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동물병원만 다녀오면 마음이 씁쓸해요.

  • fysas
  •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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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희 집 겸댕이 반지(♀,8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나이 여덟 먹어서 출산이나
예방접종 이외의 용무로 병원에 가본 적이 전혀 없는 건강함의 화신 같은 아이인데 이틀 전부터 자꾸
토하고 먹는 게 시원치 않아서(물론 그래도 간식은 빛의 속도와 공룡 같은 먹성으로 먹어치웠지만요;)
처음으로 병원에 갔어요. 사실 전에도 가끔 예민해지면 한번씩 토하긴 했었는데 이번엔 이틀 연속이고
애가 최근에 살도 좀 붙었고 제가 연휴동안 일본여행 다녀오느라 대전 아버지께 맡겨놨더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 것 같고.. 무엇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번 검진 받아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데려가봤어요.




밖이 추워서 옷을 입혔더니 이렇게 귀여워졌습니다. 누가 이 초동안 아줌마를 8살로 보겠냐며...;ㅁ;


사실 반지는 병원이 노는 데인줄 아는 것 같습니다. 가끔 예방접종하러 가긴 하지만 같이 사는 형제
푸들 찌루(♂,8세)가 워낙 종합병원이라 두어 달에 한번씩은 병원 신세를 지거든요. 그때마다 나가는
김에 산책 겸 따라가다 보니 애가 병원 무서운 줄을 몰라요. 어제도 그래서 진료대 올라가기 전까진
전혀 긴장감이 없었습니다만, 막상 진료대에 올라가면 애가 또 근성은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포기가
빠른 개가 되어 저를 애처로운 얼굴로 쳐다보며 벌벌벌 떨기만 합니다. 어제도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접수대의 매니저 언니한테 인사,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참견, 간식진열대 가서 괜히
얼쩡대기 등등의 부산함을 보여주다가 진료대 올라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얌전한 개가 되어 얌전히
진료를 받았었죠.

사실 병원 데려가면서 그냥 소화불량 혹은 위염 정도의 가벼운 진단을 당연히 예상했기 때문에 괜히
병원에서 큰 병 들먹이며 이런저런 검사를 권유해도 무시하자, 난 내일모레가 월급날이라 알거지니까..
라고 굳게 마음먹었어요. 워낙 병치레가 많은 찌루를 8년동안 키우다 보니 의사선생님의 웬만한 과장
드립엔 흔들리지 않는 무던한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어제도 이런저런 증상을 얘기하니까
선생님이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궁축농증일지도 모르니 초음파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또
저는 그 걱정스러운 선생님 얼굴을 보는 순간, 진료받기 전에 단단하게 먹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진짜요? 정말요? 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검사비 걱정도 잊고 우리 반지 괴롭겠구나, 목욕 안하고 오길
잘했다, 배에 털도 밀어야겠네.. 라는 생각들을 했죠.;;

장장 30분에 걸친 초음파 결과, 여덟의 나이가 무색하게 반지의 장기는 어느 하나 탈 없이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아냈습니다.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아, 검사비.. 싶더라구요. 항상 이런 식이죠. 큰병이 아닐
거라는 걸 당연히 예상하면서도 막상 혹시나..하는 노파심이 언제나 승리하죠. 검사비 좀 더 받으려는
병원의 수작인 걸 뻔히 예상하면서도 결국 이기는 건 혹시나.. 더라구요. 차라리 제가 아프면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혹은 설마 별 일 있겠어? 하면서 넘어가는데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하는 동물들이고,
제 피붙이 같은 자식들이라 언제나 병원의 수작에 넘어가곤 합니다.

이럴 땐 애들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6년 동안 돌봐줬던 고향의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이 참 그리워요.
작은 병원에 설비도 별로 좋진 않았지만 정말 잘해주셨었죠. 진단을 할 때도 항상 모든 가능성을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진료비나 검사비 내역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설명해주섰었죠. 제가 퇴근이 늦어서
진료시간에 못 맞출 것 같다고 전화하면 늦게까지 기다려주기도 하시고 공짜간식 항상 챙겨주시고 가끔
미용도 공짜로 해주셨었어요. 그러다 거주지를 옮기면서 지난 2년 동안 3군데의 동물병원을 전전하다
다 믿음직하지 못해서 결국 지금 다니는 병원에 정착했고, 워낙 원장선생님의 실력이 좋으시고 다른
선생님들도 다 잘해주셔서 만족스럽긴 한데 사소한 증상에도 번번히 큰 검사를 권유하는 게, 하고나면
항상 마음 한켠이 씁쓸하고 기분이 참 그래요. 그래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언제나 벌벌 떨면서 넘어가
버리는 저도 문제지만 말입니다.




안그래도 월급 전이라 가난한데 비싼 검사비+진료비에 최고급 유동식까지 사오면서 왕복 택시로 모셨
음에도, 주사맞은 뒤에 계속 산책가는 줄 알았는데 날 속였어!!! 라는 눈빛으로 저를 원망하던 반지는
집에 오자마자 저 자세로 웅크리고 한참동안 저를 외면했어요. ;ㅁ; 흑흑흑.. 그래도 많이 아픈 건
아니니까 다행인 거죠. 그런데 어쩐지 계속 마음이 씁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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