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는 북한의 중국(영향권)에의 편입을 용인할 수 있을까요?
존 스튜어트 밀이 On Liberty에서 말한 것처럼 틀린 의견이라도, (1) 옳은 의견이 옳다는 걸 분명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을 수도 있고 (2) 일부라도 옳은 의견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3) (매우 드문 경우이겠지만) 나중에 옳은 의견으로 밝혀 질 수 있을 수도 있기에, ((1)번에 해당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겠지만) 그리고 아카데미 후보작 국내 개봉일정에 관한 글을 통해 “낚시질”한 소중한 여러분들의 댓글들로부터 배운바도 많고 해서 전부터 생각해 온 위 가정적인 질문에 대한 글쓰기를 한 번 시도해 볼까 합니다. 또한 제가 :“여러 가지”라고 올린 글에 대하여 “민족주의”에 대한 제 생각을 물어 보신 분도 있고 해서 그에 대한 간접적인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사족이지만, 이 글에 대한 댓글들을 통해서 제 생각을 가다듬고 배우면 좋겠지만, 뭐 그렇지 않고 한 분이라도 제가 쓴 글을 읽어 주신다면 그걸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얼마 전인가요, 미국 어느 보수적 연구소의 연구원 한 명이 한국의 집권당 의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하면서 북한의 경우 한국과의 통일보다는 장기적으로는 중국에의 편입 가능성이 더 높다는 취지로 얘기를 하였다는 보도를 본 일이 있습니다. 물론 위 세미나에 참석했던 의원들은 그러한 주장에 강력히 반발했을테구요, 제가 이에 관한 뉴스를 그 다음에 추적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후 별다른 반응 없이 다른 뉴스들에 묻혀서 그냥 지나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은 그 세미나 관련 기사를 보고 어쩌면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해서 한 번 논의를 제기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여기냐고 짜증난다는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만, 태양광결핍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 이 게시판 사용자라는 걸 좋아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보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좀 과장을 섞어서 말하면, 그리고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사정을 어느 정도 무시하고 얘기하자면, 북한의 중국 편입은 이미 상당 정도 진행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군요. 외신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는 작년인가 재작년 2월인가 북한이 6자 회담 참여를 거부했을 때 중국이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북한에 공급하는 석유, 가스의 파이프라인을 끊어 버렸고 그 직후 북한이 고분고분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는 사례이지요.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한국 내 여론이 팔팔 끓었던 것에 비하면 북한의 공식적 반응이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조용한 것도 (많은 분들이 이미 지적한 것으로 압니다만)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의 현 주소를 잘 보여 주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구요. 중국이 현재 公安을 통해 탈북자들을 단속하고 북한으로 돌려 보내는 일을 만일 중단하고 1989년의 헝가리가 동독 난민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이른바 국경개방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과연 북한정권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여기서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처럼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채널에서는 이미 북한의 중국 편입을 전제로 하여 깊숙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를 저 같은 아마추어가 헤아릴 능력도 없고 그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요. 다만, 저는 (어찌보면 소박한 의문인데) 과연 그렇게 북한이 중국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면 점점 더 중국에 의존적이 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 부정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평화조약이나 불가침 조약의 문구도 그 평화를 유지할 군사적 균형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 종이 값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베트남전 때의 파리 강화조약이나 獨蘇 불가침 조약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군요. 두 경우 다 조약의 일방당사자가 상대방과의 군사적 균형이 깨졌고 자신이 상대방을 압도한다는 믿음에서 깨어 버린 사례가 아닐까 싶군요) 북한정권이 줄기차게 미국에 대하여 요구하고 있는 “대북적대정책의 포기”가 아무리 금박으로 장식된 문서에 의하여 전달이 된다고 할지라도 북한이나 미국이나 그걸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당연히 북한정권 입장에서는 그러한 평화조약의 체결과 휴전협정의 종식으로 미군의 한반도에서의 국제법적 주둔 근거를 없애서 미군을 철수 시킨 다음 깨어진 군사균형 앞에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한반도 정세를 요리하겠다는 심산일 것이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미국이 그것을 용납하고는 있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의도가 다른 것이다라는 진지한 믿음이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한 논의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런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방안의 하나로 생각해 본 것은 양측 다 상대방의 말을 믿지 못하니 (일종의 공포의 균형이 되겠지만) 믿음직한(?) 대응 무력을 북한정권이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입니다. (물론 그 대응무력이 핵무기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구요, 이 문제에 대해서 역시 한국 사회의 광범위한 여론이 용인하는 분위기인 것은 1980년대 대학 운동권의 반핵운동을 고려해 볼 때 지적으로도 정말 부정직한 혐오스러운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역시 별도의 글로 한참을 떠들어 댈만한 주제이니 관련 논의 역시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짐작하신 분도 있겠지만 제가 멋대로 그 대응무력으로 생각해 본 것은 중국 인민해방군입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북한에 주둔하는 평화방안(?)입니다.
북한정권으로서는 특히 43대 부시대통령 행정부의 말은 못 믿겠다는 것이고 부시 행정부도 김정일의 말은 못 믿겠다는 것이니 양쪽 다 북한핵문제 해결에 대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중국이 그 군대를 북한에 보냄으로써, 만약 북한정권의 주장대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일이 생긴다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말하자면 인계철선(trip wire)이 되어 미국으로서는 중국과의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에는 북한을 공격할 수 없게 보장을 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나아가 주한미군이 실은 한국 군부의 행동을 견제하는 기능도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 주둔하게 되는 중국 인민해방군은 북한군의 돌출 행동을 견제하는 숨은 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요.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 비용부담은 (점점 비현실적인 망상이 되어 간다는 것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주도적이 되어서 기왕이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 간 것을 걱정하는 일본 정부도 참여 시켜서 하는게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금강산 관광료” 명목으로 보내는 달러들이나 정상회담 성사용으로 보냈다는 4억불인지 5억불인지 하는 돈보다는 평화유지비용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믿고 싶습니다만 뒤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한국 “민족주의”가 용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군요.
천안문 사건 때 그 명칭과 전혀 걸맞는 군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준 군대이고, 가까이는 6.25 때의 경험과 멀리는 “원군”으로 왔었다던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군대에 이르기까지 중국군이 한국에 원정 오는 것은 별로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만, 홍콩 및 마카오 반환 후에 그럭저럭 별 탈 없이 두 도시의 치안과 자유를 “지켜주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슬슬 마을을 점령한 마적단에 가까운 수준으로까지 전락해 간다는 소문이 있는 적어도 북한의 현정권과 그 군대보다는 인민해방군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한국과 일본이 주둔비용을 댄다면 나토나 바르샤바 조약기구 간처럼 (전례가 있었는지 아니면 서로 오라고 제의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군사훈련 참관단 같은 걸 보내는 조항을 넣어서 (현지 주민들에 대한 약탈이랄까 그런 부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시를 하는 장치를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요. 중국 정부가 그런 조항을 받아 들일지는 물론 의문이겠지만 돈을 내게 된다면 일단 제안은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이럴 가능성은 현재 상황에서 거의 없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중국에 의존적인 북한은 아마 그 의존도가 더 심화되겠지요. 중국의 무력을 믿고 북한정권에 도전하는 그룹이 정권 내부에서 생겨 날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보다 친 중국적인 그룹이 북한 정권 담당자로 들어 설 수도 있겠고, 중국은 동북공정에서 멀리는 안동도호부, 漢四郡까지 거슬러 올라 가 (저 역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팬이었던 관계로 중국의 그러한 연고권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이 점은 시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양 쪽의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북한 전체가 제2의 조선족 자치구 비슷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게 되겠지요.
하지만 순수하게 “한반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한반도 북부가 중국에 편입되는 것이 나쁜 일일까요? 첫째, 대기근 등으로 해서 몇 백만명이 죽어 나가도 눈하나 깜짝 안 했던 북한 정권 하에 있는 것과 그래도 개혁개방 정책을 경제측면에서라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중국 정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저 역시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은 빵점이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간단하게 나마 趙紫陽에 관한 게시물에서 언급한바 있습니다)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현재의 북한정권이 더 나을 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둘째, 이런 공상의 근거는 중국군의 주둔으로 말미암아 한반도 북부에 있는 핵무기가 모두 철거되고, 뭐 설령 중국이 핵무기를 배치한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의 북한정권보다는 훨씬 덜 위험한 정권으로 인식되고 있는 중국정부가 관리하는 것이니까 객관적으로 보아서 한국 국민들에게도 안보 불안이 덜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셋째,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골치 아픈 지금의 북한 정권이 사라져 준다면 대량살상무기 확산도 저지하는 셈이고 지역 안정도 달성이 되는 셈이니까 미군의 코 앞에 중국군이 있는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한국 “민족주의”에 입힐 씻을 수 없는 상처겠지요. 강대국에 의한 남북분단도 서러운데 북쪽 절반을 들어서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한테 바치자는 이런 발칙한 주장이 요새 같은 분위기에서 씨도 안 먹힌다는 것은 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그러니 제발 이 글을 어디에 퍼 나른다든가 하지 말아 주십시오-_-) 더군다나 제 논리의 저변에 깔려 있는 현재의 북한 정권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은 요새의 주류적 여론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구요. 나아가 많은 분들이 싫어하시는 조갑제 사장으로 대표되는 국내의 보수진영에서도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시고 아마 더 극렬히 반대하시겠지요. 외국에 살고 있으니 국내사정도 모르는 Cato라는 놈은 미국 정치에나 신경쓰지 헛소리 그만 하라는 얘기들이 벌써 귀에 울리는듯 하네요.
뭐 그런 말씀들을 댓글로 하시든지 아니면 글을 읽으시면서 혀를 차는 것으로 끝내시든지 저로서는 어느 쪽이나마 환영입니다만, 만약에 말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의 해결책이 만에 하나 백만분의 하나라도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제시된다면, 한국의 “민족주의”가 그걸 거부할 힘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은 해 보셨는지요? 한국에 대해서는 집권당의 의석 과반수가 무너지는 것까지 걱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관심을 보여 주면서도 중국이 동북공정 같은 걸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목소리도 못 내는 북한정권이 효과적으로 저항할까요? 언제나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한국의 현정부의 입장은 어떨까요? 국민여론은 엄청 들끓겠지요.
하지만 (지금 와서는 무척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에 하나 북한정권이 갑자기 붕괴하는 일이 생긴다면 북한지역의 운명이 한국정부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믿으시는지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박명림 교수님의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1950년 가을-겨울에 유엔군이 북한에 진주하였을 때 모든 통제권은 유엔군이 가지고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북한 방문조차 완전히 개인자격으로 이루어졌다는 부분을 읽고 나서 주변국들이 바라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겠더군요. 아마도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에 의한 관리가 이루어질테고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가겠지만 예컨대 중국의 반대 같은 걸 고려해 보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닐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현실성이 없는 얘기를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드리고요, (거의 명백해 보이시겠지만) 이런 주장이 망발이라는 걸 보여주시면(틀림없이 곧 그렇게 묵사발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뭐랄까 이 글도 反面敎師정도로서의 존재의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