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기에 대한, 어릴 때 읽은 책의 한 단락, 그땐 아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응? 하는 이야기
DH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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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시형의 <멋진 인생>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인생사 순간순간에 읽어볼만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거였죠. 비싼 메이커 옷이 입고 싶을 때에 대한 이야기 시작이 이런거였습니다.
바깥에 구경을 나가야 하는데 입을 옷이 없다고 아내가 신경질이다. 이때 모 철학자가 답했다. "옷? 구경을 '시키러' 가는게 아니라면 옷이 무슨 상관이지?" 한마디로 예쁜 옷 입어봤자 자기는 못보고 남들만 보는데, 남들한테 자기를 구경'시키러' 가는게 아니라면 구경을 '하러' 간다는 사람이 왜 옷에 집착하냐능. 그땐 아 그렇구나! 메이커 옷 사달라고 징징거리는 것들은 다 동물원 원숭이가 되고싶어 안달난 바보들이구나! 했었지요. 아마 덕분에 부모님은 저 키우기 약간 수월하셨을 겁니다.ㅋ
이런 류의 에피소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욕망을 수준 낮은 것으로 치부하고 그 위에 선 것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일견 고민과 콤플렉스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꼭 나쁜건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해결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해보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욕망을 거세시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욕망이 잘 거세된다면 다행입니다만, 거세되지도 않았는데 고고한 학처럼 살고는 싶다면? 인생 아마 상당히 피곤할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해봤을 때, 주변의 반응은 백이면 백 '자기만족'이라는 걸 무시한 무식한 소리라는 거였습니다만, 사실 따져보면 그런 설명조차도 필요가 없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외모에 무관심한게 아니라면, 구경 좀 '시키면' 어떻습니까? 비싼 옷을 입은 덕분에 남들이 날 예쁘고 멋있게 봐준다면, 그래서 내가 기분이 좋으면, 그 옷은 돈 값 한거죠.
이 정도로 생각이 변하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이른바 명품의 가격과, 그걸 사기 위한 지나칠 정도의 노력을 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이런 동물원의 원숭이..." 하는 생각이 자꾸 올라옵니다. 설사 그런 행태가 비판받을만 하더라도, 사실 다른 논리로 비판이 충분히 가능한데 말이죠. 이래서 어릴 때 책 잘 읽어야 해요. 이시형의 책이 꼭 나쁜 책이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 반대편 입장의 책도 읽어볼 기회를 가졌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런 책이 저희 집안에 저 읽어보라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