들의 판타지이기도 하죠. 모든 여성들이 페미니스트인것도 아니고 모든 페미니스트가 자기 내부의 가부장성을 말끔히 극복한 것도 아닙니다.

헌데 똑같이 성적으로 문란해도 여성이 그 주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녀를 걸레라고 경멸하는 남성일수록 그녀와 섹스하기 위해 주위를 기웃거리고 여성들은 사자를 만난 물소떼처럼 똘똘 뭉쳐 그 여성을 경멸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강간피해자가 되기라도 하면 남녀가 입을 모아 진작에 행실이 그 모양이었으니 그럴 줄 알았다고 정당화(!)해주기까지 하죠.

'쉬운 여자'라는 말이 모욕으로 쓰이는 까닭이 대체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에 있어서 말입니다. 왜 우리나라 여성들이 외국 남성들에게 '쉬운 여자'로 취급받는 것에 국민 모두가 함께 분개해야 하는 걸까요? 많은 남성들과 자주 섹스를 하면 성병 감염률이 높아지니 괜히 외국남자에게서 병옮아서 한국 남자에게 퍼트리지 말라는 뜻일까요? 우리나라 남성들이 외국남성들에 비해 성병감염률이 현저하게 낮을 것 같지는 않은 데요? 왜 우리나라 여성들이 성욕이 강하고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안되는 겁니까? 물론 그런 평가 자체가 오해이고 무지의 소산이라는 걸 알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평가를 받는 건 참 유감스럽고 불쾌한 일이지만 그게 무슨 강력한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일처럼 다루어지는 건 많이 당혹스럽다는 거죠. 유독 '쉬운 여자'라는 낙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스테레오 타입은 재수없어요. 일본여자는 헤프고 좀 뚱뚱하고 음침하게 생긴 일본남자는 다 오타쿠죠. 이탈리아 남자는 타고나길 선수고 라틴계 남자는 종마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자들이 그런 이미지가 널리 퍼져있는 것에 항의한 적은 없잖아요? 그건 무식하고 열등한 백인종들이니까 그런 거고 자랑스러운 배달의 자손들은 정결하고 고고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합니까? 국가적 이미지가 안좋다면 개선하는 편이 좋습니다. 경제에 도움이 되니까요. 그외에도 타국에 나갔을 때 대접받는 게 다를 테고요. 그런데 대한민국 여성이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게 국가적 이미지와 직결된 문제인가요? 우리가 미국이나 프랑스를 생각할 때 '아, 그 나라 여자들은 원나잇스탠드는 물론 프리섹스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무지 짐승같은 족속들이 만든 추잡한 나라야.'라고 생각하나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의견이 옳습니까?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뜻은 성욕이 강하다는 뜻도 됩니다. 지금 저 밖에서 울분을 삼키고 있는 사람들이 무슬림 남자들처럼 '우리나라 여성의 성욕이 강하다니!'라며 분개하는 건 아닐 거예요. 설마 그 수준은 아니겠죠. (믿고 싶다 정말;) 결국 이거죠.

<대한민국 여성들이 창녀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요? 그 외국 남성들과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여성들은 분명 자기가 좋아서 그랬을 거예요. 설혹 금전이 오고간 성매매였다고 해도 자발적인 성매매였겠죠. 설마 빚을 저당잡혀 하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저랬겠어요? 그런데 자발적인 성매매는 정당한 노동이다라고 외치셨던 분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그게 아니라 여중생이 대상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분개하셨던 거라고요? 에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 데요?

사실 저도 정말로 '자발적인' 성매매는 정당한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몸이고 자기 섹스이니 자기가 원하는 때, 원하는 상대에게 원하는 만큼만 팔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좀 더 두고보고 알아봐야 할 일이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설령 저 여성들이 실제로 외국남성들에게 '원조'를 받고 성적인 서비스를 해주었다고 해도 별로 분개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쉽고 헤프다라는 말이 일파만파 전세계로 번져나가도 그걸 그대로 믿는 놈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우리나라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날아오르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죠. 진짜 자유라면 타락하고 추락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은 곧 타락이라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이것도 성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요? 성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건전한 성생활은 하는 게 좋죠.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비만이나 고혈압 환자가 되지 않도록 식단을 작성하고 간식을 통제하는 사회를 원합니까? 모든 인간이 어느 일정수준 이상의 체형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압박하는 현사회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왜 성생활은 통제와 규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철썩같이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에이즈 때문인가요? 흡연은 폐암발생율을 두배에서 세배로 올려놓고 비만은 스트레스와 더불어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양대산맥 중 하나이지만 에이즈가 성행위로 감염될 확률은 10% 미만입니다.

그냥 솔직히 인정하세요. 여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라고. 서양놈과 붙어먹었기 때문에 꼴보기 싫은 거라고. 그쪽이 차라리 아 그렇구나 하고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로마의 하층민'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매춘부를 규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행위였던 것이다. 섹스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은 여성에게 매춘부 자격을 부여하기에 충분치 않다. 즉, 매춘부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규정하는 것은 그녀의 무차별적인 성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타베누스는 정확히 말해서 '대가없이' 매춘했던 여성조차도 매춘부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2천년이 지났는 데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사고회로로군요. 전 늘 2천년쯤 전의 인간을 만나면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외계인을 만나는 기분일거라고 상상해왔는 데 그나마 몇몇 사람들에게는 통하는 구석이 있을 것 같네요. 소통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사례라고 반가워해야 할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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