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하녀- 우리는 모두 하녀다

  • hubris
  •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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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는 불편한 영화입니다. 박찬욱의 '복수의 나의 것'도 불편한 영화로 꽤 악명이 높지만, 사람들은 '복수는 나의 것'이 불편한 이유가 인간의 폭력의 보여주는 잔인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결 편한 불편함이지요. '하녀'가 표방한 것은 에로티시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불편한지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려워 하는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계급의 속성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은 쉽게 이해되고, 그 행동에는 한치의 논리적 모순도 없이 전개됩니다. 이 영화에서 계급은 가족간의 관계, 가족 밖에서의 관계,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 즉 모든 관계를 철저하게 지배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피상적이나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계급적 함의를 본능적으로 읽어 냅니다. 그리고, 일부는 그것이 임상수의 오버라고 생각하고, 일부는 그 계급적 관점이 도대체 자신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회의합니다. 이 영화는 2010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김기영의 '하녀'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지만, 김기영의 영화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비난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임상수의 하녀를 언급하는 방식은 비판보다는 찬사에 가까웠으니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식당 일을 하던 은이(전도연)는 엄청난 부자집의 (식모와 같은 의미인) 하녀 (영어로는 내니에 가까워 보입니다)가 됩니다. 벌이는 비슷하거나 더 좋을테니 전도연의 선택에는 하자가 없죠. 집은 넓고 쾌적하며, 먹을 것은 넘쳐납니다. 이 집에는 남편(이정재)과 아내(서우)가 나이 든 하녀(윤여정)를 거느리고 어린 딸을 키우고 삽니다. 이정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연주하고, 와인을 항상 마시며, 어린 시절부터 원하는 것은 모두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고, 서오는 식모가 머리를 감겨주고, 발톱 손질을 해주며, 마티스의 애완하며 여가를 보내는 여자입니다. 어느 날, 쌍동이를 임신한 부인과의 섹스가 실패하자, 발산할 섹스에 굶주린 이정재는 식모인 전도연의 방을 찾고 전도연은 거부하지 못합니다. 전도연은 남자가 자신에게 조금의 애정이라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이정재가 건네 준 수표를 보면서 자신의 현실을 곧 알아 차립니다. 몇 번의 관계 끝에 그녀는 임신합니다. 이를 당사자인 전도연 보다 더 빨리 눈치 챈 윤여정은 장모(박지영)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칩니다. 박지영은 전도연을 2층에서 떨어뜨려 아이를 유산시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1억을 제시하며 낙태를 종용하지만, 전도연은 거부하지요. 서우는 남편이 한 짓을 알게 되지만, 돈과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모른 척 하는 대신, 애가 떨어지는 한약을 지어와 전도연이 먹고 있는 애가 잘 자라는 한약 사이에 섞어 놓습니다. 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전도연을 박지영은 병원으로 데려가 완전히 낙태시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정재는 장모에게 "당신의 딸이 낳은 자식만 내 자식은 아닌"데, "감히 어디 감히 내 자식을 유산시키려고 하느냐"라고 꾸중합니다. 박지영은 이를 악물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여정은 유리한 쪽에 줄기차게 기생하며 자신의 몫을 챙기다가, 비열한 게임의 정도가 상승하며, 목숨이 왔다갔다 하자 발을 뺄 궁리를 합니다. 결국 전도연은 아이를 잃고, 1억도 챙기지 못합니다. 한 방에 신분상승을 노리던 그녀(이런 표현을 용서하시길)가 모든 기대를 접고 복수할 방법은 자신의 죽음 뿐이어서, 자신을 좋아해주던 아이의 앞에서 목을 매달고 분신합니다. 이정재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뛰어 나갑니다. 이정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역시 근본이 천한 것들은 안 돼"입니다.

우리는 이정재와 서우가 속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 속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사실상 다른 시대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왕은 궁궐의 모든 여자와 섹스할 수 있습니다. 중전은 왕이 노쇄하면 자신의 자식을 내세워 영화를 누립니다. 중전이 오욕의 젊음을 참는 이유는 그런 욕망의 힘 때문입니다. 신분이 천한 무수리는 왕이 섹스를 원하면 섹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신분은 무수리지만 왕의 태생을 낳으면 후궁이 됩니다. 이 시대에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계급은 엄연히 남아있죠. 다만, 계급이 다른 사람을 볼 일이 없어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이정재를 얼마전에 이혼한 모재벌의 후계자로, 서우를 그와 이혼한 또다른 모재벌의 딸로, 그리고 전도연을 그들의 이혼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필리핀 보모로 대입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호연한 이정재는 대상그룹의 딸이자, 삼성그룹의 며느리였던, 임세령과 필리핀 여행을 함께 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상수는 아무래도 천재같아요.

중전 일당에게 아이를 뺃긴 무수리 전도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상궁과도 같은 존재인 윤여정이 그녀에게 준 복수의 기회란, 기껏 그들 앞에서 자해할 기회일 뿐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기를 죽인 중전에게, 그리고 애정이 아니라 섹스를, 섹스도 아니라 자기의 '씨'에만 집착한 왕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임상수는 전도연에게 "우리는 모두 하녀의 속성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계급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 기회를 간절하게 원하고, 또 기회를 움켜잡을 것이란 걸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대중은 자신들이 전도연과 같은 존재일 뿐이란 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불쾌해합니다. 식당에서 허드렛 일을 하던 이혼녀가 과연 재벌 남자의 섹스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 섹스의 대가로 준 수표를 거부할 수 있을까. 섹스의 결과로 우연찮게 아기가 생겼을 때, 여자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기 자체였을까, 아니면 아기가 가져올 신분의 변화였을까.  그 질문 자체가 불쾌합니다.

임상수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비극적 조크는 이정재가 전도연에게 건낸 수표에 있는 듯 합니다. 그 금액이 얼마였을지 궁금해하는 관객이 자신의 머리속에 떠올린 금액이 바로, 관객 자신이 속한 계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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