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혹은 역사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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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뒷북이긴 합니다. ^^;;
주은래에 대해서는 평소 '중국 공산당의 2인자' 아니면 '유화적인 정치가'라는 피상적인 이미지만 있었을 뿐 이었지만,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집니다. 한참 <동북공정>으로 시끄러운 이 참에 - 비록 죽은 사람이긴 합니다만 - 중국 공산당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사람의 발언으로 본다면 정말 의미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 사람은 정치가이고 이 발언은 북한과의 외교연장선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호의가 없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뭐랄까...그냥 빈말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진정성 같은게 엿보인다면 제가 너무 좋은 쪽으로만 보는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주은래는 “미제국주의가 아시아를 침략하기 위해서 전쟁터로 조선반도를 선택했다.”며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대거 파견을 주동했던 인물이니 우리와의 관계를 그저 편하게만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북한에게는 사정이 좀 다르겠군요.) 그는 미국이 전쟁터로 어디를 고를까, 조선반도일까 아니면 인도차이나 반도일까...하며 마음속으로 점치고 있었던 듯 했는데, 훗날 미국이 두 곳에서 모두 전쟁을 치뤘으니 참....
주은래의 발언에는 이미 지나간 시절의 공산주의자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과 에너지로 가득했던, 지극히 도덕적인 혁명가의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과오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후손으로서 반성하겠으며, 그 잘못에 대해 발언으로 나마라도 사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군요.
조상들의 '위대한 정복'을 침략으로, '지배'를 '수탈'로 인식하는 것은 후손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소위 역사라는 건 조상에게 물려 받은 '유산'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 '유산'의 허울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쉽지가 않은 얘기죠.
특히 “민족의 역사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바로 곽말약(郭沫若) 동지가 주장한 것이다. 서적상의 기록은 환전히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당시 사람이 쓴 것이지만 관점이 틀렸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은 후대 사람이 위조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역사서는 완전히 믿을 수만은 없는 2차 자료일 뿐이다.”
요 발언에는 진정한 공산주의, 유물론자로서의 사관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네요. (으흐..감동..^^)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유물론에 입각하기 때문에 많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이런 의식이 기저에 상당히 깔려있죠. 회의적인 문헌사학자들은 이런 면을 두고 '소설쓰고 앉았네.' 하고 고고학을 비판하기도 합니다만.(특히 제 은사님, 근데 이 양반도 고고학자임...--;;) 제 생각으론 어떤 사상에 대한 맹종이 문제일 뿐 기본적인 것은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또한 중국에는 베트남을 정벌한 두 영웅 즉 마원과 복파(伏波) 장군이 있다. 베트남의 두 재녀(才女)는 용감하게 항거하다 실패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자진했는데, 장군은 그 목을 잘라 낙양으로 보냈다. 나는 베트남에 갔을 때 두 재녀의 사당에 헌화하면서 마원을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마원을 극구 찬양하고 있다."
A.D. 40년에 한나라의 지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쯩 짝(徵則)·쯩 니(徵貳)자매는 3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봉기가 실패하자 홍하(紅河)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훗날 메랑왕조의 여왕들로 추대된 이들은 ‘베트남의 저항의 역사’를 상징하는 어떤 전형으로 오늘날 베트남에 인식되어 왔는데, 주은래는 이들을 이야기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 혹은 역사에 대한 ‘예의’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2천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해도 가슴 아픈 일은 언제나 남아있는 듯 합니다. 지난 90년대 초 몽골의 대통령이 수교기념으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 그 대통령이 ‘원제국의 고려침략을 사과하고 제주도 까지 날라가서 삼별초의 사당에 참배하는 걸 볼 때도 그런 감정이 듭디다. 물론 정치적, 경제적인 계산이 깔린 지극히 의도적인 행동이건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감동의 물결이 일어 찡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사건이 수 백년, 혹은 수 천년 동안이나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마치 엊그제 일처럼 거론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역사만이 가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매끄럽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해 방한한 일본의 새외무부장관은 왠 일로 ‘국립묘지’에 참배를 했는데, 고게 좀 속셈이 있는 행동이었더군요. 그 뜻에는 ‘네들에게 국립묘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뭐 이런 문화적 시위로, 결론은 그 문제의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 시비걸지 말아달라는 얘기였던 겁니다. 허긴....제대로 참배를 한다면 ‘독립기념관’이나 ‘유관순 열사’사당같은 곳에 갔었어야 했겠죠.
이런 씁쓸한 사례도 있군요.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주선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 중국 ‘뻥쟁이’들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