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님 옛날 배우들의 인물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해보다 인상에 남았던 예전 드라마 생각이 났어요.
제 기억에 아주 좋게 남아 있는 드라마는 '사춘기'입니다. 잔잔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사춘기 애들 얘기가 유난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꽤 현실적으로 그려졌고, 유머도 넘쳐서 정말 좋았죠. 열심히 챙겨 봤는데.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도 열심히 봤어요. 거기 나온 낡은 단독주택이 굉장히 근사해보이기까지 했죠. 주제 음악도 기억납니다. 주찬옥 극본으로 고개숙인 남자도 있었죠. 그건 보다 말았는데, 극 초기에 혼외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네 집에 살러 들어간 장면이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크로닌의 성채의 번안극이었던 '천사의 선택'도 약간 정서가 안 맞는 부분을 빼고 참신했었죠. 한국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탄광주나 의사를 비롯한 그 동네 중산계급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피아노 치는 걸 들으면서 노는 장면은 참 어색하긴 했어요. 저는 이 극에서 문성근의 부인역으로 나왔던 배우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짧게 커트친 머리를 하고 눈이 동그랗고 목이 긴, 약간 불균형한 얼굴의 배우였는데, 그 이후는 본 일이 없네요. 굉장히 상큼하고 분위기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름은 모르겠어요. 누구 아시는 분?
좀 어색하지만 범상치 않았던 번안극 중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을 각색한 게 있었어요. 아마 황인뢰 연출이었던 것 같은데 정서가 다른 문화권을 각색했을 때의 어색함을 넘어선 기괴함이 그래도 전달이 되는 편이었죠. 제목이 뭐였더라..이미연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사람 보다는 주인공이었던 권인하인가? 하는 가수의 장님 연기가 더 기억에 남아있네요. 하도 어색해서요....
'억새바람'은 최초로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많은 걱정거리를 가지고 사는 소수민족의 일상으로 보여준 작품아니었나요? 거기서 '하버드' 대학생으로 나왔던 배우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떠들썩...그 사람 연기는 나무토막같이 딱딱했고 발음도 아주 약간 혀가 짧은 소리가 나왔었죠. 이 배우는 '결혼'이란, 등장인물이 모두 극악무도하고 독하게 말을 퍼부어 대는 드라마에서 고시생으로 나와서 비슷하게 딱딱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혼이란 드라마에서 기억이 나는 건 최명길이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감정 누르는 연기 하는 거하고, 유호정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돈 많은 남자랑 중매결혼 했다가 신혼여행가서 엄청난 꼴을 당하는 장면(야하기도 했죠.), 그리고 '외무고시 붙었다'고 찾아온 옛날 애인더러 유호정이 '그거 가지고 안된다.(사시를 붙어야 한다는 뜻이었나? 아직도 이해가 안 가고 있어요.)' 하던 게 생각나요. 어쩌면 고루고루 속물적인 가치관과 얘기를 그렇게 신경질적인 멜로로 비장하게 늘어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