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그는 20살 5월에 소개팅으로 만났습니다. 20살 10월부터 사겼고 26살 5월에 헤어졌습니다. 27살 5월까지는 제가 절절하게 매달렸고, 27살 12월31일에 마지막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9살 설날에 그에게 먼저 문자가 왔고, 제가 먼저 만나자고 했으며, 그렇게 거의 만 3년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정말 제 20대를 지배한 사람이군요. 그렇다고해서 그 사람과 헤어져있던 3년 동안 저도 기다리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여러 사람을 만났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항상 누군가와 잘될 때는 바람 피우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씩은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지요. 결국 하느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셈이네요.
그런데 그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그는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해요. 설날에 다시 만났으니, 이제 일주일도 안된 셈인데 왜 이렇게 행동하지 저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와 놀아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에요. 지금 그는 매우 극단적으로 바쁘기 때문에 잘 시간도 부족해서 허덕거리는 상황이거든요. 처음에는 제가 선약이 있어서 보자는 걸 거절했을 때 자신에게 맞춰주지 못하는 걸 섭섭해하는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충분히 웃기지만요. 그는 본인이 엄청나게 바뻐서 일하고 있는데, 제가 사람들과 만나고 놀고, 심지어 혼자 영화보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만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걸까요? 또한 헤어져있던 기간 중의 변화를 잘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걸 너무 슬퍼해요. 저는 좀 황당합니다. 그렇게 변하게 한 게 그니까요. 지난 3년간 정말 전 죽을 뻔 했거든요.
나이가 있는 만큼 부모님 문제도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와 제가 헤어지게 된 건 (물론 그가 절 그만큼 안 좋아해서겠지만, 핑계거리라도 댈 수 있는게) 그의 어머니가 저를 못마땅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문직이고, 저는 일반사무직입니다. 집도 그냥저냥 먹고는 살 뿐이지 뭘 바리바리 싸들고 갈 수는 없어요. 그럴 생각도 없지만. 어찌보면 그의 어머니 눈에 제가 안 차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군요. 저희 어머니도 반대합니다. 어제 연락이 왔다고 뉘앙스를 띄워봤더니, 엄마 딸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ㅡㅡ;; 저희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누굴 만나던 처음 들었습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 건 결혼을 포기하는 거라고. 걔는 너랑 결혼할 생각이 없을 꺼라고. 게다가 니 인생에서 제일 힘들 때(아버지가 아프시고, 회사에 적응 못하는 상황에서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버린 사람이라고. 자존심도 없냐고. 어머니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저를 얼마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당췌 짐작이 안 가요. 하긴 그럴만큼의 시간도 없긴 없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마냥 좋아서가 아니에요. 20대 내내 저를 미치게했던 그의 사랑스러움은 세월 앞에서 완전히 바스라졌거든요. 게다가 너무 화가 납니다. 가장 힘든 시기 그렇게 저를 내쳤다는 게, 그렇게 잔인하게 저를 버려놓고 과거를 회상하는 말을 할 때면 도리어 제가 찬 것같은 느낌조차 줄 때, 제 변화를 용납하지 않을 때, 저는 그가 밉기조차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똑같이 복수한다고 저를 좋아하게 한 다음에 차는 방법도 있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중간에 도리어 제가 더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있구요. 그렇다고 해서 놓고 훨훨 날아가지도 못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감정이 정말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약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새벽에 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제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하다고(11시 31분 경에 전화가 왔는데, 제가 졸려서 못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엄마 딸 하지 말라고 하셔서 슬퍼서 맥주 한잔 하고 일찍 잠들었다고. 여전히 유약하고 비겁해보이는 그이기에 그 문자를 보고 도망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전만큼 그립진 않겠지요. 저는 무슨 생각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