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에 divx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게시판에 쓴 것이 아니라 무비스트에서 기획 기사로 내보낸 모양이다. 자칭 영화 매니아라는 사람의 글은 문화적인 토양이 빈약한 이 나라에서 영화 매니아로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것이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화를 찾아 헤매는 매니아들의 수고와 노력은 구분 되어지고 인정 받아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는 듯 하다.
일면 수긍이 가는 것도 있다. 대형 쇼핑몰에 감초처럼 따라 붙는 세련되고 안락한 멀티 플렉스는 나날히 늘어가는데도 정작 볼 영화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자본과 배급력에서 우위에 있는 메이저 배급사들의 영화는 차고 넘치는데도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들은 변변한 상영 기회도 잡지 못 할 뿐더러 눈깜짝할 사이에 시장에서 사라지기 일쑤이다. 웬만큼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 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쯤되면 영화 좀 좋아 한다는 사람들에게서 불만 섞인 투정이 나올만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건 자업 자득이다.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조상 대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탓에 먹고 싸는 것 이외에는 무가치한 것이라는 인식이 지금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언제나 내수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대체 줄일 문화비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고작해야 일년에 한 두번 영화관에 가고 퇴근하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러 비디오와 소설과 만화책을 빌려가는 것이 다인 현실에서 더 이상 줄일 문화비가 어디 있을까.
마치 먹고 살기 힘들면 보고 즐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라도 있는 것 처럼 너도 나도 문화에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 맨다. 한마디로 배부르고 등따스울때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문화라는 거다.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에 관대하고 익숙해질 때 문화도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작은 영화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영상 산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영화로 돈을 버시려거든 버시라. 대신 당신들의 이해관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영화 매니아들의 ‘다운로드’는 방해하지 말라. 영화 매니아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줄 의지도 능력도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불쾌 했던 건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가르고 노골적으로 매니아란 이름에 기대어 지적 우위에 서려는 천박함 때문이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영화 매니아라는 타이틀을 붙여 줬으며 영화 매니아는 도둑질을 해도 된다고 가르쳤는가.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이 적다거나 예술 영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다운 받아도 되지 않느냐는 논리는 대체 이해도 가지 않을 뿐더러 너무나 무책임한 이야기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데이트용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스스로 매니아라고 부를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다면 대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름을 의미 할 것이다.
지금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영화든 접할 수가 있다. 정말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정보와 기회가 차단 되었던 90년대의 이전의 시절이 아니란 말이다. 그 글에서 언급한 것 처럼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 좋은 예이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고전 영화에서 부터 국적과 장르를 망라한 dvd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조금의 부지런만 떤다면 국내에서 개최되는 수 많은 영화제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기회는 분명히 있다.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는 없어도 얼마든지 소통 할 수 있는 길은 열려져 있다.
하지만 댓가를 치루기는 싫다고? 영화 매니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기회가 적기 때문에 다운로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변명은 너무도 궁색하다. 한 때의 유행처럼 무작정 영화를 소비하고 으시 대려는 속물 근성에 구역질이 난다. 영화를 많이 보느냐에 따라 매니아를 가르는 기준도 우습다. 영화는 많이 보는 것 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할 것인데, 오즈 야스지로나 발레리안 보로브칙 같은 이름을 줄줄히 나열 한다고 영화 매니아라고 생각 한다면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그런데, 그토록 줄기차게 부르짖는 다양성에 대한 확보는 오히려 상업 영화들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되고 있는 예술 영화, 혹은 작은 영화들에게 더 엄격히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은 영화 쿼터제를 도입 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기형적인 산업 구조에서 예술 영화와 작은 영화들이 서야 할 자리는 더욱 더 좁아지고 이나마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열정과 소수의 자발적인 관객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치 순수한 영화 매니아가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일방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듯한 과도한 자의식(어줍잖은 우월감이기도 할)이 피해망상 속에서 허우적 대는 것은 꼴불견이다. 단순히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것을 정당화 하려는 시도들이 다양한 영화 보기를 가능하지 못 하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라는 것을, 얼마 되지도 않는 시장의 수요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적어도 영화 매니아라면 다양한 영화 보기의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는 치졸한 변명으로 합리화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게으름과 빈약한 애정을 되돌아 봐야 하는 것이 순서이고 손가락을 놀리는 것 외에 어떠한 노력과 비용도 투자할 수 없다면 영화 매니아라는 호사스런 타이틀은 갖다 버리는 게 마땅하다.
백번 양보해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것도 자유라고 하자. 비록 그것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온당치 않은 것이라 해도 혼자만 보고 말겠다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합법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서도 저지르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닐진데 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것만 문제가 되어야 겠는가. 그러나 대놓고 자랑 하지는 마라. 그리고 아무런 댓가없이 취한 것에 대해 입도 뻥끗 하지 마라. 그것이 수 많은 밤을 새워가며 창작의 고통과 치열한 싸움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자 예의이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진짜 영화 매니아들이 보면 화낸다.
2005. 01. 28
dana
------------------------------
이해가 갑니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문화적 토양에 대해 지적을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 DivX 소장목록에 최신개봉작이 아닌 영화가 담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