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스포일러 있습니다)
5시 반 좀 넘어서, 어찌저찌 일이 좀 일찍 끝나겠다, 싶었는데 문득 시간을 잘 맞춰 보면 밀크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더라구요. 후다닥 일을 마무리 하고 거의 뛰다시피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대체 내가 왜 이 수선을 떨며 이 영화를 보러 왔을까, 시시해 빠진 스트레이트가! 차라리 인 디 에어를 볼걸,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남자들의 키스 씬에 흘러 나오던 나즈막한 한숨 소리라던가 벌떡 일어서 나가버리던 커플이라던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벌떡 일어나서 "야, 얼른 가자. 나, 파스타 봐야돼."라고 말하는 관객들을 보는 것은 영화와는 별개로, 재미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한 4일 동안 금 카페인 상태다가 갑자기 커피를 석잔을 마신 탓인지 정신이 하도 말똥말똥 해서 자는 건 포기하고 잡담이나!
1. 밀크
정말 하비 밀크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모 밀크씨인가요? 처음에 기사 같은 데서 구스 반 산트가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이었던 하비 밀크의 생을 다룬 영화를 찍는다, 라는 걸 보고서는 뭔가 예명같은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2. 씬
(영어가 짧아서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가 더 문제이긴 한데) 정확히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하비의 연인 스콧이 하비에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라는 말을 하는데 'new scene'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문득 궁금해진게 원래 씬이라는 단어가 어떤 환경이나 그 환경을 커다란 풍경으로 비유해서 쓰는, 평범한 표현인가요? '1990년대 홍대 인디 씬에서...'라는 문장이 잘 이해도 안가고 마뜩찮아서 괜히 잡지에서 음악에 대한 기사를 못 읽고 그랬던게 문득 기억이 나서요. 특히나 '씬'이라는 단어는 대중음악을 설명하는 글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럼 혹시 음악에 관련된 용어 인가요?
좀 뜬금없지만 영화를 보다가 기억이 난거라 써봅니다. 왜 그런지 생각 해봐도 설명할 도리가 없어 곤란하긴 합니다만, 저는 '무심한 듯 쉬크하게' 보다 '씬'이라는 말이 훨씬 싫었습니다.
3. 정치
지금은 PC하다, 라거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라던가, 하는 고급한 단어를 주워섬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만, 꽤 옛날에 우연히 남자들의 키스를 가까이서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장에는 놀랐다고 하더라도 평등이 단순히 인종간이나 미국 - 제 3세계 간의 문제 뿐만아니라 사랑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수 있을 만큼 똑똑치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런 지적을 해줄만한 주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마이 어렸잖아, 호모포비아 안되고 뒤늦게나마 스스로 깨우쳤으니까 얼마나 장해,하고 아주 뻔뻔하게 자부하고 있습니다...는 농담이고, 그 뒤로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어렸다지만 스물을 넘긴 나이었고, 기본적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그 기본과 일상을 연결할 줄은 몰랐죠. 눈앞의 남자들간의 진한 키스와 책 속의 평등이라는 단어와 연결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밀크는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생각 해요. 평범히 사랑하고 살고 싶었는데 직장을 잃어야 하고 테러를 당하는 일상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연결 시킨 사람이니까요. 밀크의 경우는, 어쩌면 해야 할 일이 목숨을 지킨다는, 너무 명쾌하고 극단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혹은 영화 속에서는 밀크의 상황을 그렇게 단순화 시켰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 아니냐,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일상 속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닙니다.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서야 비 인간적인 재 개발 사업을 재고하는 척이라도 하게 되었다, (이거 주어를 뭐라고 해야 하나요. -_-;) 라고 요약, 정리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출퇴근 할때 미치겠다, 시위하는 사람들 스피커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멍해, 하고 투덜거리던 용산에 회사가 있는 지인은 어떻게 거기까지 이를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일상과 정치의 연관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좋은 정치인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 해봅니다.
4. 형제.
좋은 영어를 공부할 때 연설문을 많이 공부한다던데, 밀크의 연설도 별 복잡한 말도 없이 좋은 말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자막에는 '형제들'이라고 나왔습니다만 그저 people이라는 단어가 쓰이거나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정치적인 이유로 그 의미가 바뀐 단어인 형제라던가 동무라던가, 하는 단어들이 생각 나서 좀 궁금해졌습니다. 정치인들만 유달리 많이 쓰고 평소에는 좀 잘 안쓰는, 그러면서도 평범한 말 미국에도 많을 텐데, 뭐가 있을까.
그나저나... 토스카에서 주인공을 처형한 병사로 나온 조연들이 우왕좌왕하다가 프라마돈나를 따라 성벽에서 폴짝 폴짝 뛰어 내렸더라...하는 이야기는 닥터 스크루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음악 잡지에서 유럽 어디 페스티발에서 급히 학생 합창단인지, 시골 성가대인지를 불러다가 주인공을 처형하는 병사를 시켰더니 그랬다는 이야길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 진짤까요?
그나저나.2. 여전히 잠 안옵니다. 회사원이! 어쩔라고 이럴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