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그때 그 사람들] 가장 어이없는 점

  • heyday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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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글루에 올렸던 글입니다.   마구 휘갈겨 써 내려간 글이라 불친절하게 비약된 부분도 많고 누구 보이기는 좀 부끄럽지만....지금의 분노 경향이 다소 cooling off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썼던 거에요.

개인적으로 쓴 글이라, 반말입니다. 이해바라구요.

반론 환영입니다.  저 역시도 제 의견에 100% 확신하는 쪽은 아니거든요.





세장면을 삭제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후, 인터넷이 시끄럽다.

영화인들은 표현의 자유와 사전검열금지라는 헌법정신의 훼손이라고, 관객들은 볼 권리의 원천적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이상은 국가권력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복종을 요구할 수 없는 시대다. 법원이 추상화되고 강요된 권위가 아닌 이해를 통하여 스스로 존중받는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시대 일반인들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에 기반한, 기본권 보호라는 본질적 목적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사람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시대적 가치와 기본권 보호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구시대적인 판결일까.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검열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어찌보면 무의미한 일이다.

헌법상의 사전검열금지원칙은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의 금지를 의미하는데 반하여,

이 사건 가처분 결정과 같이 충돌되는 헌법적 가치, 즉 개인의 명예 또는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충돌의 문제는 다른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양보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의 선을 긋는 문제이고, 그 선을 긋기 위하여서는 작품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처분 결정 그 자체에 대한 비판-법원은 우리의 볼 권리를 막을 권한이 없다는 류의 -은 그 시작점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나 역시 그때 그사람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넋두리 역시 무용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신문기사에 드러난 내용에서 나는 재판부가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관계가 맞다는 전제하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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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소개된 '그때 그사람'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마초들의 경쟁을 희화화하는 블랙코미디라고 한다. 재판부도 이 영화를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영화의 일부 장면이 '각하'를 성적 사생활이 문란하고, 일본어를 사용하는 등의 인물로 묘사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갖게 하지만,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시키려면 주관적인 명예감정의 침해?아니라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가 저해됐다고 인정돼야" 하며, "이 영화는 허구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로 풍자가 본질적이며, 몇몇 패러디 장면은 관객들이 실제와 같다고 인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 영화로 인해 고인에 대한 평가가 크게 바뀌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는 지나치다"고 밝혔다.

즉,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되지만, 풍자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면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허구와 상상에 기초하여 만든 블랙코미디임을 영화사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의 실명이 드러나는 일부 장면은 이 영화가 사실에 고증한 역사영화인 것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으니 영화의 표현 내용 자체는 건드리지 않되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의 삭제를 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애초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박지만의 의도에도 부합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박정희라는 이름 자체가 빠진다 하여 사람들이 영화속 인물이 완벽하게 새로이 창조된 허구의 인물이라고 이해할리 없고, 여자품속에서 희희낙락대는 유족의 감정을 정작 상하게 할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해서는 전혀 삭제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가처분 결정은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이 표현의 자유 영역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라는 실존 인물을 풍자함으로써 그 인물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갖게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저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법제는 명예훼손죄를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1인에게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죄가 인정된다고 볼 뿐만 아니라, 명예의 훼손 여부에 대한 판단 역시 실무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사회적 정서라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그다지 넓게 인정하고 있지 않아왔다는 점에서 볼 때, 나는 이번 가처분 결정이 상당히 유연하게 내려진 결정이라고 본다. 또한, 이번 가처분 결정이 앞으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어찌 보면 나의 오버일 수도 있는) 기대까지 하여 본다.

물론, 재판부의 판단이 옳지 않다고 내 의견을 변경할 가능성 역시 열려있다. 나 역시 그때 그사람을 아직 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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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이 두가지 가치를 조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접점이라는 것은 동시대의 감성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수시로 변동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내 관점하에서는, 박정희라는 실명을 거론하더라도 무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호되기 위하여서는 위 명제에 박정희라는 이름이 빠지고 다른 이름이 들어갔을 때에도 우리가 그 결과물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이유의 상당부분은 그 대상이 박정희와 그 아들 박지만이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영화적 목적이 퇴색되었다는 한선교의원의 말도 안되는 지적에 동의할 의도도 없으며,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설치고 있는 그의 자제들에게 지금까지도 충분히 과대존중받아 온 걸 고맙게 여기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끄러움을 말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지만,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호될 것인가의 문제는 적어도 그러한 정치적인 견해와 어느 정도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절차적 적법성 자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 절차를 의결한 것은 다수의 횡포이며 열린우리당이 단독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감행하는 것은 당연한 다수당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처럼,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한 분노 역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정치적 평가에 의해 유동적인 분노가 아닌지.

재판부가 실명풍자영화에 대해서 가위질을 해서는 안된다는 문제와 박정희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평가가 실명풍자를 하더라도 무관한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그러한 영화 역시 용인되어야 한다는 문제의 제기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의 원칙적이고 일반적인 문제이고, 후자는 표현의 자유 영역을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하는 문제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논의는 양자가 뒤섞이고 혼재되어 있다. 적어도 후자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서라면 영화부터 먼저 봐야 하는것 아닌지? 불행히도 지금 가처분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영화의 내용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또, 박정희가 아닌, 김대중전대통령이나 그 외의 인사들이 주인공이었다면 과연 나는, 우리는 그 영화를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내 개인적 관점을 떠나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가 표현의 자유를 그 정도로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대해서 우리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희준과 초난강은 씹고 굽고 삶아도 되고, 사회 저명 인사는 손대면 안되고, 박근혜풍자포스터는 괜찮고 대통령풍자포스터는 안되고, 그 기준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각자의 정치적 선호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해 분노하기에 앞서 표현의 자유의 영역을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어디까지 사회적으로 감내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고 앞으로의 논쟁도 그 부분에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지금의 분노는 뭔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p.s.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무지 많이 기대된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적 재능은 차치하고라도 임상수라는 사람의 약간 삐뚤어진듯한 세계관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마초들의 경쟁을 희화화했다는 문구를 읽고 얼마나 즐거웠던지...난 이 영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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