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 ginger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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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게시판에 올라온 명예 살인 기사에 따라온 댓글 중에 '저들의 문화라서 뭐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있었죠. 이 시각은 다른 문화를 이국적이며 특수한, 고정불변의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이슬람 사회를 명예살인같은 야만적인 일을 저지르는 집단으로 딱지 붙여버릴 수 있는 구실이 되는 거죠. 독일의 요르단 이민자 가족에서 벌어진 이 살인사건이 요르단에선 명예살인으로 그냥 걸어나오지만 독일에선 살인으로 종신형감이 되는 걸 화해할 수 없는 이슬람(혹은 이슬람과 겹치는 문화권) 대 서구적 가치의 충돌로 보는 시각도, 사실 초점을 많이 벗어난 것이고, 잘못하면 서구가 우월하다는 잘난척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요.


명예 살인은 가족내의 여자가 허락받지 않은 성적 활동 -  정해준 혼인을 거부하거나, 성폭력을 당하거나, 이혼을 하려 하거나(남편이 학대를 하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랍니다.), 간통을 하거나 - 혹은 이런 일들이 있다는 의심이 있는 경우 훼손된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족의 남자들이 그 여자를 사적으로 처형하는 걸 말합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는 방글라데시, 이집트, 이란, 이라크, 요르단, 인도, 모로코,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터키 등지와 영국, 스웨덴 등 유럽뿐 아니라 브라질,우간다 등지의 회교/시크 이민자들 틈에서 명예 살인이 보고 되었다고 해요. 사실 회교 국가라고 모두 명예 살인이 있는 건 아니죠. 인도네시아에선 명예살인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여자를 가부장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관습은 이슬람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도 이런 식의 집안의 명예를 위한 여성 살해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서구 유럽에서 이민자 사회의 명예 살인에 대해 '저들의 가치'란 태도로 접근하는 건, 그 소수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그 문화가 오로지 가부장적인 '남자'의 것만이 아니란 걸 무시하는 일입니다. 이러면 문화를 핑계삼아 편리하게도 도덕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죠. 하지만 이슬람 이민자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문제인 건 사실입니다. 명예살인을 이슬라모포비아의 구실로 삼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영국에서는 작년 말 현재 117건의 명예살인 사건이 조사중에 있었다고 해요. 유명한 사건으로 런던의 쿠르드계의 이민자 가족에서 벌어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16살짜리 딸이 남자친구가 있고, 매춘부같이 군다고 동네 방네 소문났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은 후 자기 집에서 딸을 11번이나 찌르고 목을 잘라 죽였습니다. 종신형을 언도 받은 후 그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위치에 몰려서 그랬다'고 주장했죠. 딸이 가족한테 오점을 남겼다는 거에요. 기독교도인 남자친구가 있어서? 화장하길 좋아해서? 결국 평범한 10대였던 딸의 죄는 '독립성'이었던 겁니다. 점점 더 지 맘대로 하는 딸을 아버지는 통제할 수 없었고, 가장의 통제력 상실은 쿠르드 이민자 사회에서 너무나 창피스런 일이라 그 딸의 완전한 복속, 즉 죽음만이 이 실추된 가부장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었던 겁니다. 가난한 이민 노동자인 아버지는 자기 정체성과 자긍심이 다 무너졌고 그래서 딸한테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런 비극이 어딨겠어요.


이 비극적인 살인 사건의 판결문에서 판사가 '전통 쿠르드 문화와 서구 가치의 충돌'어쩌고 하는 바람에 다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명예살인에 반대하는 쿠르드 여성(Kurdish Women Action Against Honour Killing)이란 단체에서는 그 판사한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해요.

'the recognition and insistence that universal human rights must be a redeemable promissory note for all ... With the turning of a 'blind eye', the notion of human rights loses meaning as a set of principles that govern all.'

먼저번에 독일의 명예살인 기사에 여러 분들이 단 댓글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견해죠.



사실 문화적 상대성이니 서구식 강요니 하는 모든 치장을 다 걷어 치워버리고 보면 아버지와 오빠, 혹은 남편, 남자친구한테 살해당한 여자들의 시체더미가 남습니다. 잘난척 하면서 인권이 어쩌고 하는 현대 서구에서도 프랑스 형법엔 75년까지도 crime passionnel (crime of passion)이라고, 남편이 부인의 부정을 발견해서 '분노한 나머지' 살인하면 형을 가볍게 해주었었죠. 지금 영국에서도 매주 2명씩 여자들이 자기 남편(혹은 파트너)한테 살해 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명예살인하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인권 내세우는 서구에서도 꽤 많은 숫자의 여자들이 국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정내 폭력으로 골병 들게 맞고, 그러다 죽어 나가고 있단 얘깁니다. 한국의 남편 폭력도 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죠. 거기다 사회면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변심애인 살해'라든가 '이혼한 전처 살해'도 마찬가지 맥락이고요. 여자가 자기 성적 통제권을 벗어났다고 사적으로 처벌/처형하는 남자들은 전세계 모든 지역 모든 문화권에서 고루 고루 발견됩니다. 단지 명예살인이라고 이름 붙은 풍습이 있는 문화권 출신들의 화끈한 살인이 좀 더 특수한 주목을 받고 이슬라모포비아의 구실로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가부장의 여성 살해를 합법화 해주는 노골성도 화끈함을 더해주고요.


명예살인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대 캠페인들은 당연히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회교문화권에서 나옵니다. 특히 그동네 여성들한테서요. 이슬람 학자들도 법대신 자기 손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명예 살인을 악습으로 보고 단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여성의 정조가 가족의 소유 재산으로 간주되는 문화와 남성권력이 너무 강력해서 말로만 엄벌이고 많은 나라들이 가볍게 처벌하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요르단 여자들은 명예살인을 한 남자를 풀어주는 조항을 폐지하라고 데모도 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라니아 왕비까지 명예살인을 엄격하게 처벌하자고 나섰지만 아직까지는 (남자들로 우글거리는) 요르단 의회에서 '잘못한 마누라와 딸을 죽였다고 남자를 처벌한다면 가족의 가치가 무너질 염려가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고 해요.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이 붕괴된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몇몇 인간들 만치나 고루하고 답답하죠. 하지만 파키스탄에선 그동네 여성 단체의 끈질긴 캠페인과 여론의 선회에 힘입어 작년 말에 극단적인 명예살인의 경우 사형, 또는 7년에서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는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죠.

터키에선 몇 년 전 쿠르드족 한 마을에서 강간당해 임신한 딸을 온 가족과 친척이 구타하고 칼로 찔러서, 그  딸이 9달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풀려나서 여전히 잘못한 거 없다고 고개를 쳐들고 다니고 있고요. 이 참극을 쿠르드의 한 극단이 그대로 재현하는 도덕극으로 만들어 그 지역 순회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보는 사람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면서 명예살인이 얼마나 악습인지 깨우쳐 주는 계몽을 목적으로 했다는데, 교육 효과가 좀 있긴 있었나봐요. 터키 당국에선 원래 쿠드르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EU에 가입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라 억지로라도 명예 살인을 좀 줄여볼라고 이 연극을 허용했다고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는게 어딥니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모든 노력을 지지하겠지요. 문화는 핑계가 안됩니다. 저는 직접 도울 수 있는 게 없지만 하다못해 관심을 가지고 서명이나 이메일이라도 보내는 건 하지요. 그리고 여자들의 주체성과 독립이 제재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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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전의 일인데, 잠시 연구직으로 영국에 체류하게 된 방글라데시의 교수 아저씨와 조금 알게 되어 친구들과 함께 거의 밤새도록 열띤 수다를 떤 적이 있었어요. 이사람은 사회학을 전공했고 자기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었죠. 아주 겸손하고 경건한 이슬람 교도인 이 아저씨는 은근하고 점잖으며 구식 매너를 가진 우아한 인간이었습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이슬람교가 특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가라는 쪽으로 흘렀고, 명예 살인도 주제로 등장했습니다. 이사람은 회교가 생명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종교이며, 절대 무작한 살인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개 명예 살인은 교육 정도가 낮고, 무지하며 가난한 지역, 여성을 가부장의 소유물, 상품으로 취급하는 부족적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외딴 지역에서 많이 벌어진다고요. 시골로 갈수록 가족의 명예가 소속된 여자들의 '순결성'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한다고 하길래 그건 거의 모든 전통 가부장 사회의 특징 아니냐고 동의했죠. 아무튼 무슨 이유에서건 소위 명예 살인은 반이슬람적이며 자기네 문화의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보다 세속적이고 현대적인 방글라데시를 만들고 싶어하던 이 아저씨는 현재 이슬람 국가들에서 보이는 노골적인 성차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슬람교를 옹호하면서 옛 악습이 남아 있는 지역 문화적인 요소와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9.11이 나고 살벌해진 상황에서 이런 이성적이고 온건하며 열린 종교관을 가진 목소리가 살아남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행히도, 이런 사람은 아주 예외적이고 대개 제가 만나본 중동지역 출신 남자들은 어느 나라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 주류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람들이었죠. 대개 약소국 사람들 그렇듯이 대단히 애국적이고, 자기 종교와 문화에 강한 애착심을 보이고요. 그리고 가부장권력이 강한 문화권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많은 수가 마마보이에 심란한 섹시스트 공룡,쇼비니스트 돼지들이었죠.


제 기억에 남는 다른 인간 하나. 큰소리로 자기의 수많은 (사실인지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여자친구들에 대해 떠벌리면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온갖 고루한 소리를 해대던 녀석이었는데, 요르단에서 왔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이었어요. 큰 키에 흰 편인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검은 고수머리라서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이라도 통하게 생겼었죠. 자기가 잘 생겼다고 뻐기면서 목에 힘주고 으스대지만 않았어도 좀 더 매력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이 인간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이 정말 불타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좀 지나쳐서 모든 걸 다 그리로 돌리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선량하고 정이 많고 재밌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동체가 아직도 강력한 곳 출신이라 그런지 일단 친해지면 네 일도 내 일, 내 일도 네 일이 되는 사람이었고요.

얘가 메일 쇼비니스트라고 자길 공격해 대는 온갖 국적의 여자들한테 대꾸하면서 이슬람이 실은 친여성적인 종교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언자가 부인을 많이 거느린 건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이며,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우리 형이 연상의 과부랑 몰래 연애를 했는데 집에서 반대하자 모하메드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해서 무사히 결혼했다'는 겁니다. 뭐 다들 웃었죠. 본인은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나중에 누군가'그렇게 올바른 말씀이면 왜 여자만 따라야 하니? 넌 예언자가 마시지 말란 술은 왜 마셔?'하니까 얼굴을 붉힐 염치는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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