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노동과 여성

  • 김고양
  •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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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출산율 저하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보건복지부의 눈물겨운 노력부터, 낙태를 본격적으로 적발 처벌한다느니 하는 협박까지, 정부는 가임기 여성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고안해내느라 바쁩니다.



출산은 한 나라의 생산인구, 즉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바람직한 방법이겠죠. 현재 한국의 생산인구수가 조사 이래 최하 수준이며 이른바 '일본형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뉴스 등이 보도되고 있는 걸 보면 출산 장려가 정말 시급한 과제인 게 타당해 보입니다.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이겠죠.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고안된 수많은 정책과 지원책을 적용하는 모양새가 마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당근을 휘두르며 채찍을 입에다 쑤셔넣는 꼴로 보인다는 겁니다.



다자녀 보조금 지원이나 보육원의 증설,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를 낳은 자에게 승진 가산점을 주거나, 직원들을 강제로 일찍 귀가시켜 부부끼리의 시간을 늘린다는 계획, 약간은 갸우뚱해지지만 그 기발함에 넘어가 준다고 칩시다. 어쨌든 임신 기회를 늘리고 육아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는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낙태 처벌안 쯤 가고 보면 정책을 집행하는 자들의 머리속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무턱대고 애 낳으라고 다그친다고 사람들이 따라갈 거라 생각한다니,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착잡할 따름입니다. 음성적인 낙태시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처벌 기피로 인해 출산율이 약간 상승한다고 해도,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가 그만큼 증가할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지요.



극히 일부의 제반시설 확충이나 윽박지르기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 아닐까요? 노동시장 내에서 여성에 대한, 나아가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출산율은 더욱 떨어지고 생산인구는 더욱 감소할 것이며, 그 결과 불경기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겁니다.



여기 좋은 기사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얼마 전에 보도대상을 수상한 한겨레 21의 '노동 OTL' 중 한 꼭지입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09년 3월)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남자 비정규직은 402만 명(43.2%), 여자 비정규직은 439만 명(64.9%)이다.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비정규직 임금은 49.7이고,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39.1에 불과하다. 이처럼 여성
비정규직의 가슴에는 ‘여성노동의 빈곤화’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다.

특히 김유선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 측면에서 미혼자는 남녀 간 차이가 거의 없지만, 기혼자는 큰 격차를 보인다. 즉,
기혼남자는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39.1%인 반면, 기혼여자는 그 비율이 69.3%나 된다.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혼여성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성차별적인 저임금 비정규직이 ‘기혼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표면상 성차별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이윤을 남겨줄 수만 있다면 자본은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거대한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기혼여성 노동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거짓말과 그 성차별적 성격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다."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애쓴다?  
                             [2009.10.16 제781호]발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혼자는 어느 쪽이든 비정규직이기에 결혼이 힘들어지고, 기혼 여성은 더 나아가 노동의 빈곤화로 인해 출산 및 추가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겠죠. 이런 상황에서 아이 셋을 낳으면 보조금을 지급하든, 육아시설을 늘리든 그 효과는 분명히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을 겁니다. 생계의 수단이자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노동'을 시급히 개선하지 않으면요. 여기 저기서 주워 읽은 남녀평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만 보아도,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불만보다, 임금이나 승진에서의 차별 같은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이 월등히 많아졌다는 것을 보면 여성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비정규직이고,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희망 하나로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이런 현실에는 기가 막혀서 한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출산을 막연히 무서워하던 저 역시 세상 맛을 보면서 '이성적, 합리적' 판단 하에 기피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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