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선생님이 19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에 월간조선의 "작가의 고향"란에 당신의 고향에 대한 얘기를 쓰며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를 인용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Googling을 열심히 해 보았지만 가도의 시는 찾을 수 없었고, 그 시에 나오는 고장 병주는 竝州와 幷州로 갈리는군요(삼국지에 익숙한 저로선 후자가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장담은 못하겠군요). 시의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병주에 (공무(公務) 때문에) 머무른지 이미 여러 해, 마음은 항상 장안을 향해 있었지.
드디어 장안으로 발령이 나서 병주를 떠나게 된 날, 기쁜 마음으로 (병주와 장안의 경계인 강을 건넜는데) 강 건너 병주를 바라 본 순간, 병주가 (또 다른) 고향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네."
특히 따뜻한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다음엔 전에 살던 (중강진 위도에 위치했다는 소문을 들었던) 시카고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늘 제가 늘 씹는 단골 소재였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도시이고 훌륭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10월이면 느낄 수 있는 寒氣와 오후 네 시에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지를 않나, 바람은 또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봄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고 기다렸건만 5월이 다 되어도 심술궂은 날씨는 계속되었었고...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Amazing Race란 TV Show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날 처음 본 프로그램인데 커플들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누가 더 주어진 임무를 빨리 수행하느냐를 가지고 경쟁하는 프로인 것 같더군요) 시카고를 오랫만에 다시 보게 되는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물론 겨울에 찍은 것 같진 않더군요-_-) 늘 비행기가 늦게 떠서 짜증을 부리던 오헤어 공항이었는데 TV 화면으로 보니 왜 그리 그립던지요. 늘 더럽다고 생각하던 지하철 CTA였는데 왜 그리 멋져 보이든지요. 학교 근처라 늘 지나다니던 워터 타워에서 참가한 커플들이 임무가 적힌 종이를 꺼내는 장면에선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그러더니만 커플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하필이면 그 지독한 시카고의 딥디쉬 피자를 먹는 것이어서 미소를 짓게 만들더군요. 그 시뻘건 소스에 두꺼운 맛도 없는 그 피자를 먹어치우던 한 참가 커플 중 여자는 더 이상 못 먹겠다면서 켁켁 거리고 (상금에 눈이 먼 것이 분명한) 파트너 남자는 어서 먹으라고 애원하고 볼만하더군요.
그러다 오늘 TV에서 (아무래도 발렌타인 데이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멕 라이언이 나오는 영화를 세 편이나 보게 되었는데 Sleepless in Seattle에서 톰 행크스가 시애틀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곳이 시카고였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존 행콕 센터가 보이는 (사실 시카고 어디서나 대개 잘 보이는 편이지만) 곳에 자기 아내를 묻는 첫 장면, 그리고 아내와 아이 조나를 데리고 Wrigley Field에 야구를 보러 가는 장면을 보며 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전에 시카고 살 때 What Women Want를 보며 멜 깁슨이 미시간 호수를 배경으로 뛰는 여자를 보고 광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SAKS Fifth Avenue에 들려 (영화에서의) 딸과 함께 옷을 고르는 장면을 보고 낄낄거렸었는데 지금 그 장면을 다시 보면 가슴이 아릿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다시 복거일 선생님 글로 돌아가면, 복 선생님은 그 글에서 군대에 있으며 여러 곳을 다니고 직장을 때문에 여러 곳에서 산 당신에겐 병주 고향이 여러 곳이고 그런 병주고향을 허락해 준 너그러운 당신의 고향 아산-온양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하셨었지요. 다른 곳도 아니고 그렇게 날씨를 싫어했던 낯선 외국 땅의 한 도시가 제 마음에 그렇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들 중에도 병주고향이 있는 분들이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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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름다운 장사편지
복거일 선생님의 글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장사편지"라는 글입니다. <비명을 찾아서>란 책을 내기 전 16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는 복거일 선생님은 중간에 (나중에는 망한) 어느 회사에 다녔던 모양입니다. (그 분의 시집 <오장원의 가을>에 "청산 절차를 밟아 다른 임자를 찾아 간 옛 회사의 공장에 찾아 갔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은 행복해 보였다. 고운 얼굴로 늙어 가는 옛 사랑은 먼 빛으로 지켜만 볼 일이다" 어쩌고 하셨던 시가 역시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같은 회사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글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회사가 어려운지라 도멘과 같은 일본 종합상사들에 많은 편지를 써야했다. 대개는 회사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고 빌린 돈을 갚기 어렵게 생겼으니 사정을 보아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너무 비굴하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런 편지를 한 두통 쓰게 되는 날이면 정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중엔 회사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져서 받는 쪽도 서로 내용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이 계속 굴러가게 하기 위해선 편지는 오가야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글 공부에 도움이 된 셈이었다. 조화되지 않는 특질들을 같은 글 안에서 조화시킬려고 애를 쓴 글들이었으니까. 그러다 몇 년 후 회사가 청산 절차를 밟은 다음에 우연히 내 글의 상대방이 되었던 회사에서 일했던 대학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 친하게 지낸 선배도 아니었는데 나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 선배는 내게 첫 마디로, '아, 복 형. 아름다운 비즈니스 레터를 쓰는 사람'하고 아는체를 하여 주었다. 순간 가슴이 환해졌다. 망해 가는 회사를 위해 보답없는 글을 쓴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상대방 회사의 이름도 잘 몰랐던 선배 한 사람에게 나에 대한 조그마한 기억을 남겼구나 하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네요. 괜히 복거일 선생님의 아름다운 글을 제가 망쳐 놓은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지난 주 갑자기 회사의 미국 직장 동료 하나가 절 찾아 왔습니다. 다른 층에 근무하는 친구인지라 사실 자주 볼 기회는 없었는데, 그 친구가 시작한 ABC Club이라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Bar들을 A로 시작하는 곳부터 시작해서 한 곳씩 "순례"하는 모임에 저야 영어라도 남는다는 신념 하에 기회 있을 때마다 열심히 쫓아 다녔는데 제가 이제 한국으로 다시 들어 간다는 이메일을 윗분이 보낸 걸 보고 저한테 인사하러 일부러 찾아 왔더라구요. 시카고 생각이 다시 날 정도로 우울했었는데 그래도 (술꾼 친구한테 술 잘먹는 한국인의 인상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게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만-_-) 괜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떠나기 전 그 친구랑 Bar나 한 번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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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음식 찾는 교포들
떠나는 얘기를 쓰다보니 지지난 주엔가 있었던 제가 다니는 회사의 "교포" 직원들하고 제가 한국 들어 간다고 같이 "회식"을 하게 되었던 일이 다시 생각 나네요. 미국 사람들답게 이런 저녁식사 약속 한 번 잡는 것도 거의 한 달 전부터 미리 이메일 돌리고 못 오는 친구는 2-3주 전에 그 때는 바빠서 안 되겠다는 말을 전해서 저로선 역시 OTL이었지요.
이렇게 물론 대개의 이민 2세 이하들이 그렇듯이 한국 말을 거의 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 한 친구는 어렸을 때 엄마한테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건만 (아마 당신 스스로도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무지 애를 썼기 때문이셨는지)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이 모임을 하려고 서로 연락하는 바람에 처음 한국계인 것을 안 사람도 있을 정도였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한국 음식은 참 맛있게들 잘 먹더군요. 그 중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된 친구로 한국 음식은 그 날 처음 먹어 본 친구도 있었는데도 너무 좋아하더군요. 한국인의 40%인가 50%인가가 해당한다는 술 먹는 효소가 없어 얼굴이 벌개지는 사람들도 여럿이었구요^^;; 참 사람의 식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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