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길에서 봉준호 감독님을 마주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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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달여전쯤, 이 게시판에서 etude님이 올려주신 보스톤에 봉감독님이 오셔서 마더를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을 갖는다는 글을 보고, 전 제 남자친구와 뉴욕에서 보스톤(편도 네시간 반)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저로선 한번도 못가본 보스톤 구경도 살짝하고,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고 그 지역에 사는 친구들도 만날까 싶어서 말이죠.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봉준호 감독님 영화의 팬. 아직도 못 본 마더를 극장에서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2주전쯤부터, 지인들의 생일 파티, 일, 학교 프로젝트, 친척 방문 등등, 서서히 먹구름이 끼더니, 우리가 과연 봉감독님과의 대화를 위해 뉴욕에서 보스톤에 가는게 현명한 것일까를 토론하기 시작, 바로 오늘 낮까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급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니, 보스톤에 가는건 무리이다,로 결론을 잡고 있던 중...

저녁 여섯시반경, 남자친구는 뉴욕에 있는 다른 한국인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봉준호 감독님이 이번주 내내 뉴욕에 있었고, 브루클린의 BAM이라는 극장에서(집에서 지하철 타고 15분거리...)특별전을 갖고 있으며, 어제 마더의 상영회가 있었고, 그 이후에 감독과의 대화도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저는 거의 벽에 머리를 찧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과 직접 대화를 나눌수 있는 기회라면서, 어떻게 그 사람 스케줄 검색한번 해볼 생각을 안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그제서야 설마 학생들로 운영되는 하버드 아카이브에서 딱 한번 상영회를 갖기위해 미국까지 비행기타고 날라오셨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더군요.

8시 반, '괴물' 상영이 끝난 후 예정된 감독과의 대화를 혹시라도 참여할 수 있을까 싶어서 BAM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티켓을 끊어야 들어갈 수 있다더군요. 티켓은 12불. 만오천원돈.
가난한 학생 입장에서 벌써 수십번은 본 영화를 위해 또 돈을 내야 하나 망설이다가, 바로 2주후면 뉴욕 극장들에 마더가 걸릴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너무 아쉽지만, 이번 기회는 포기하고, 이 돈 아꼈다가 마더 개봉하면 보러가자고 결심하고 극장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집에가서 모던패밀리나 보자며 지하철 역으로 걷고 있는데...

봉감독님을 마주쳤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일행분들과 걸어오시더군요. 살이 조금 빠진것도 같았는데, 반사적으로 크게 "감독님 안녕하세요!"를 외쳤습니다. 봉감독님은 브루클린 한복판에서 갑자기 한국말로 인사를 받아서인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예" 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시고. 한참 대화중이던 남자친구는 갑자기 얘가 왜 한국말을 하지 싶어서 날 쳐다보고, 봉감독님을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상황 파악. 이미 감독님은 극장 쪽으로 총총 걸어가시고...

아아, 그래도 보스톤까지 가지 않고도, 티켓 안끊고도 감독님 만났으니 된거라고 스스로를 계속 위로했지만, 마더를 볼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나서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하니 꿀꿀하더군요.

왠지 이곳에 이 글을 올리면, 그 일행중 한분이라도 혹시 보지 않을까 싶어서, 감독님께 인사남겨요.

봉 감독님 뉴욕 한 주 동안 잘 여행하셨길 바랍니다. 눈 많이 왔는데, 신발 안젖게 잘 걸어다니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저 싸고 맛있는 음식점 많이 아는데...다음에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참, 그리고 머릿결은 조금 관리하시는게 좋을것 같더라구요...
마더는 거의 일년을 불법다운로드의 유혹을 참고 견디고 있으니까 뉴욕에서 개봉하면 꼭 큰 스크린에서 집중해서 볼게요. 미국인 친구들 많이 꼬셔서 같이 보러 갈게요. 보스톤 잘 가세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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