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손님 대접, 명절 노동, 음식, 모임의 의미 등등..

  • 소상비자
  •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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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큰집에 내려갔습니다.
전 이번 설이 미혼으로서 마지막이라... 사실 수금하러 간 겁니다.(쿨럭)
30대 중반으로 향해가는 큰집 큰언니도 새뱃돈 받는 터라, 막판 미혼이고,
마지막으로 설 보내는 건데 좀 챙겨주겠지 싶은 꼼수죠.
결론적으로 수금은 톡톡히...;;;

1박2일, 시간으로 따지면 24시간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을 큰집에서 보내고 오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는 사정이 있어 좀 늦게 갔는데, 가 보니 숙모 한 분과 큰집 언니들이 전은 거의 다 부쳐놨더군요.(죄송했습니다)
몇년전엔 전 부치는데 옆에서 몇 시간을 거들었고, 그러다 손가락 데이고,
허리 뽀개지게 아프고 명절노동증후군을 겪기도 했습니다만.
이번엔 음식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종류도 적었고 양도 적었어요. 모인 사람도 적었죠.
예전처럼 떡을 하지도 않았고, 생선도 한 마리 큰 걸 구웠지만 밥먹을 때 까먹고 안 꺼냈고,
제사 모시고 아침 좀 느지막이 먹고 어른들 모여서 좀 얘기하고 1시 좀 넘어 집으로 출발.
아주 단촐하게 설을 보냈습니다.

저희 아버진 오는 내내 궁실궁실. 먹는 거 부실했다고요.
저도 좀 뭔가 그렇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세월 가다 보면 명절이 명절답지 않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큰어머니도 나이 많으신데 뭐 그리 힘이 넘친다고 이것저것 하겠나 싶고 그렇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 엄만 역시 손님 대접을 잘해-_-'
아닌게 아니라 진짜 그래요. 원래 성격이 남을 잘 챙겨주게 타고 났어요.
자기가 덜 먹고 덜 챙겨도 남한테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해요.
그래서 일복이 넘쳐나죠.
저 고딩때였나.. 한여름에 친척들이 죄다 우리집에 모여 휴가 보냈어요.
엄마가 요리하고 뒷바라지 다 했고요.
저희 아버진 입으로 생색내는 타입이죠. 가사 노동이 노동인줄도 모르고.
그냥 그까이꺼 대충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해요. 보고 있으면 진짜 쥐어박아 주고 싶은.

그런데 엄마의 손님 대접을 보고, 다른 집에 가서 우리집보다 못한 손님 대접을 보면.. 자연스레 비교가 되요.
반짝반짝 깨끗한 우리집 살림과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다른 집 살림이 비교되고.

물론 엄마의 노고는 상당해요. 내가 한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고되고 피곤할 거에요.
하지만 엄마의 경우는 그걸 힘들다, 고되다, 왜 나만.. 이런 생각이 아니라,
내가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남들이 좋으면, 즐거우면 나도 좋다.. 이런 마인드거든요.
시골의 큰집에서 장녀로 자라 대접하고 챙기는 걸 보며 자라서인지 그런 게 은연중 배어있나봐요.
타고난 성품이 워낙 착하고 이타적이기도 하고.
'손님 대접을 잘 해야 복이 온다'는 옛날 사고방식을 딱히 믿는다기 보다.
아무튼 '봉제사'까진 몰라도 '접빈객'하나는 잘하는 분이 저희 엄마입니다.
(봉제사도 잘 하네요 그러고보니. 이건 외할머니가 워낙 제사를 챙기셔서..;)

반면 전 손이 작고, 음식도 푸짐하게 하는 버릇이 아니고 잘고..ㅠㅠ
만일 제가 손님으로 저같은 사람이 주인으로 있는 집에 갔다 치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내온 음식은 고양이 눈물만큼.
별로 좋은 기색으로 맞지도 않고 왠지 빨리 갔으면 싶은 기운을 마구마구 내보낸다면, 아주 불편하겠죠.
아무리 집이 개인적인 공간이고 사생활이 중요하고 그래도 집에 온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 또한 예의의 일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렸을 땐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 뭔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명절 모임의 경우도.
물론 전 명절이라고 시집에 가서 연휴 내내 전이나 부치고 국이나 끓이고 싶진 않습니다.
모여서 맛있는 거 사먹고 얘기 나누고 그러는 게 좋죠.
시집에도 갔다가 친정에도 갔다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든다'라는 것 또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여성에게, 그것도 며느리에게 강요되다시피 한 일이란 것이 반감을 일으키게 한 것일 뿐,
명절에 온 식구들이 모여 함께 먹을 음식을 함께 만드는 것 자체는 화합의 상징이잖아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예전에 본 중국 드라마 중에 '우리가 살았던 나날'이란 게 있었어요.
96년부터 2006년쯤까지 10년간 세 친구들의 보낸 세월을 그린 건데,
설, 그쪽에선 춘절을 보내는 장면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춘절마다 그들과 그들의 여친들이 모여 만두를 빚어 단원반(團圓飯)을 만들어 먹어요.
'단원'은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말하죠.

가족끼리, 친지끼리 모여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함께 만들고 그러면서 서로의 일상을 얘기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는 참으로 의미있는 일인데 왜 요즘엔 그것이 피하고 싶은 고된 노동이 된 건지...
기혼의 명절을 앞둔, 미혼의 마지막쯤에 선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몰려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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