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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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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경우 (가본나라가 여기밖에 없네요.. -_-;) 스페인의 300년간 지배를 받았지만
현재 스페인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남미의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죠. 물론 필리핀말(Pilipino)에 스페인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숫자를 세는 법, 인사말(kumusta? 남미는 komusta??), 지명(del Sur, del Norte), 이름 등에서
많이 남아있습니다. 1960,70년대까지만해도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스페인(혹은 멕시코..) 드라마는 항상 더빙을
해야 하지요.
이게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말을 매우 사랑해서 그렇나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해방 이후
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영어가 널리 퍼지면서 스페인말이 힘을 못추고 밀려난 것이죠.
사회의 기본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근대 교육을 시작하면서 영어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미제라면 사람들이 사족을 못쓰고 좋아하던 것처럼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이 최고'라는 가치가 심어진 것이죠. 이에 따라서 영어도 '우월한 언어'
라는 가치가 심어집니다. 영어를 쓰면 어깨를 으쓱 거릴 정도로 교양있는 사람의 척도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못할까요.. -_-;)
필리핀도 물론 국어가 있습니다. 따갈로그라는 루손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필리피노(Pilipino)가 국어이죠. 그러나 예전에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필리피노를 사용하는
학생을 혼낼 정도로 영어가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30대 이상에서는 대부분 영어를
잘 사용합니다.
배운것을 뽐내기 위해서는 (이것조차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영어로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공적인 자리에서는 거의 100% 영어를 사용합니다. 영어를 쓰면 말을 하는 사람에게 '배운사람',
'똑똑한 사람', '유식한 사람' 같은 후광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이게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적인
자리에서는 또 필리핀어를 사용합니다. 영어를 미국사람보다도 더 잘해도 일상생활에서는 영어보다는
필리핀어가 편한 셈이죠. -_-; 이렇게 영어를 널리 쓰는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필리핀어를 사용할 때에도 필리핀어 표현이 점점 없어지고 영어 표현과 뒤섞여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kumsta ka?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말에 mabuti naman (괜찮아요)
라는 말 대신 ok lang (그냥 ok) 이라고 하죠. nice to meet you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긴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잘 모름.. -_-;) 일상 표현이 이 정도이니 필리핀어로 학문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국도 어려움이 많죠..) 얼마전에는 수학, 과학을 영어로 가르칠 것이냐
필리핀어로 가르칠 것이냐로 한바탕 토론이 벌어질 정도였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예쁜 메스티사(스페인계 혼혈 아가씨 -_-;)들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영어 역시
조금씩 힘을 잃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육을 잘 받지 않은 일반 청소년들은 영어를 잘 쓰지 못합니다.
아.. 물론 한국의 평균적인 청소년 보다야 1000% 정도 잘하겠지만 -_-; 윗세대에 비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필리핀어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죠.그러나 문제는 필리핀어
수준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이상으로 구사를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것은 필리핀어보다 더 열등한 언어들이 지방의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전체
인구중에서 따갈로그만 알아듣는 사람보다 세부아노(세부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언제까지나 이 언어는 2등 (아니 3등.. -_-) 언어입니다. TV 에서 가정부
아줌마들이 '그류.. 지가 뭐 아남유...' 라면서 사투리를 쓰는 것처럼 마닐라에서 지방의 사투리를 쓰면
이건 거의 100% 시골뜨기 취급을 받습니다. 말이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일단 따갈로그를 쓰는 사람들은
지방의 언어를 하나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따갈로그로는 Saan ka?(어디가?) 라고 하는데
세부아노로는 asa ka? 라고 합니다. 매우 간단한 말인데 대부분의 따갈로그 쓰는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_-; 그래서 지방 출신 사람들은 마닐라에서 자신의 억양을 감추고 (특히나
아가씨들은 -_-;) 따갈로그를 필사적(?)으로 공부합니다. 한 친구는 마닐라로 전학갔는데 친구들이
놀려서 눈물을 흘리며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세부아노로 물어보면 따갈로그로 대답하는
(따갈로그는 잘 몰라요.. -_-;) 어처구니없는 일도 자주 발생합니다.
진짜 심각한 경우에는 제가 살던 곳에 저쪽 시골(삼보앙가)에서 건너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스페인어의 방언인 자파카노를 사용해서 자파카노와 영어외에는 잘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TV 를
보다가도 따갈로그 방송이 나오면 '저게 무슨 소리야?' 라면서 주변에 묻고는 합니다. 외국인이 저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농담으로 '비공식적인 외국인'이라고 하죠.. 결국 몇달만에 미쳤습니다. -_-;
이렇게 필리핀에서는 영어 > 필리피노(따갈로그) > 지방 사투리 같은 식으로 언어의 순위가 매겨져
있습니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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