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구니히코란 분이 무슨일 때문에 부모님이 위로를 해주셨나 싶어 글을 찾아 읽어보니 실직얘기더군요. 근데 저도 어제 실직이란 말과 다름없는 얘기를 들었지요.
그 회사에 들어간지는 세달이 안된거 같습니다.
이 쪽일이 성수기를 타는 일이라 일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세달간 평일과 토요일엔 개인적 약속은 커녕 시내에 나가 시디한장 책 한권 살 여유없이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씻고 자는 상황의 반복이었죠. 출근은 어찌나 빠른지 정말 잠깐 자고 눈뜬거 같은데 출근시간이죠. 뭐 주말엔 나름대로 제 시간을 가질수 있었지만 밀린 잠자기 바빴죠. 물론 그만한 보상이 있었기에 일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달을 정신없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제 금요일날 모든일을 처리하니 몇몇 사소한 일을 빼면 저는 회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느긋한 오후를 보낼수 있었죠.
그런데 어제아침 회의 시간에 과장님이 사장의 선전포고를 전해 주셨지요. 이번 성수기 시즌의 성적이 예년에 비해 절반도 안되었다나.. 그래서 회사가 많이 힘들어졌고 같은 일을 하는 바로 옆회사와 비교해도 형편 없다고 말이죠. 옆회사는 공휴일이며 낮밤 없이 일하는데 우리들은 빨간날 다쉬면서 야근도 적게 했다나.. (토요일날 정해진 퇴근시간이 저녁이고 물론 당연한거지만 내일도 일합니다) 이런식으로 일이 밀리니 주문하던 사업체들도 전부 다른곳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고.(사장의 로비능력은 제로입니다. 우리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감을 못잡아 거래처에게 엉뚱한 대답을 하기가 일쑤이고 술자리 매너가 드러워서 거래처 사장과 싸운적도 여러번이더군요. 세달동안 회식을 몇번 했는데 우리 사장한텐 한번 얻어먹고 나머진 전부 거래처 사장님이 바쁜데 자기회사꺼 먼저 해줘 고맙다고 봉투를 몇번 주신거죠.)
그래서 2월의 성적을 봐서 거의 30년간 이어온 사업의 철수 혹은 대폭적인 사원정리.
뭐 그외에도 그 동안 사장의 어이없는 행동을 생각해보면 밉지도 않습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지요.
솔직히 저는 별 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 좋아했죠. '그래 요 몇달간 고생한거 생각해보면 난 어디서든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자신이 있다' 고 매일 생각했거든요. 만약 사원을 정리하는 날이 되면 제일 먼저 자원하자. 라는 생각도 했구요.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데 대부분의 선배들은 뭐 더럽다 때려치자 라는 반응도 있고 정말 그렇게 되는건가 하며 걱정하는 분들도 더러 계셨죠.
그리고 드디어 근무시작. 사실 별 달리 할게 없었습니다. 제가 세달간 전문적으로 배운건 없고 그저 선배들이 넣어주는거, 간단한 작업이지만 시간 오래 걸리고 골치아픈 것들을 했을 뿐이죠. 해서 어제는 감을 못잡고 거의 멍하니 있는 처지였습니다. 평소 같은면 엄청나게 혼날텐데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네요.
평소에 절 보면 못잡아먹어 안달인 바로 윗 선배는 불과 금요일까지도 자기에게 넘어온 일조차 저에게 떠넘기고 아주 사소한것까지 지시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젠 자기 할일을 아주 열심히 하더군요. 방금전 담배필때는 제일 목소리 크게 더러워서 내가 사표내고 만다 하던 사람이..
그분이 지시를 내리지 않으니 제가 멍하니 있을수 밖에요. 심지어 보니깐 제가 해야만 하는 일도 자신이 직접 하길래 "선배 그거 제가 할게요." 했더니 못들은척. 그것도 두번이나.. 주먹이 불끈 쥐어지더군요.
썰렁한 농담도 간간히 저에게 하곤 했었는데 어젠 거의 다른사람들과 대화.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 과장님이 절 부르셔서 그냥 적당히 눈치봐서 니가 할일을 찾아보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수기 비성수기를 떠나 다들 열심히 해서 설 전에 모든 주문을 미리 마무리 한 상태인데 뭘 해야될지를 감을 못잡겠더군요. 설사 있다해도 저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던건 그 선배뿐만이 아니었거든요. 다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거죠. 전엔 잘대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던 분들이 순식간에 저를 적으로 몰아세운것입니다. 제가 제일 만만하니깐요. 사이에 커피를 마시면서 하시던 얘기들은 저를 향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구요.. 정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절 알바생 개념으로 말할때의 그 뒷통수 맞은 기분이란.. 물론 제 바로 윗선배의 주도하에 이런 대화가 이뤄졌지요.
그렇게 처음엔 배신감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곧 씁쓸해지더군요. 그리고 점심먹고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사표를 낼 생각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꾹 참고 한달만 버텨볼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제 안의 열정이 냉정을 넘어섰네요.
뭐 그 회사 덕분에 많은 경험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만 새삼 정말 인간세상 사바나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짧은 회사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