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 ginger
  •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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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더우먼 리뷰 페이지에 계속 접속이 안되는데요, 저만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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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비디 가게에서 몇 개 안되는 '세계' 영화들 틈에 류승범의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Conduct Zero'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죠. 소리 소문도 없이 '품행제로'가 영국에서 디비디로 나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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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은 이라크의 선거날, 선거를 방해하는 테러에도 불구하고 무려 60%에 가까운 사람들이 투표했답니다. 베일들을 쓰고 줄을 서서 투표하는 이라크 여자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좀 존경스럽더군요. 그야말로 목숨 걸고 투표하러 나선 거잖아요.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나 안정된 세상이 오길 바라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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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유는 자유일뿐 공정함이라든가 평등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이사야 벌린이 말한 적이 있죠. 두 가치는 종종 충돌합니다. 극단적인 자유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들은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공평함도 갖추고 싶어하죠. 이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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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왕년에 '레드 켄'으로 불렸던 현재 런던 시장 켄 리빙스턴은 다양성과 관용에 대한 제스처로 런던을 방문한 이집트의 무슬림 종교 지도자를 껴안았습니다. 근데 그사람은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심란한 호모포비아에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를 때려서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면 리빙스턴은 동성애자와 여자들에게 참으로 공평하지 않은 제스처를 한 셈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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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제 86년 비비씨 미니 시리즈 '여악마의 인생과 사랑(Life and Loves of a She-Devil)'을 디비디로 보고 감상문을 길게 썼다가 날렸습니다. 허탈하더군요..



오래 전에 늘어진 비디오로 봤는데 다시 봐도 정말 재밌었어요. 페이 웰던(Fay Weldon)의 동명 소설을 충실하게 반영한 드라마로, 좀 기괴하고 풍자로 넘치는 블랙 코미디죠. 그리고 몽테 크리스토 백작에 버금가는 황당무계하지만 집요하고 통쾌한 복수극이기도 하고요. 또 어떻게 보면 부러움에 대한 연구이기도 해요. 엄청난 거인에다 못생기고 못 배웠다고 구박 받다 결국 이혼당하게 된 루스의 이야기가 강력한 70년대 페미니즘의 영향을 폴폴 풍기면서 펼쳐집니다. 루스 역의 줄리 T 월러스는 185를 훌쩍 넘기는 장신에 정말 기골이 장대한 글래머인데요, 이 역을 하느라고 20kg을 늘렸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엔 제임스 본드 영화에 러시아 여자로 출연했죠. 이 사람 정말 멋있어요...


007 'The Living Daylight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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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테오 반 고흐의 끔찍한 살인 때문에 분방하기로 소문난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정신적으로 아주 혼란한 상태에 빠진 것 같아요. 너는 너대로, 난 나대로 소극적으로 공존하면서 살던 게 심각하게 흔들렸으니까요. 그 살인 나고 나서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치솟았고, 조용하고 평화롭던 다른 소도시의 이슬람 학교나 모스크가 공격당하는 일이 생겼다고 하네요. 극단주의자들이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걸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꽤 많은 숫자의 무슬림 이민자들 살고 있는 유럽에선 이제 이들과 어떻게 적극적으로 공존할 것인가라는 더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의미하죠. 프랑스에선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한테 프랑스식 근대적 이념 교육을 강제로 받게 하는 법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무슬림들을 현대 프랑스에 통합시키려는 몸부림 같은데, 잘 안 될 것 같던데요.

고흐의 문제의 영화 'Submission'은 아이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란 여자가 깊이 관여한 작품입니다.(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이 영화 상영이 취소되었다더군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겁먹고 막판에 주최측에서 내렸답니다.) 알리는 소말리아 출신으로 어려서 여성 할례를 당하고, 나중엔 독일에 있는 얼굴도 못 본 사촌과 결혼하러 보내졌지만 네덜란드로 달아나서 망명자격을 얻었던 사람입니다. 네덜란드어는 한 마디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지만 거기서 공장 청소부 노릇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정치학을 공부했다고 해요. 사회복지와 관련해서 이민자 가족의 통역도 하고요.

Ayaan Hirsi Ali


이 사람이 노동당의 연구원 자격으로 네덜란드의 무슬림 여자들의 실태에 대해 보고서를 썼는데, 이게 꽤나 통렬하게 무슬림을 공격하는 것이었나 보더라고요. 네덜란드의 무슬림 여자들이 자기네 문화란 이름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있는지, 닫힌 문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지 쓴 건 좋았는데, 리버럴한 정부가 이걸 그냥 내버려 둔 게 잘못이라고, 원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무슬림 책과 지도자들을 금지시키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겁니다. 이슬람 학교와 모스크에 보조금을 주면 다양성을 지원하던 노동당한테는 이게 감당이 안되는 주장이었고, 이민자에 대한 규제를 외치던 보수파들한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겠죠. 알리는 'boat is full'을 외치는 우파 자유당에 스카웃되어 선거에 투입되었고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곤 티비에 나와서 자긴 이슬람을 버렸다고 하면서 '이슬람은 12세기적이고 후진적인 종교'이고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모하메드는 변태(아홉살짜리 신부 아이샤랑 결혼했다는 점에서)에 독재자'란 말을 해 댄 거에요. 당장 온갖 협박과 욕설, 살해 위협이 따랐고 이 사람은 숨어서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테오 반 고흐와 문제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만 고흐가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백주에 살해당했던 거죠.

알리는 과격 무슬림 남자들이 증오를 쏟아 말하듯 정신나간 배신자인가요? 아니면 온건파들이 말하듯 서양의 모델 이민자에 불과한가요? 아니면 경험에서 우러난 신념에 찬 용감한 페미니스트/자유주의자일까요? 고흐는 표현의 자유의 순교자였을까요? 아니면 선정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을까요?

저는 속 시원하게 자기 생각을 외쳐버린 알리가 네덜란드 이슬람 사회에서 실제로 억압받고 있는 여자들한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갈등의 여지가 많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 단순하지만 과격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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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저번에 '문화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는데, 조금 모자랐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보충하자면, '문화'나 '전통'적 가부장을 명예살인의 이유로 보는 건 정말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흔히 전통, 특히 타인의 전통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롭고 고정된 것이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명예살인을 전통 탓이라고 돌리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아주 기본적인 권리의 침해는 이 '전통' 속에 묻혀버리구요.

터키를 예로 들면, 터키는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이고, 명예살인을 근대화되면 '저절로' 사라질 구악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애쓰지도 않고요. 터키의 판사들이 명예살인의 가해자를 재판할 때 가족의 명예가 여성의 복지보다 중요한 사회의 관습과 전통을 반영해서 형을 가볍게 하는 걸 상식이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이 전원 남자인, 원수진 혈족간 '피의 분쟁'의 경우, 같은 '전통'이라도 뿌리 뽑아야 할 악습으로 보고 가해자의 형량을 늘린다고 해요.

터키는 인구가 칠천만입니다. 근데 여성 피난처가 딱 여덟 군데 있고, 24시간 운영되는 핫라인, 여성의 전화같은 건 있지도 않답니다. 국가의 통계기관에선 명예 살인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폭력의 통계를 내지 않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에선 가족들이 요구하면 미성년 여자들한테 처녀성 테스트를 제공합니다. 소녀들이 이 테스트를 통해 겪는 수치와 모욕은 정확히 그 가족이 자기 딸들한테 원하는 겁니다.

이쯤되면 '전통이라 어쩔 수 없다' 내지는 '원래 우리 문화다'라면서 손 놓고 있는 국가/기관들한테도 명예살인 존속의 책임이 있다는 건 명백해지죠. '전통'으로 가려지는 건 국가를 이루는 다양한 기관과 제도, 이해 당사자들의 진짜 권력 투쟁과 사회의 내부적 갈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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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알란 베넷의 새 연극 'The History Boys'에서 등장인물이 역사에 대해 간결히 정의한다고 합니다. 'History is just one fucking thing after another.' 이 연극을 보러가고 싶은데 매진의 행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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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저는 어려서부터 단기 기억이 형편없었습니다. 방금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지갑은 어디갔는지, 가방이 어딨는지 정말 불과 몇 분 전의 일이 하얗게 기억이 안난 적이 한 두번이 아니거든요. 심지어 가방을 두고 학교에 간 적도 있습니다...기억은 안 나지만 등에 멘 줄로 굳게 믿구요. 덕분에 자구책으로 열쇠는 꼭 같은 장소에 둔다든가, 웬만한 번호는 다 외운다든가, 그날 필요한 숫자나 정보는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손등에 적는다는가 하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근데 지금은 증상이 심해져서 메멘토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아주 금방 무슨 생각이 났는데 정말 몇 초 사이에 손가락 틈새의 물처럼 빠져나가서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이러다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기억이 나죠. 저도 뭐든 생각 나자 마자 메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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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는 히피같은 차림의 할아버지와 그 강아지 커플을 보면 안 웃을 수가 없습니다. 흰 머리를 어깨까지 산발로 기르고 얼룩덜룩한 바지에 수놓은 인도풍 조끼를 입은 꽤 키가 큰 할아버지가 잡종의 아주 조그마한 갈색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나오는데요, 요녀석이 거의 자기 얼굴만한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 인형을 꼭 물고 다니는 겁니다. 잠깐 쉴 때 내려 놓는 것 빼고는 절대로 안 놔요. 저는 처음에 이게 이상한 초록색 공인줄 알았거든요. 주인이나 강아지나 정말 개성이 강하더군요. 아마 얘한테 니모 인형은 라이너스의 담요같은 건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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