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 the Queen + 또 생일이군요

  • hubris
  •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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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드디어 금메달을 땄습니다. 사람들과 TV 앞에서 옹기 종기 모여서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보고 있었는데, 어제 숏 프로그램이 끝나고 쥬니어 트레이더에게 보스가 했다는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하는 트레이딩이 엄청난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저런 게임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 않아?"

그도 역시 트레이더 출신으로, 트레이딩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정체가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스트레스의 핵심은 공포감이죠. 돈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내가 틀렸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내가 이성보다 충동을 앞세운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 운명이 내 편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 재밌는 것은, 막상 손실은 보는 그 순간은 오금이 저리긴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현실화되면, 시원하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인간의 상상력은 보물과도 같은 것이면서도, 깊이 없는 인간을 바싹 바싹 메말려 버리기도 합니다.

해설을 맡은 여자분은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해설을 맡은 미국인 해설자는 안도 미키의 경기가 끝나고, 김연아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요"(My heart started beating faster. This is so anticipating)

사실, 숏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부터 온라인에 돌아다닌 소위 '연아의 일기'에는 김연아가 얼마나 치열하고 치밀하게 이 날을 준비해왔는지 잘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끝이 쫌.. 그랬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것 같다. 지난여름에 처음으로 제대로된 체력훈련과 그야말로 훈련같은 훈련을 해보았다. 와..어떻게 내가 그런 것들을 이겨냈는지...그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어제, 숏트랙 3천 미터 계주에서 1등을 했다가 반칙으로 실격한 한국 여자 선수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그들도 김연아 만큼이나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훈련다운 훈련"을 해봤다면 해 본 선수들일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갈성렬의 말대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주님이 도와주셨고, 은메달을 딴 사람은 주님이 살짝 외면하셨고, 실격한 사람은 주님이 완전히 외면했고,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김연아의 경우는 타고난 재능과 신체조건을 갖고 죽어라고 연습을 한 것이고, 실격한 그들도 김연아 못지 않게 열심히 했지만,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죠. 다만, 운이 없었다고 체념하려면, 그 체념에 본인이 다치지 않는 방법은 김연아처럼 "훈련같은 훈련을 해보았다"라고 말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눈물나게 억울하고 안타까워도 결과를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단지, 올림픽이나 운동 종목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은 자동차 사고같은 것, 이라는 드라마 대사를 믿습니다. 사실, 그런 사랑을 믿으면 인생은 꽤 편리할 것만 같지요. 사랑이 찾아오지 않고 있으면, 언제가는 내게도 자동차 사고가 날 것이라 믿고 살면 그만일테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런 체념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수 많은 번민과 회의감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죽을 때까지도 자동차 사고를 못 경험한 수 많은 사람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만약,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됩니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대부분의 경우 이유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상대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은, 사실 내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났을까, 하는 후회는 사실 내가 왜 이런 상대를 만날 수 밖에 없었을까, 라는 질문에 필연적으로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역시 필연적으로 내가 그 정도 수준 밖에 안 되기 때문이란 대답으로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상대를 만났는데,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들 도저히 포기 할 수 없다면, 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서 개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없다면 돈을 벌어서, 학벌이 나쁘다면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이 없다면 취직을 해서, 몸이 뚱뚱하다면 살을 빼서, 개를 싫어한다면 개를 공부해서, 예술에 대한 조예가 부족하다면 예술을 공부해서, 시를 좋아한다면 시를 공부해서, 그 사람이 앞에 서는 방법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말이죠.  그런 식으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설령 돈을 버는 데 실패하거나, 살을 빼는 데 실패하거나, 좋은 시를 쓰지 못해도 후회하는 법 대신 체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최선을 다 해 보았다는 경험"은 설령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너무나 근사한 경험이기 때문이고, 또 "그 전보다 적어도 나은 인간이 되었다"는 만족감은 상상도 못하게 멋진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사랑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미련은 남지 않습니다.

첫사랑을 못 잊는 사람은 그래서 대표적인 루저(loser)입니다.

첫사랑이 자기 인생의 가장 훌륭한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못 잊는다는 말은 그 뒤로 내내 자신의 삶은 내리막 길이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조심할 것은 절대 상대에게 너가 싫어하는 면을 고쳐서 혹은 개선해서 오겠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을 심어주면 설사 억만장자가 되어 나타난다고 해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럼 운동이나 사랑에만 국한 된 문제일까. 물론 아닐 겁니다.

남편과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회사에서의 직업적 성공, 자식과의 관계에서 모두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제이지요. 다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예의"와 "솔직함"이 추가적으로 좀 더 필요할 뿐입니다.



일본의 NHK의 캐스터와 해설자의 말대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습니다.  숏 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는 실수 없는 경기로 분위기를 확 띄어 버렸지만, 김연아는 그것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반대로, 김연아의 경기 뒤에, 아사다 마오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운도 어쩔 수 없는 실력의 격차가 존재했던 셈인데, 아사다 마오는 인터뷰에서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미치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있어서, 4분 10초가 너무나 긴 시간이었어요"

20살의 나이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긴장과 최고의 성취 그리고 최고의 아쉬움을 맞본 두 사람은 둘 다 오늘밤 쉽게 잠들지 못하겠지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덕분에 저 역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올해 들어서, 공부나 연구없이 감각과 본능만 앞세우는 트레이딩은 후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자각을 뼈저리게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김연아의 발레 같은 스케이팅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체조 같은 스케이팅만 하게 되는 겁니다.



생각하기 싫은 두 달을 뒤로 하고, 다시 3월이 됩니다.  3월이 되자마자, 또 한살을 먹습니다.  불과 얼마 전 생일에 굉장히 우울한 전망의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좋은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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