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에 쁘아종으로 나왔던 홍석천보다, 컨피던스 선전에서 근육질을 드러내보이며 춤을 추던 홍석천이 훨씬 기억에 남습니다. 대사도 한마디 없던 선전이 기억을 지배하는 걸 보면, 상당히 강렬하긴 강렬했던 이미지인 거 같습니다.
의외로, 쁘아종이라는 캐릭터와 게이라는 성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홍석천은 한번 정도 마초적인 배역을 맡아도 좋을 거 같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실제로 쁘아종으로 나오기 전 '남셋여셋' 에피소드 중에서 퉁명스럽고 거친 말투로 대사 한마디를 던지는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죠. 한강 둔치에 앉아서... 어릴 때 본 거라 그런지 기억이 흐릿하네요.
홍석천이 '슬픈연가' 에 나온다고 해서 은근히 기대했어요. '완전한 사랑' 에서의 배역은 김수현 작가의 동성애자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비중은 없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주인공의 친구' 정도로 활용되었으니까요. 물론 덕분에 주류 매체가 용인하는 게이 캐릭터의 최대치 - '쿨하고 친절하지만, 나를 성적 상대로 바라보지 않는 이성친구' - 를 누리며 어느 정도 시청자들과 다시 한번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긴 했지만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수염까지 길렀길래 이번엔 어떨라나 했는데, 역시나 간들어지는 말투와 소극적인 몸놀림은 여전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선 되려 수염은 역효과죠. 아니, 악질적인 역효과죠.
예전에, 사실은 '쓰레기' 로 판명된, 김청 주연의 불후의 C급 에로틱 싸이코 드라마 영화 '헤라퍼플' 이 처음 Cine21같은 곳에 소개될 때엔 그저 '스릴러' 로 소개가 되었고, '마초적인 형사 역할' 로 홍석천이 재기를 노린다고 보도가 되어서 몹시 기대했던 바 있습니다. 왠지 영화속에서 중국인들이 자주 쓰고 나오는 알선글라스를 쓰고 레옹의 게리 올드먼처럼 이빨을 갈아대며 비아냥거리는 홍석천이 머리 속에 그려져서 기대 기대 기대 만빵이었죠.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엄청 희화된 게이 캐릭터였더랬죠. 심지어 게이 성애 장면을 무슨 변태 코미디처럼 연출해놓은 걸 보고 나서 분노가 급상승했습니다. 홍석천이 그런 걸 사전에 알고 출연계약을 맺었으리라곤 도무지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애정도 없는 연출이었습니다. 완전히 뚜껑이 열렸더랬습니다.
어머니가 '슬픈연가'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잠시 끼어들었다가, 허리를 굽실거리는 홍석천을 보고 아쉬움에 써봤습니다. 언젠간 다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가슴을 꼿꼿히 펴고 강렬한 역할을 소화해내는 그를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