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TV를 틀었더니 슬리피 할로우가 나오더라구요. 간만에 재밌게 봤습니다. 볼 때마다 간간히 느끼는 건데, 목 없는 기사 은근히 로맨틱하고 괜찮지 않던가요. 죽은 말을 슬프게 쓰다듬던 것, 진짜 살인마라면 아이들을 만났을 때 확 죽여버리거나 겁을 줬을 텐데 오히려 쉿-. 어쩐지 좋은 사람 같았어요. 무섭게 보이려고 이를 갈았다니 참 귀엽기도 하고. 교회 장면이나 풍차 장면에서 사람들 죽이려고 뒤쫓는 것을 보니 머리도 잘 돌아가는 것 같고. 제일 백미는 절정 부분이었습니다. 드디어 머리를 되찾은 목 없는 기사...애틋한 눈빛으로 반 타셀 부인을 바라보다 정열적으로 키스를 하는 그 모습이란. 비록 피를 흘리기는 했지만요. -_- 제가 리메이크를 한다면 목 없는 기사를 로맨틱 히어로로 만들렵니다.
그런데, 듀나님은 리뷰에 왜 '젊은' 매스배스라고 하셨는지, '소년' 매스배스에 가깝지 않을까요.
온라인을 돌아다니면서 받는 가장 큰 유혹 중 하나는 제 나이를 밝히는 일입니다. 사실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곳이 많질 않으니 그런 일은 드물긴 하지만요. 처음 인터넷을 시작했을 땐 스스럼없이 나이를 말했어요. 그런데 저도 경력이 쌓이다 보니 점점 제 나이에 대해서는 숨기게 되더군요. 어딜 가든지 나이를 먼저 말하면 한 단 낮추어 보는 경향이 강하더라구요. 처음에는 그걸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은근히 알게 모르게 전 어린 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단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걸 안 순간 반말이 나오는 건 십중팔구, 제 의견 하나라도 말할라치면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뭘 안다고 그래', '넌 좀 빠져' 등등. 물론 드러내놓고 저런 말을 들은 적은 없지요. 그리고 전 실제로 나이가 어렸으니(지금도 많지 않습니다) 연장자 말을 따르는 게 옳았을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해서 군말 없이 따라간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손해 본 경험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별로' 없었죠.
이렇게 쓰고 보니 한갓 어린 애 투정같아 보이는군요. 그런 면이 없잖아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웃겼던 점은 그렇게 연장자 행세를 했던 사람들도 고작 저보다 서너 살 연상에 불과했다는 거예요. :-p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보면 글쎄요, 그땐 저만 어렸던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또래의 커뮤니티를 찾아 놀았더라면 좀 덜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꼭 나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계속 어린 아이 취급을 받다 보니 저는 정말로 꼬마에 불과한 듯 느껴지더라구요. '난 어리니까', '난 어린데 어떻게 그런 일을', '어려서 잘 몰라', '어린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등등. 예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말들이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결국 또 다른 연장자에게서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제가 어리광 부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연장자는 그러면서 충고 한 마디도 해 주었어요.
"어디 가서 나이 얘기는 하지 마. 그럼 되잖아."
그 이후로 저는 나이에 관해서는 일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확 바뀐 건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낮추어 보는 시선은 확실히 없어졌지요. 사실 활동하던 커뮤니티가 대폭 줄었어요. 그래서 예전만큼 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여하튼 지금은 온라인상에서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은 굉장히 적습니다(추정한 사람은 있을지도). 편하기는 편하지만, 때때로 그냥 말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특히 여기에 글 올릴 생각을 할 때요. 대부분은 귀찮아서 포기하고 말지만 어떤 때는 구체적으로 글을 다 작성한 적도 있습니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할라치면 자꾸 제 연령대를 알 수 있는 쪽으로 얽혀 들어가는 거예요. 이 게시판에서 제 나이를 안다고 무시하거나 그럴 일은 이제 잘 없을 텐데도 말이죠. 나이 때문에 놀랄 만큼, 주목받는 것도 아닌데요. 나이를 숨기는 게 습관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정말로 많은 나이라면 좋겠습니다. 괜히 조바심내지 않아도 여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