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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터널 공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조사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조사해서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공사를 재개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마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액은 몇천억원대에 이를 것 같은데... 그거 누가 보상하나?
그런 경우 엄격하게 말해 단식으로 공사를 중단시킨 지율과 그 지율의 주장에 동조한 환경 운동권 또는 진보 좌파들이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하지 않는가? 도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이건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상적인 성인이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 게다가 조직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법적 책임을 진다는 각오를 전제하는 것이다.
지율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설혹 환경에 미치는 지율의 주장이 맞다 해도 그 판단을 근거로 국민의 혈세 몇천억원을 지멋대로 요리할 권한을 누가 지율에게 주었는가? 이거야 말로 벌건 대낮의 강도질 아닌가?
천성산 터널 공사를 기획한 정부측의 잘못이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정부측은 그만한 잘못을 저지를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은 상태다. 법적으로 공무원에게, 선거를 통해 뽑힌 집권 여당에 그런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그 궁극적인 책임을 국민이 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장치 역시 문제가 많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번 지율의 사건은 그런 원론적인 담론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것은 현재의 법률 제도의 기준에서 어떤 행위가 합법이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원에서 따질 문제다.
정부나 집권 여당의 잘못은 최소한 책임 소재를 물어볼 가능성이 남아 있다.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법률적 장치의 존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율의 깡패짓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엄격하게 따지자면 지율의 깡패짓에 대한 책임은 그 깡패짓에 굴복한 정부와 집권 여당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지율은 깡패짓을 한 거다. 그리고 정부는 그 깡패짓에 굴복해 몇천억원의 국민 혈세를 날리게 됐다. 이런 경우 정부와 집권 여당 모두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거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앞으로는 바로 이런 사안이 국정감사 또는 청문회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오해해도 상관은 없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천성산 터널 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다.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부고속전철 같은 사업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이 곧바로 지율의 행위에 대한 동조로 이어질 수는 없다. 경부고속전철이나 천성산 터널 계획 자체가 잘못이라 해도 지율의 행위는 그보다 몇십 몇백배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본다.
법적인 책임을 떠나 이번 지율의 행위에 따른 후유증은 상당히 심각할 것이라고 본다. 지율 본인이야 잘 모르겠지만 이번 단식과 그 결과에 대한 국민 일반의 정서적 반발이 심각하다는 것을 지율의 단식에 동조한 환경운동과 진보 세력은 앞으로 두고두고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반발이 지율 개인에게 돌아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환경운동과 진보 진영 전반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과 결합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환경운동? 좋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선택을 잘해야 한다. 어떤 사안이 이벤트에 좋은가... 이따위로 판단하지 마라. 그거 당장은 효과 좋은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
삼보일배를 하고 단식을 한다니까 이벤트 효과가 좋고 그래서 다들 우~~ 몰려든다. 그 주장이 얼마나 정확하고 과학적이냐는 둘째 문제다. 이거, 언 발에 오줌 누기고, 봉사 제 닭 잡아먹기다. 당장은 좋아도 나중에 그 몇배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진실은 원래 인내심을 요구한다. 운동권은 십년 이십년 뒤에 드러나는 진실, 거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환경 운동이란 것 자체가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가치,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드러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자본가들보다 더 눈앞의 이해 관계에 눈이 뒤집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안이 이벤트에 좀더 효과적인지, 어떤 액션을 취해야 언론에 더 크게 보도될지, 어떤 식으로 해야 더 많은 촛불이 모일 것인지... 이게 최우선 고려사항인 것 같다.
지율 개인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아니 의도가 좋을수록 절차적인 엄격성은 더욱 중요하다.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치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치는 게 아니다. 그 정도 판단도 못하나?
단식 막바지에 왜 모습을 감추었나? 솔직히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은 이미 단식을 포기했다는 의미, 다들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다는 선언이다. 물론 종적을 감추고도 '단식을 계속중'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바로 단식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이다. 설혹 정부측이 지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조갑제의 주장에 대해 지율이나 지율의 지지자들 그리고 기자들은 사실 대꾸할 말이 없다. 없을 수밖에 없다. 조갑제의 저런 말에 대한 책임은 지율이 져야지, 조갑제가 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번 지율의 단식과 그 결과를 보면서 환경운동 등 우리나라 운동권과 진보진영의 한계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당신들은 스스로 생각키에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다행이다. 당신들의 존재를 인내해야 하는 날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반증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