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ginger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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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라고 차이나 타운과 중국 식당들이 술렁대네요. 빨간색으로 치장하고 금박 글씨도 여기 저기 붙어 있구요. 저도 떡국과 배추 겉절이라도 해 먹으려고 했는데, 만드는게 지루하지만 않다면 약과도 만들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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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선데이 타임즈를 샀더니 '하워즈 엔드' 디비디가 부록으로 딸려왔네요. 그래서 오랜만에 하워즈 엔드를 다시 봤습니다.

10여년전에 봤을 때도 좋았는데, 지금은 더 좋더군요. 화면이 너무 예쁘잖아요. 집도, 가구도, 의상도 멋지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에마 톰슨과 헬레나 보냄-카터를 보는 것도 즐거웠구요. 영국서 살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영국 계급 사회같은 문화적인 맥락을 예전보단 좀 더 피부로 이해 하다보니 원작의 힘을 새삼 느끼겠더라고요. E.M. 포스터의 원작을 꼭 읽어보고 싶더군요.

여기서 레너드 바스트로 나오는 새뮤얼 웨스트와 줄리 아주머니로 나오는 프루넬라 스케일스가 모자지간이란 걸 영국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스케일스는 '폴티 타워즈(Fawlty Towers)'의 호랑이 같은 마누라 시빌 폴티로 제일 유명하더군요. (제인 호록스와 함께 수퍼마켓 체인인 테스코 광고의 간판 모델이기도 했죠. 요즘은 그만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웨스트와 스케일스 모자가 같이 나온 코메디 '스티프 어퍼 립스(Stiff Upper Lips)'를 극장에서 봤는데, 보다가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보리 머천트 류의 영국 시대극을 비꼰 패로디였는데, 총알탄 사나이가 전망 좋은 방을 만난 것 같았거든요.



주인공 가족 이름은 아이보리, 집은 아이보리 홀 뭐 이런 식이죠. 웨스트가 상류층 얼간이로 나오고, 스케일스는 여기서도 또 정신없는 속물 아주머니로 등장합니다. 점잖은 시대극의 패로디다 보니 거기서는 밑으로 숨겨진 온갖 성적 함의나 농담도 많고, 말장난 개그뿐 아니라 거친 시각적 개그와 넌센스도 계속됩니다.

이탤리에 가서도 영국식 티 타임을 해야 한다고 광장 한복판에 하인이 지고온 영국 잔디를 깔고 차를 마시질 않나, 이탤리에서 영국이 그립다면서 영국적인 곳으로 가자더니 인도로 가질 않나...불의 전차, 브라이즈헤드 재방문 등 패로디한 영화를 맞추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말이 났으니. 영국인들이 감정을 누르고 침착하게 어려운 상황을 이기는 걸 (혹은 그런 전형적인 영국인을) stiff upper lip 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전에 무슨 코메디에서 전 영국 수상들 얘기가 나왔는데 존 메이저 얘기를 하면서 '그사람이 스티프 어퍼 립이다' 어쩌고 하니까..상대방이 맞받아치길 '스티프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메이저는 윗입술이 없잖아.' 하던 게 기억나요.

존 메이저


그리고 나서 영국 남자들 입술을 자세히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정말 입술이 얇은 사람이 많더군요. 특히 윗입술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이 꽤 많아요.

* 뭐 다들 잘 아시겠지만 머천트-아이보리는 둘 다 영국인이 아닌데 저런 영화들을 기막히게 만들었네요. 이스마일 머천트는 인도, 제임스 아이보리는 미국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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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제임스 소설은 당분간 안 읽겠다고 해놓고 지난 주말에 코딜리아 그레이가 나오는 '피부 밑의 두개골 (The Skull Beneath the Skin)'을 읽었습니다. '여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An Unsuitable Job For a Woman)'도 재밌게 봤었는데, 이것도 흥미진진하더군요. 코딜리아 그레이는 여자 탐정 중에 제일 현대 여자들이 동일시가 쉬운 캐릭터인 것 같아요. 똑똑하고 정의감도 넘치지만 무엇보다 굉장히 용감하잖아요.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PD 제임스는 확실히 다른 추리물보다 좀 더 (그게 무슨 뜻이든) '문학적'으로 씁니다. 단어도 좀 고급으로 쓰고요. '피부..'에 나오는 익명의 협박 편지에 쓰이는 셰익스피어와 웹스터 인용구는 말 할 것도 없고 중간 중간 꽤 많은 문학작품 인용이 나옵니다.

코딜리아 그레이가 드라마 시리즈로 나온 적이 있다는데, 저는 못 보았습니다. 헬렌 백슨데일이 주인공이었다는군요. (이 사람은 프렌즈에서 로스와 결혼하는 영국여자로 나왔었죠.) 이미지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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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의 시, '딸을 위한 기도(A Prayer for my Daughter)'가 위 소설에서 인용되었길래 탄력을 받아 그 시 전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코딜리아가 수녀원에 딸린 학교에서 교육 받았다는 말을 듣고 연극 평론가인 아이보가 한 말이죠.

           How but in custom and in ceremony
           Are innocence and beauty born?

칭찬도 꽤 폼잡고 돌려서 하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시를 읽어보니 예이츠도 꽤나 가부장적이었어요.

An intellectual hatred is the worst,
So let her think opinions are accursed.
Have I not seen the loveliest woman born
Out of the mouth of Plenty's horn,
Because of her opinionated mind
Barter that horn and every good
By quiet natures understood
For an old bellows full of angry wind?


시를 즐기는 것 하고는 별도로 이 구절은 짜증나더군요. 지식으로 무장한 증오가 가장 나쁘다는 건 동의하겠는데, 저는 예이츠한테 찬사를 받는 현명하고 교양있는 누군가의 딸/마누라보단 의견이 넘치는 분노에 찬 바람의 외침이 낫겠는데요. 뭐 미움만으론 충분치 않죠. 그거 예이츠가 처방해주지 않아도 '의견이 넘치는' 여자들은 잘 알겁니다. 풍요의 뿔과 선함이 분노랑 결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아버지'가 처방해준 평화의 길을 어지러뜨리고 새 길로 간다면 더더욱 좋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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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홈즈의 너도밤나무장의 비밀 얘기를 한 바로 다음 날 티비에서 그걸 해주더군요!!! 이런 우연이. 이번이 세 번 째지만 다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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