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에 대한 가장 균형잡힌 시각(이준구 교수님)
어제 저녁 DH님의 댓글을 달다가 글을 올려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미 FTA에 대한 가장 균형잡힌 시각은 아래의 이준구 교수님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준구 교수님은 우리나라 주류경제학자중 가장 상식적이며 균형감각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개인적으론 전반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저와 가장 입장이 비슷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분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라는 시장 근본주의적인 편견과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한미 FTA -걸어 볼 만한 도박인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준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환이든 아니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환이든, 교환은 이에 참여하
는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물론 강압에 의해 억지로 교환에 응해야 하는
경우에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교환에 참여하는
한 어느 누구라도 손해를 보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손해를 보게 되
는 교환에 결코 응할 리 없기 때문이다.
교환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해준 기본적 원동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모두가 스스로 생산한 것만 소비해야 한다면, 우리
의 물질적 생활은 그야말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얼핏 보기에 교환이
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행위에 불과할지 모른
다. 그러나 교환은 우리 인간이 생각해낸 사회적 행위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교환에서 나오는 이득은 교환이 이루어지는 범위가 커질수록 한층 더 커진다. 가까운 친
척들 사이에서만 교환이 이루어진다면 거기서 나오는 이득이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비슷
비슷한 물건들을 생산하는 사람들끼리 교환을 해보았자 별다른 이득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환의 범위가 마을 사람들 전체로 넓혀지면, 교환의 내용이 더욱 다양해지고 이
에 따라 교환에서 생기는 이득도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와 같은 논리를 계속 적용해 보면 세계의 모든 나라가 교환에 참여할 때 우리가 얻는
이득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경의 존재에 구애 받지 않고 세계의 모
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물건을 사고파는 상황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바로 여
기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강력한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자유무역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유무역을 통해 교환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 그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론과 현실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현실에서 자유무역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모든 상품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상황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설사 어떤 나라가 자유무역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나라 국민의 경제적 복지 향상으로 이어질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한 나라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 그 나라의 모든 국민이 이득을 얻
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는 비교우위이론은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충족되어 있
는 상황에서만 설득력을 갖는다. 하나는 어떤 나라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산업으로 특화
하는 과정에서 생산자원의 이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IT
산업으로 특화하려 한다고 할 때, 다른 산업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노동과 자본 등의 생산자
원이 별 문제 없이 그 산업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전제는 자유무역에서 발생하는 분배상의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유무역을 통해 모든 국민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유무역에서 이득을 얻는다 해도,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유무역은 필연적으로 분배상의 문제를 일으
키게 된다. 이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자유
무역에서 나오는 이득보다 더 큰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현실은 비교우위이론이 그리고
있는 장밋빛 구도와 매우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자유무역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한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단지 무역을 자유화한다고 해서 이득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역 자유화 그 자체보다 자유화를 한 이
후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 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무역에 따르는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무역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다. 이에 따르는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유무
역의 장점이 너무나도 크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도 되
는 듯 반대의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균형 잡힌 생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의견에는 집단이기주의적인 요소가 섞여 있기 쉽기 때문
에 이 점에 대해서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무역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우리 사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의
문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한미 FTA는 최소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무역만이라도
완전히 자유화하자는 협정을 뜻한다. 따라서 자유무역에서 오는 이득이 생길 수 있는 반면
에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에 찬
성하는 의견이나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모두 나름대로 일리를 갖는 것이다.
한미 FTA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으로 드러나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협정의 체결과 더불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 농업이 더욱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영세한 농업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 농업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긴 이득을 농업부문으로 이전해 줌으로써 농민들이 입는 피해를 보
상해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한미 FTA에 의해 누가 얼마만큼 큰 이득을 얻는지 파악하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자유무역에서 나오는 이득은 그 본질상 생산자와 소비자들에게 광범하게 분산되어
실현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으로 인한 손실의 경우에는 그 당사자가 분명하
게 드러나지만, 이득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특징이 있다. 더군다나 이득을 얻는 당사자들
은 자신이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
에 소득재분배를 통해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되어
있다.
한미 FTA 추진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농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
지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협정이 체결된 후 농민의 삶이 최소한 지금보
다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협정이 체
결된 후 생존의 기반마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몸을 던져 협
정 체결 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 시책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과 더불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부문이 바로 서비스산업이다.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서비스산업이 물밀 듯 밀려오면 우리 서비스산업이 고전을 하
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의 서비스산업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 우리의 서비스산업은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
다. 우리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은 경제의 전반적 경쟁력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서비스산업을 농업과 똑같은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농업의
경우에는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우리로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본질
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의 경우에는 그런 본질적 핸디캡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비스산업의 성격상, 우리 시장에서
는 우리 업체가 오히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의 구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일부 업종에서는 한미 FTA가 상당한 어려움을 가
져다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비스산업 전반을 놓고 볼 때는 한미 FTA가 경쟁력 강
화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경쟁만 이루어지는 국내
시장에 안주해온 탓에 우리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쟁력이 강화될
때까지 보호장벽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영원히 보호장벽을 구축해 달라는 주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세계 경제의 진화과정에 비추어 볼 때, 지금과 같은 제조업 위주의 수출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할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갖는 나라가 선진국이었지만, 이제는
서비스산업에서 경쟁력을 갖는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구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니, 상당
히 오래 전에 이미 그런 구도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조업 위주의 수출에 안주해 서
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소홀히 하다가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마는 결과가 빚
어질 수 있다.
농업이든 서비스산업이든, 한미 FTA로 인해 손해를 보는 부문은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어떤 일에서도 그렇듯,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보는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경제의 어떤 부문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한미 FTA를 거부하
는 명분을 삼을 수는 없다.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그 어
떤 합의도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경제 전체가 얻는 이득이 손해보
다 더 큰지의 여부이며, 논의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경제학자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 별로 확신이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부분의 예측은 한미 FTA가 가져오는 이득이 손해보다 더 크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인데, 무역을 자유화함으로써 생기
는 손실이 이득보다 더 크다는 결과가 나오기는 본질상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이 결론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협정 체결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문, 특히 농업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한미 FTA를 반대해야 할 분명한 이유는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
론 그 전제가 매우 큰 의문을 내포하고 있는 전제임을 인정하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적절한 대책의 마련이 어려울 테니 아예 한미 FTA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
은 합리적인 주장이 될 수 없다. 지금 이 단계에서는 한미 FTA가 갖는 잠재력에 기초해 이
것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한미 FTA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경
제의 체질상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수출에서 성장
의 동력을 찾아온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시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경제의 규모나 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이 자유무역
협정 체결의 대상으로서 이상적인 나라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미국
시장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한미 FTA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의 손익계산서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이 흐름에서 빠져
있는 데서 나오는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를 하는 경우의 이득
이 별로 크지 않다 해서 하지 않는 경우의 손실 역시 작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
다. 이득을 얻는다는 적극적인 입장이 아니라, 손해를 줄인다는 소극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한미 FTA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점이 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협정 체결과 함께 미국 상품들이 우리 시장을 휩쓸 것처
럼 말하고 있다. 미국 상품들이 과거보다는 더 많이 진출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싹쓸이
를 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 환경이 더욱 험난해질 것은 사
실이나,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경쟁의 압력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농업같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산업에서도 경쟁
의 압력이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 몇 년 전 우리가 가전제품 시장을 개방한 경험을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때 가전제품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가전제품 산업이 궤멸의 위기
를 맞을 것이라는 어두운 예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뒤의 경험은 그와 같은 예언
이 전혀 근거가 없었음을 생생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현재 우리 가전업체들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의 가전업체와 맞상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
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장 개방이 국내 산업의 궤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별 근
거가 없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은데, 이
점에 대해서도 좀더 냉철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
고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협상 과정에서 우
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카드를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 비록 우리 국
민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협상전략을 노출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
협상이 끝나고 본격적인 체결 절차에 들어갈 때는 모든 것을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 단계에서 하나라도 감추는 부분이 있다면 엄격하게 그 책임을 물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 중에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알려주고 협상에 임하라
는 요구는 우리 스스로의 손발을 묶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협상이 진행 중에 있을 때
라도 어느 정도의 여론 수렴은 해야 하겠지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
이다. 일단은 정부를 믿고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 하나하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냐는 문제다. 협상 과정에서는 누구든 전략적으로 이런저런 요구
를 늘어놓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요구만 내놓는 사람은 협상을 자기에게 유
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 우리가 수긍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략적인 이유
에서 내세우는 요구사항이 분명히 섞여 있을 것이다. 이런 것에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거부의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한미 FTA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
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구체적인 협정의 내용이 무엇이며 협정이 발효된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에 따라 그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는 장밋빛
청사진이나 암울한 예언 그 어느 것도 객관적인 입증이 불가능하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
는 쪽이 마치 홀로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
성을 마치 확실한 일인 양 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적절한 후속조치가 마련되기만 한다면
자유무역에서 오는 이득이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한미 FTA가 충분
히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박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사전적으로 보면 그 성패가
불분명하다는 의미에서 모든 정책은 도박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계획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시장경제의 놀라운 역동성의 근
원을 바로 이 위험부담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일이다.
한미 FTA를 거부하고 예전처럼 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위험한 도박을 하느냐는 반
론이 나올 수 있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안
일한 태도로는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잡을 수 없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
에 과감한 승부를 걸었던 덕택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패가
불분명한 정책에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한다면, 자연적인 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미 FTA라는 도박에서 승리를 걸머쥐게 될 관건은 농업 등 어려
움을 겪게 될 부문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다. 그것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자유무역으로부터
얻는 이득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잡기는커녕, 양극화의 심화로 치유하기 힘든 상처만 남기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
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
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