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인물화 - 미인도
확실히 조선의 회화는 (후기에는) 중국 남종화의 절대적인 영양하에 있었기 때문에 산수화가 주류를 이루지, 인물화의 비중은 높지 않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 글에서 지적한 내용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들에 한해서, 대중들에게 흔하게 알려진,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전제로 한 얘기입니다. 비단 조선만 말한 건 아니고 일본, 중국의 인물화도 포함해서죠.
미술사 개론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압도적인 비율로 서구의 인물화는 부부, 동양의 인물화는 남자와 기생이 그려진 것이 대부분 입니다. 님께서 예시로 든 그림들은 '풍속화' 들인데, 이 그림들은 평민들의 일상을 그린 그림들로, 여기선 기생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사실, 서민들이 기생과 함께 있는걸 그리면 그게 이상한 거겠죠.
제가 얘기 한 것은 지배계층을 소재한 작품들을 우선 전제로 봤을때 동양의 사대부 귀족 남성이 자기 아내와 그려진 그림을 본 적이 없어서 한 얘기 였습니다. (반대로 서구의 경우는 대부분의 귀족 남성이 자기 아내와 그려집니다.)
동시대의 작품경향을 봤을 때 이런 성향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신윤복이 활동한 18세기의 경우,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는 일종의 '미인도'라고 해서 아예 장르 하나가 '기생'만 전문으로 그리는 화풍이 발달할 정도 입니다. 서구 인상주의 미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일본판화 '우끼요에'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지요. 중국도 마찬가지 인데, 반면 춘화가 아닌 이상 서구의 주류 회화, 인물화에는 '창녀'를 그리는 전문 화풍은 없습니다. _ 뭐, 19세기 이후부터는 달라집니다만,.
서구의 인물화에서 여성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 부르조아 계급의 여성 초상화가 주류를 이루죠. (물론 신화나 역사속의 여인들도 있고.)
이런 경향은 그냥 서양화와 동양의 인물화를 조금만 비교해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전에 고려의 공민왕과 그의 왕비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례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 초상화 였는데, 우선 국왕부부의 전신초상화는 처음 보는 터라 무지 신기했고, 그 그림을 소장한 사람이 조선의 태조 이성계라는 사실에 좀 뻘줌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윤복의 경우는 좀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이 양반은 잘 나가는 궁정화가였다가 그 자리에서 쫒겨납니다. 해임사유는 '이상한 그림을 그려서 궁정화가의 품위를 손상했다.' 였죠. (근데, 실제는 자기가 일부러 궁에서 나가려고 그랬답니다. 매일 궁궐에서 열리는 의전행사 그림이나 궁궐도 그리는게 짜증나서 그랬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전에 조선시대 도자기 얘기때도 나온 얘깁니다만, 아직 공무원의 개념을 직장인이 아니라 무슨 나라에 공짜로 봉사활동하러 온 걸로 착각하는 관리시스템이 어떤가 생각해 본다면 신윤복 저 양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죠. ^^;;
혜원선생이 무슨 이상한 그림을 그렸는지는 다 아시는 얘길테고 어쨌든 이 사람은 평생 '미인도'를 실컷 그립니다만, 그렇다고 이 '미인도'들이 신선생 개인이 마냥 좋아서, 이 양반 혼자서 독창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미술가의 개인적인 성향이 작품의 방향을 설정하거나 어떤 장르를 형성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현대의 미술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전근대사회의 미술가들은 철저하게 당대 양식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일견 자유롭게 보이는 김홍도 선생의 풍속화도 그 시대에는 '사진'과 같은 역할을 한 일종의 기록화 들입니다. (뭐, 듣자하니 왕실의 후원으로 서민의 생활을 정치권에 알리기 위해 전격적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네요.)신윤복의 미인도들 역시 당대 인물화의 법칙속에 있는 것이고. '미인도'를 그린 사람들은 당시 모든 화가들에게 해당되는 사항들입니다. 절대로 신윤복 선생 개인의 성향이라 말 할 수 없죠. (물론 이 양반이 그린 미인도는 다른 사람들이 그린 것에 비해 잘 알려졌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