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노동?

  • 잠시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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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게에도 명절 관련 글이 꽤 있는걸 보니 약간 신기합니다.


전 여자고, 미혼이며, 역사를 가르치고,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제 생각에 명절노동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 물론 가부장주의의 폐해도 한 몫 하겠지만 - 그보다는 너도 나도 일을 너무 안해본 사람들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요즘 사람들은 (저포함) 남자나 여자나 공부한다고 무슨 일다운 일을 전혀 안해보고 자라잖아요. 일이란게 힘이 들어가는 것 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눈치껏 어울리면서 자기 할 일 스스로 찾아 하기, 그러면서 자기 자리 찾기, 뭐 이런게 다 포함되는데 남자고 여자고 이런 경험들이 거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보니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대가족이 일반적이던 시절에도, 그게 정말 억압적이기만 했던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인들의 상황을 조율하고 욕구를 풀 수 있는 센서들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개인들이 가진 감수성이었던 것 같아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능력이지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남자들이 하는 집안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농사를 해서 식량을 확보하고, 집을 직접 짓고 고치고, 월동준비로 장작 해놓고 등등.. 그러니 명절이라고 남자들이 놀고 먹고, 여자들만 죽어라 일한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여자들은 음식거리가 있는걸 감사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요즘도 대가족 경험이 있는 집 아들들 - 주로 큰집 자녀들이기 쉽죠 - 보면 절대 놀고 먹지 않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기 할 몫 딱 딱 찾아 해요. 어른들 크고작은 심부름에, 어린 사촌들과 놀아주기부터 등등.. 이런 애들은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엄마 도와 음식도 잘 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가부장제라는게 아버지를 리더로 받드는건데, 아무리 사회적인 관습이 그렇다 해도 리더가 리더노릇을 못하면 그 질서 결국 오래 못가거든요. 그런데 리더십이란게 알다시피 솔선수범에서 나오는 거구요.


그러니 그런 감수성이 작동하는 가운데 기강이 잡혀 있고, 질서가 유지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그런 가족이라면, 설령 다소 가부장적이라 할지라도 불합리한 관행들을 개선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관행들이 유지되고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것이 개개인을 억압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구요.


오히려 문제는 콩가루 집안이겠죠.
네.. 이런 집안이야말로 답이 없습니다.
집안도 일종의 조직인데, 조직에 기강이 없으면 개인들의 이기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니까요.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온갖 혼선이 일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겠죠.



요컨대 명절노동은 사실 노동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가 문제다.
가족들이 화합해서 서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의사소통이 잘 된다면,
누가 조금 더 일하고 덜 일하고 어디 먼저 가고 나중에 오느냐는 큰 문제가 안된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문제는 가부장주의에서 온다기보다는 감수성의 부족에서 오는 바 크다.


.........는게 요즘 제 생각이랍니다.



그리고 덧붙여, 저도 유교적 가부장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요즘의 명절문화 성토는 좀 걱정스러울 때가 있어요.

조선백성들이 워낙 극단적이라서 (^^;;)
유교적 가부장제도 극단으로 밀어부쳤지만 그걸 혁파하는 것도 극단적으로 밀어부칠 것 같아서요.

벼룩이 밉다고 초가삼간을 태워서야 되겠습니까.
가부장제가 밉다고 가족의 화합마저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성현들이 왜 중용의 도를 그토록 설파하셨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 서른 네살 처자의 넋두리였습니다. 그저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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