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그녀가 떠난 후 몇 시간 동안의 생각

  • believeinme
  • 02-23
  • 1,725 회
  • 0 건
- 어제,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죠. 저는 한 지인의 메신져 메시지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바로 네이버 뉴스로 갔더니 제일 윗줄에 비보가 적혀 있더군요. 어안이
벙벙해 잠시 동안 모니터만 바라봤습니다. 열렬하게 좋아하진 않아도 호감 가던 연기자였거든요.
카이스트 때부터 눈여겨봤었는데.


- 정신을 차리고 기사를 클릭하니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더군요. 사람이 갑자기 몰려서 그랬
던 것 같습니다. 몇 번 시도 끝에 기사를 읽으니 간략한 사건의 정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가 대충 오후 2시경. 기사에는 시신이 발견된 시간은 오후 1시였답니다. 그러니까 시신이 발견
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네이버 뉴스의 가장 첫 번째 줄까지 이 소식이 올라온 겁니다. 아마
그 즈음에 이 게시판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거에요.


-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은 뉴스가 수시로 업데이트됐습니다. 오후 3시도 안 돼서 뉴스 포탈 싸
이트에는 고인의 자살 원인 추측기사, 지인들의 인터뷰, 좀 더 자세한 사건 정황이 속속 송고되
었습니다. 유서도 발견됐죠. 그러면서 뉴스의 초점은 대체 왜 자살했나로 맞춰졌고, 제목은 점
점 선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엄마', '혈서', '돈', '노출 스트레스'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어들
이 뉴스제목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네이버에는 싸이버 빈소까지 마련됐더군요. 이렇게 발견 후 2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 오후 4시경이 되자 홀연히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군대에 있는 친구가 간부의 핸드폰을 빌려
서 보냈더군요. '이은주가 자살했다던데 사실이야?? 인터넷에 떴다던데 확인 좀 해 줘'라는 메
시지였습니다. 자, 결국 이렇게 시신 발견 후 약 3시간 만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군대
에까지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접
한 거에요. 바로 인터넷의 힘입니다.


- 이렇게 이 사건에 대한 정보가 많은 사람에게로 퍼져나갈수록 이상하게도 제 기분은 참담해
졌습니다. 놀란 탓도 있겠지만 분명 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거에요. 그중 결정타는 네이버의
영화인 DB 업데이트
였습니다. 놀랍게도 생년월일 밑에 사망년월일인 2005.2.22일이 3시
정도에 업데이트됐습니다. 2시간만에요. 그 시각에 그 페이지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더
군요. 마치 2월 22일에 이은주가 죽을 거라고 예정되어 있던 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요. 명부처
럼 보여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 분명 기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습니다. 큰 뉴스이고 자살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나
품고 있는 의문이기 때문이죠. (물론 기사들의 제목은 충분하게 참담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만.)
또 영화인 DB에 즉각 업데이트한 건 오히려 신속한 업데이트라고 칭찬할 수도 있는 겁니다.
담당자는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한 거죠. 근데 왜 저는 그렇게 참담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 많이 생각해 봤지만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어렴풋하게라도 추측해 보자면 바로 그 '
속도'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속속들이 파헤쳐져 모두가 알게 되
는 데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질려버렸나 봐요. 빨리 알았던 만큼 빨리 잊혀지진 않
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납득하기 힘든 사실을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고
빨리 납득하라고 보채는 것 같아 야속한 기분이 들기도 했을 거에요.


- 하지만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한 영화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
게 퍼졌다.' 분명 참담한 기분이 들 정도의 명제는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
다. 어제 느껴진 그런 참담함은 어디서 왔던 걸까요. 앞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
다. 분명 똑같은 기분을 또, 그리고 여러 번 느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여러 가지가 변했듯
이, 죽음의 질감도 변하고 있나봅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무쪼록 그곳에서는 평
화롭길.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724 [질문] 클로저 ost는 없나요? 정한나 731 02-23
8723 안경을 벗어봐 클리셰 p 1,928 02-23
8722 [남극일기] 티저 예고편 DJUNA 1,286 02-23
열람 이은주, 그녀가 떠난 후 몇 시간 동안의 생각 believeinme 1,726 02-23
8720 영화 '연애소설' 中 나레이션 courtney 986 02-23
8719 여고괴담네번째이야기:목소리 사진들입니다. 배봉 1,186 02-23
8718 변혁 감독, 이은주 인터뷰...주홍글씨에 대해서 준하 3,910 02-23
8717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들은 정신과에 어떻게 갈까요? 새치마녀 1,980 02-23
8716 '사람 vs 사람’ 정혜신씨가 분석하는 ‘남자’와 ‘나’ alias 1,004 02-23
8715 가입 인사와 자살에 대하여... 자유롭고싶어 1,282 02-23
8714 스포일러와 질문..!!!!(숨바꼭질 안 보신 분 절대 클릭 금지..!!) 최원일 1,004 02-23
8713 Gay찬가 그리고 그外 Corelle 1,648 02-23
8712 자살에 대한 책임 이규영 2,746 02-23
8711 이런 영화 알려주세요. acrobat 1,268 02-23
8710 [마지막 도배] 이은주씨의 우울증에 대한 병원 브리핑 새치마녀 1,832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