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세계화와 노동운동의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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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노동운동의 침체  |  2005-02-12 오후 4:35:40 추천 6


포스트 주소 : http://www.mediamob.co.kr/midas205/35691.html
2월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를 전해 들으면서 드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참담한 심정이었다던가, 절망을 느꼈다던가 하는 말로 표현할 마음은 전혀 없다. 말 그대로 올 것이 온 것이다. 예전에 여기 올린 포스트- “김창현 논쟁감상-3:결론부”에서 간략히 말한 적이 있지만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나 상관없이 조만간 지도노선문제가 대립될 것이고 여기에 대하여 현재의 지도부는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심적인 문제의식은 “노동계급 헤게모니”의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세계화의 영향뿐만 아니라 기술변화에 따른 산업조정의 영향으로 인해서도 향후 일정기간 동안에는 노동계급의 약화 혹은 노동운동의 침체가 전망되고 있다. 2000년 이후 노조가입자 수가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던가, 비정규직의 수가 확대되고 있고, 노-자간의 협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 포스트를 올리는 것도 왜 그렇게 되고 있는지, 오늘날 갑작스레 벌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여러 현상들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한번 논의해보자는 뜻이 강하다.  우선 세계화의 본질을 간략하게 살펴보고(다 알고 있는 부분이니 그야말로 간략하게!), 노동운동의 무력화와 그것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런 연후에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민주노총의 작금의 사태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개진하고 싶다.



1.       세계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양면성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전지구적 추세라고 본다. 그렇다면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의 영향에 대해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반대한다고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선언’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더러 아무런 현실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비난의 관점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혹은 신보수수의(neo-conservatism), 그리고 세계화가 미국의 패권주의의 기획된 산물인 것처럼 치부하는 것이다. 특정 연구단체 혹은 정치조직에서 내세운 음모론적 시각에서 그들이 패권주의를 추진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기획해낸 사상 혹은 세계전략인 것처럼 몰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전혀 올바르지 못하다.



실제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의 단초는 1973년 미국의 대통령 경제보고서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바야흐로 전면적인 개발독재로 쓸려 들어간 바로 그 시점이다. 이 보고서는 브레튼우드 협정체제에 기초한 자본통제에 반대하고 국제금융 시스템을 시장중심적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다른 선진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국제금융체제를 재편하고자 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른 미국의 국내정책 및 국제정책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이었다. 조지 슐츠를 비롯한 닉슨 정부가 일으킨 이러한 바람은 자본자유화에 부정적이던 미국 국내의 산업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자본유출을 염려한 선진 각국으로 파급되어 나갔으며 그 내용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하여 금융자유화와 금융시장개방, 즉 자본이동의 장애물 철거와 국제금융자본의 위상강화로 나타났다.



물론 미국정부가 채택하고 정책으로 실현시킨 이 보고서는 바로 금융자본에 사주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 금융자본은 세계 규모의 자본자유화를 요구하였을까. 그것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구축된 브레튼우즈체제, 즉 자본시장에 대한 통제와 그것을 통한 일국경제화, 그리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 실현 가능했던 케인즈주의적 경제통제 및 수정자본주의의 외피가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자본운동의 역동성을 가로막는 속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부연설명하면 케인지언적 일국경제 조건 하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면서 자본 이윤율은 점차 하강하게 되고 이것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본의 위기상황이 되었다. 황금기 자본주의를 가능케 했던 경제시스템은 축적된 자본의 운동을 오히려 속박하는 외피로 작동하게 되고 이러한 외피를 철폐하고 자본이윤율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금융자본의 독자적 운동논리가 일국경제적 세계경제체제를 거부하게 만든 것이었다.



결국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는 미패권주의자의 의도된 기획이 아니라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본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자본의 논리가 그 기본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효율화 혹은 국제 무역시장의 전지구적 확장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그 주체는 ‘자본’이라는 것이다.



세계화의 두 축은 자본 자유화와 무역 자유화이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입장은 긍정적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의 효율적 운영을 통하여 세계화에 참여한 국가들의 경제가 계속적인 성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며 보다 확장된 자본시장을 통하여 고도의 자본축적을 이루어내고 그것을 통하여 장기적으로는 노자간의 소득분배가 보다 나은 균형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것에 대하여 반세계화주의자의 주장은 세계화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잔치일 뿐이며 세계의 절대 다수의 인민을 절대빈곤의 상태로 몰아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증적인 연구의 결과들을 보면, 대다수 주류경제학자의 주장처럼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분배를 향상시킨 현상은 일률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반세계화주의자의 주장처럼 세계화가 무조건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예스’도 ‘노’도 아니다. 중국과 인도는 자본자유화를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남미와 기타 많은 나라들은 외환위기의 악순환을 통해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결국 세계화를 통하여 얻은 결론은 각국마다 처한 특수성, 그리고 세계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정답이다.



2.       세계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무력화



그렇다면 세계화에 대한 이와 같은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으로 공통된 현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본의 자유화, 무역의 자유화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실질임금 총액이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 하락해 왔는데 그 원인은 대다수 비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 저하에 있었다. 1980년대 동안 대졸 노동자들의 임금은 연간 2%씩 상승했지만 고졸 노동자들은 시간당 실질임금이 총 20%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가 진행되는 모든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최근의 우리나라 현실만 보더라도 중국에서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후발 개도국에서 밀려 들어오는 값싼 상품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없는 회사들은 망하거나 아니면 그나마 자금의 여유가 있는 회사들은 공장을 중국, 베트남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되고 당연히 이런 산업에서 일하는 기술도 별로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되고 취업의 기회는 점점 악화된다. 이런 상황은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조건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반면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첨단기술과 같은 부문은 수출이 증가해서 이 부문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이득을 얻게 되고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임금상승 압박을 이유로 영국 현지공장을 폐쇄하고 슬로바키아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는 중인데 투자자본의 회수기간을 단 2년간으로 본다는 것이다. 엄청난 전자공장의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그보다 더 엄청나게 싼 임금비용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회수된다는 투자수익률 지표는 언제든지 자본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괴물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생산지를 이전하는 경우에도 똑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해외직접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매끄러운 환경이 점점 더 제공되면서 자본이동을 위한 고속도로는 아무런 장애도 없이 오늘의 대단위 생산단지를 내일은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일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투자비용이 이미 모두 회수된 다음이라면 더 높은 임금을 강요하는 노동시장을 품에 안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전세계를 아무런 장애없이 돌아 다니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이 바로 자본의 세계화의 본질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아침에 일터가 없어지고 생계수단이 박탈 당하는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직접 공장을 옮기지 않더라도,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에 ‘위협’을 느끼게 되며 노-자간의 협상에 있어서 노동자의 힘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3.       노동계급 무력화의 또다른 동력

-------기술변화로 인한 산업구조조정



그러나 노-자간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세계화’만은 아니다.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일국경제 내에서도 끊임없이 진행되는 기술변화이다.  이런 기술변화는 일국 내의 경제 및 산업구조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고도화 시킨다. 섬유와 신발을 주력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조선, 자동차 등을 주력으로 하는 단계를 거쳐 이제는 반도체와 IT경제로 산업의 주력이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주력으로 하는 산업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쇠락하는 산업부문의 노동자보다 고소득을 얻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일국 내의 기술변화에 따른 자연적인 산업 구조조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쇠락하는 산업의 정리를 가속화하는 기반에는 세계화의 동력이 작용하고 있다. 저임금 국가를 향한 선진국의 해외직접투자는 한국과 같은 중위권 개발국가의 산업구조 변경을 가속화 시킨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투자된 나이키와 아디다스 공장은 한국의 신발산업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결론적으로 세계화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의 노동자의 힘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그것은 노자간의 협상에 있어서 협상력의 상실로 결론 지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세계화의 물결 때문만은 아니다. 급속한 속도의 기술변화가 그 밑바탕의 동학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 물결 위에서 자본은 전지구를 상대로 자기 논리전개를 위한 길을 닦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만 반대의 힘을 집중시키는 것은 본질은 보지 못하고 현상을 막는 일에만 급급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4.       세계화의 양면성



세계화는 확실히 양면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계체제론적인 입장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신자유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한 세계화의 물결을 통해서 중심적 자본주의 체제가 돌파해내고 그 결과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통합을 이뤄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시장의 통합이 결과해 내고 있는 급속한 기술의 변화와 자본의 자유화, 국제무역 시장의 자유화는 노동자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따라서 세계화를 맞이하는 개도국들 사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것이며, 세계화를 추진하는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반세계화에 선도적인 저항은 선진국 지식인들 및 노동자들이다. 세계화가 초선진국 기업들에만 이득을 주며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패자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자유화를 통해서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후발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세계화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반감을 덜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현실을 돌아보면 선진자본은 직접투자의 대상을 교육, 후생 등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구축된 생산공장 및 무역기지들로 인해 후진국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과 취업기회가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으로부터 이전된 공장이 후발 개도국에 건설된다면 선진국 노동자들이야 개도국과의 무역과 경쟁으로 위협에 시달리더라도 후진국 노동자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많은 개도국뿐만 아니라 슬로바키아, 우즈벡 등의 중앙아시아의 많은 노동자들도 선진국의 FDI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전에는 농촌에서 일하던 많은 이들이 도시의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노바리님의 커피농장 건으로 해서 초국적 기업의 노동력 착취공장 논쟁이 한번 붙은 적이 있지만 그나마 커피 원두를 수입해 갈 기업이 없었더라면, 더구나 나이키 공장과 같이 선진적 공업시설이 없었더라면 그 노동자의 삶은 현실보다 훨씬 비참했을 것이다. 사실 현지조사에 의하면 재래식 토착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20%이상 난다고 한다. 그들은 착취공장이라고 비난받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이 후발 개도국의 [노동자의 임금]이 초국적 기업이 생산판매하는 [상품의 소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미만에 머문다는 것, 다시 말해서 엄청난 노동착취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한다.



           5.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딜레마

  

이런 식으로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런 현실상황을 감안하면서 우리나라의 노동문제,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민노당과 민주노총이 처한 딜레마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차피 오고야 말 상황이라고 지적한 민주노총 이야기로 눈을 돌려보자.   폭력사태의 잘잘못이나 지도부의 행태 등은 과감히 삭제하고 말이다. 나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장,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노동계급의 약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그러한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침체에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노동운동세력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자본세력 혹은 국가권력과 어느 정도 협상할 수 있는 힘만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딜레마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단순명료한 사실에 있다.  노사정 복귀를 통한 사회적 대협약을 통해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보다 확고히 챙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면 왜 노사정 복귀를 마다 하겠으며, 총파업의 승리를 확신한다면 왜 총파업을 마다 하겠는가. 총파업도 한번 하고, 그래서 자본과 국가체계의 코를 밟아놓은 다음에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이다. 사회적 대협약도, 총파업도 사실은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가면 절벽이요 뒤로 가면 폭포이다.  민주노총의 이번 폭력사태 역시 노동운동의 약화, 즉,물리적 힘의 약화가 빗어낸 의사소통 단절에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폭력사태의 잘잘못에 대해서 따지는 것은 이미 의미를 잃어버렸다. 현상의 본질을 애써 직시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연한 방향만이라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6.       정치세력화 그리고 운동의 새로운 방향모색의 필요성



사회적 대타협에로의 복귀냐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힘의 과시하기 위한 총파업이냐의 노선문제는 최선의 방안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회피하기 위한 의사결정이어야 한다.



노동운동이 잠시동안의 침체를 벗어나 점차 더 활성화되고 노동계급의 역량이 갈수록 강력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된다면 지금 당장 약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할 까닭은 없다. 바보라도 그 정도는 생각한다. 문제는 앞으로의 노동운동이 점점 더 침체되고 노동계급의 역량이 갈수록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총파업을 해서 그나마 있는 전력을 모두 소진하고 옥쇄해서 한줌의 재로 ‘산화’할 것인가. 아니면 열악함을 인정하면서도 협상의 과정에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인가.



아마 대다수의 이성적 판단은 협상을 권할 것이다. 협상에 임하더라도 그 과정은 단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긴 “밀고 당기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렬한 혁명적 청산주의자들은 “그까짓 동정의 빵조각은 필요없다. 혁명의 대오에 노동계급은 일로매진할 것이다”라고 외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자본주의가 밀어 넘기면 당장 넘어질 것 같은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기존의 약한 전력마저 파괴하고 자신의 전력을 상대에게 모두 노출해 버림으로써 상대와 협상할 수 있는 여지마저 없애 버린다. 전력이 점차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소모적인 전투만 행한다면 그것은 한줌 재로 산화하자는 청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7.       합종연횡의 전략



그러나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운동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좌파의 개념을 극복하고 진보의 개념으로 우리 의식을 수정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지점에서 노동자의 조직화, 혹은 그를 통한 총파업의 과시보다는 시민의식의 성숙과 이를 통한 정치세력화에 보다 힘을 쏟을 상황인 것이다.



내가 누차 주장해 온 말이지만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진보세력은 민주노총도 아니고 노동자계급도 아니며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진보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좁은 의미의 노동자 계급에 속박되지 말고 전체 시민사회의 성숙을 통해서 그들을 민주노동당의 외피로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민주노총의 폭넓은 현실주의자들과 연대하고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세력과 냉정하게 결별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농민, 일반 자영업자, 화이트칼러, 지식노동자, 지식인, 그리고 청년 학생세력을 포섭하고 시민사회에 폭넓은 지지층을 형성해야 한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 세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세계화를 정면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될 수 있는 세계화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국 권력체계가 자본계급과 손잡고 기획된 설계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화의 주체는 자본주의라는 기본적인 물적 토대 위에서 자본이 상황논리에 따라 만들어가는 현상이다. 이것을 정면에서 거부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세계화의 이익과 그 폐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양쪽을 모두 시민사회에 인식시켜야 한다.



보다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은 오늘날의 현상을 누구보다 빨리 해석하고 그것을 시민사회의 담론으로 제기함으로써 세계화의 폐해를 가장 줄일 수 있는 전략, 즉 시민사회의 행동방침에 대해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의 개념은 전통적 근대의 시민이 아니라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시민의식으로 무장된 성찰적 시민의 모습으로 다시 재구성되어야 한다.



소외되고 왜곡된 주체가 아니라 소외를 극복하고 왜곡을 극복한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조건을 정확히 성찰하는 시민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존재조건을, 지식노동자는 지식노동자로서의 존재조건을, 자영업자는 이 시기의 자영업자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인식을, 지식인은 지식인 나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인식하게 됨으로써 현실을 보다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식체계를 구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성찰적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민주노동당이 거듭날 때에만 비로소 노동계급의 약화되는 전력을 정치 공론장을 통하여 보상하고 협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시민사회에서 배제되어 갈 것이다. 국가폭력과 제도적 폭력에 의한 배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혐오와 사회성원으로서의 자격에 의구심을 품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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