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사람같았으면 벌써 다른학교에서 자리를 잡았을텐데..
교수님의 인내와 용기에 새삼스레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정총장도 이번만큼은 대법원 상고는 잊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1998년 교수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교수가 6년에 걸친 기나 긴 투쟁 끝에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서울대측이 또 다시 상고하지 않는 한 김 전교수에 대한 재임용 거부처분은 효력을 잃게 돼 김씨는 7년만에 대학 강단에 다시 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김 전교수의 법정투쟁이 시작된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수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그는 1999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 당시 서울대 이기준 총장을 상대로 교수재임용 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기나긴 법정 투쟁에 돌입한 것.
그는 대학당국에 낸 진정서에서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미대의 역사를 다루는 논문 중 초대 미대학장 등 학계 원로 3명의 친일행위를 거론해 `괘씸죄'에 걸려 보복인사를 당한 것 아니냐"고 억울함을 항변했다.
2000년 1월 서울행정법원이 김 교수에 대해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학교측은 이에 불복, 항고의사를 표명했다.
그해 8월 서울고법은 김 교수가 제기한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청구 각하판결을 내렸고 김 교수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 전교수는 2003년 9월부터 복직을 요구하며 대학본부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가 기약없는 복직을 향한 투쟁을 이어갔다.
같은 해 11월 전국교수노조 등 17개 단체가 `김민수 교수 복직촉구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해 그를 거들었고 같은 달 학교측은 교육부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에 따라 김민수 전 교수에 대한 재심을 논의키로 결정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김 전교수의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청구 각하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파기환송하면서 `전세'는 김 전교수 쪽으로 기울었다.
그의 이번 승리에는 `김민수'를 잊지 않고 쉼없는 지지를 보낸 서울대 일부 교수를 비롯한 재야인사들의 역할도 컸다.
1999년 6월 고(故) 김진균(사회학과) 교수를 비롯해 안병직(경제학부), 이종흔(의학), 장회익(물리학과), 최종태(경영학과) 교수 등 서울대 교수 27명이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힘을 보탰던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 김세균)는 지난해 11월 말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재임용에 탈락한 김민수 교수의 복직 문제에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원 경고조치를 내렸다.
12월에는 최순영, 노회찬 의원 등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5명을 비롯한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교수노조 위원장 황상익 교수 등 403명의 서명으로 감사원에 `김민수 교수의 복직과 심사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국민감사 청구'가 접수됐다.
마침내 28일 서울고법은 김 전교수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1심과 같은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6년에 걸친 법정 투쟁을 벌여온 김 전교수의 불굴의 집념과 의지가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