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년가까이 말도 안하고 연락도 끊은채 지내는 고모가 계십니다.
이전에도 먼저 연락드리는 착한 조카는 아니었지만, 보통의 고모 -조카 사이처럼 무난한 사이였습니다.
고모는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중산층인 다른 형제에 비해 확실히 돈있는 집안으로 시집가셨는데 그 떄문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무조건 옳고, 당신이 하고싶은 말은 무조건 다하는 강한 성격이라 어렸을 때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크면서 그런 부분에 익숙도 해지고 어른에 대한 예의와 싫은 건 싫은 제 성격도 많이 무뎌져서 그럭저럭 귀여움도
받으며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일이 터진건 실로 오랫만에 한국에 들어 온 사촌동생의 생일이었던 것 습니다
이십여년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고모님은 서울에도 거처가 계셔서 일년에 여러번 왕래를 하셨는데 처음으로 동생이
한국에 들어온 김에 언제쯤 워커힐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시더군요.
공교롭게도 그 날은 주일이라 11시 예배를 드리면 12시 점심시간을 맞추기가 힘든 간 당연했습니다.
고모는 시간이 결정되면 다시 연락하자고 하신 후 전화를 끊었고 전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그 말을 고모가 다시 연락을
주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시간을 정하는 쪽이 아닌 불려가는 입장이어서 그렇게 생각을 한건데, 전날까지도 연락이 없었기에 단순히 약속이
취소되었거나 미뤄진거라 생각한 저는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는대로 빨리 워커힐로 가라는 부모님 말씀에 망연자실.
12시 반에 예배를 마치고 마침 같이 교회에 다녔던 외사촌동생이 차로 데려다줬는데 이 녀석이 가는 길을 헤매는
바람에 거의 한시간은 걸려서야 도착을 했습니다.
그 다음일이야 .....전 그 사람들 많고 넓은 곳의 가운데 선채로, 모든 시선을 받으면서 이십여분 가까이 엄한 꾸지람을
들어야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나무라는 차원이 아니었어요.
근처의 테이블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보고 쳐다 볼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저도 최대한 공손한 자세와 말투로 무조건 죄송하다,잘못했다를 연발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만, 나중엔 저도
참을 수가 없어지더군요.
늦은 건 죄송하지만 그게 그렇게 죽을 죄도 아닌데 그 사람많은데서, 더구나 저는 생전 처음 보는 고모쪽의 손님까지
있는 자리에서 한마디로 얼굴 구기는일을 겪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로 불러낸 자리에선 더 심한 소리를 들었어도 이렇게 반발심이 생기진않았을겁니다.
제가 변명이랍시고 연락을 안주셔서 미뤄졌다고 생각했고,준비를 못했었다고 했더니 연락이 없으면 제쪽에서 먼저
전화를 주면 안되느냐고 하더군요,
제가 그러지않은 이유는 이미 밝혔지만 그건 저의 실수일 수도 있고 생각이 모자른 탓일 수도 있으니 넘어간다해도
단지 시간이 늦었다는 그 이유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되먹지않은 자식이 되고, 다시는 상종하지말자는 식의 얘기까지
들어야할 정도로 큰 걸까요?
그 날을 마지막으로 저와 고모와의 왕래는 끊어졌습니다.
그 자리를 나서며 전 지금까지 고모 덕 보고 산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고모 덕 볼일 없으니 이만 끝내자라고 생각했었구요.
부모님과는 왕래도 계속되고있고 가끔 어머니께 고모와 언제까지 이럴꺼냐는 얘기를 듣지만 현재로선 재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때 전 처음으로 모욕감이란게,비참하다는게 어떤지 느꼈었는데 그런 상처를 준 상대가 혈육이라는 점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것같습니다.
당시의 분노가 아직도 잊혀지질않아요 - 자다가 깰 정도는 아니지만 얼마동안은 그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여동생의 성격을 아시는 탓인지 자식을 먼저 생각하시는 이유인지,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그 때에 대한 언급도,어머니처럼
화해에 대한 말씀도 하시지도 않고 계십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제가 더욱 냉랭하게 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올해가 아버지 회갑이신데, 잘하면 몇년만에 얼굴을 마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때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선 이런 관계가 지속되어도 저로선 아무 불편없으니
고모쪽에서 먼저 말을 걸거나하지않는 한(물론 그 때의 얘기라면 곤란하겠죠)개선될 가능성은 없는데 저보다 옆에서
더 걱정을 하는군요.
그 때가 되야 알겠지만 그래도 난처한 상황이 되리란 건 사실일 듯 싶습니다.
역시 한번은 겪고 지나가야할 일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