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와 코드명

  • Diesel
  •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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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는 블로거는 자신의 80%에 해당하는 사적 정보들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는 그러한 A의 나머지 20%를 그 80%를 통해 추리해내죠. 그리고 A의 정체를 추측합니다.
아마 프로파일러가 분석해낸 A는 A가 아니라 'A-1'쯤 될겁니다. 우리는 이 A-1이 A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고,
프로파일러 역시 확신할 수는 없을거에요.
A-1을 구성하고 있는 20%의 정보는 허구니까요. 어쩌면 A가 감추고 있었던 20%는 나머지 80%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정보일지도 모르죠.

A-1을 완성한 정보인 A의 80%를 제공한 것은 A 자신입니다. 따라서 이 A-1은 A가 의도한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죠.
그렇다면 A-1의 허구성은 A의 책임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건 프로파일러의 몫이죠. 따라서 조금 영리한 A는 확실한 일관성을 가진 80%의 정보만을 추려내어
프로파일러에게 노출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진실은 때로 특정한 형태의 거짓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패턴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바로 싸이월드입니다. 얼마나 일반적인지 이제 우리는 대충, 소위 말해
'D'라는 코드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배경음악으로 DJ 카와사키나 제이슨 므라즈의 히트곡을 깔아놓고,
슬리브리스 원피스 차림에 포니테일을 한 속눈썹이 긴 여자가 패티큐어를 바르고 있는 그림을 배경그림으로 깔고,
조르디 라반다 스타일의 아이템 사진들을 몇장 올려놓고, '내' 폴더에는 스니커즈를 신은 내 발 사진,
쇼빙팩을 메고 걸어가는 내 뒷모습 사진 등을 업로드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음악과 배경사진과 내 부분사진들과 색감은 100%의 나에서 부분부분을 조각내어 재조립한 '나-1'이자 'D'이죠.
물론 '나-1'의 확장형은 '나'가 아닙니다. 의도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D'와 '나'의 교집합만을 골라내어 노출했으니
프로파일러의 머리속에서 완성되는 나의 그림은 'D'가 될겁니다. 성공입니다.


많은 블로거들이 싸이월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의 대부분은, 이제 이런 조작이 너무나도 얄팍하고
이미 대중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다 드러난 마술인 셈이죠. 그래서 싸이월드같은 적극적인 이미지 조작에서
속고 속이기 게임이었던 유저와 프로파일러간의 관계는 이제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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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프로파일러들은 프로파일러인 동시에 블로그 유저입니다. 사실은 대부분이 그럴겁니다.
그 사람들은 A가 제공하는 80%의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 심어놓은 20%의 코드만을 파악하고 분석하죠.
핫도그 속의 막대기, 연필의 심에 해당하는 A라는 캐릭터의 반응패턴을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파악이 끝나면 프로파일러는 대충 A에게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A가 내보일 반응을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프로파일러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런 프로파일러는 아까의 일반적인 패턴보다 조금 더 '진짜에 가까운' A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20%의 A를 확대시켜놓으면, 오히려 A가 의도했던 A-1이 아닌 A에 근접할테니까요.

그러면 비로소 이 우수한 프로파일러는 완전한 A를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 95%쯤의 신뢰도를 가진 완성형일 거에요.
하지만 역시 100%의 A는 아닙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 프로파일러는 충분히 만족할 겁니다.
적어도 그의 분석욕은 채워졌겠죠.


그렇다면 이런 피곤한 정보의 제공과 분석의 되풀이는 애초에 왜 시작하는 걸까요.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칭찬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물론 정답은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양상은 상대방의 캐릭터를 완성형으로 결론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귀속합니다.
즉 A가 보여주는 80%의 A는 몸의 20%가 베일에 가려진 모양새고, 이런 불완전한 형태는 프로파일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호기심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욕구는 마치 컴퓨터에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상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순간
자동적으로 A의 정체성에 대한 결론을 내놓으려 하니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프로파일러 자신이 갖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 중 하나에 A를 우겨넣는 겁니다. 80%의 A가 다 맞아떨어지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면 훨씬 쉽겠죠.
문제는 프로파일러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가 그리 많지 않거나, 혹은 A가 제공한 80%의 정보가 서로 모순되어
다 들어맞는 캐릭터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 와중에도 프로파일러의 본능은 계속해서 빨리 A를 정의내리라고 부추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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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K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은 다섯 개 밖에 안됩니다. 불쌍한 A는 그들 중 하나에 끼워맞춰져야 하죠.
물론 A가 제공하는 80%의 정보 중 몇몇은 K의 스테레오 타입 중 누구와도 맞지 않습니다.
이때 K는 선택합니다.
그 정보를 무시하기로요. 그리고 가장 A에 가까운 타입 하나를 골라 A라고 결정내립니다.


반면에 프로파일러 J는 자신이 가진 스테레오 타입 중 누구와도 A가 내놓은 80%가 일치하지 않자,
A의 정체성을 물음표로 정의합니다.
'?' 이렇게 생긴 스테레오 타입이죠. 물론 이때부터 이 물음표는 J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함, 즉 이 불편함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 두려움일 겁니다. 월스트리터들이 '나쁜 미래보다 무서운 건 불확실한 미래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상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응이 나올 지 알 수 없는 미완성의 상대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죠. 그래서 기계적으로라도 상대를 정의하고 틀리더라도 반응을 예상해둬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걸 써먹을 일은 별로 없지만요.



그런데 J가 A를 물음표로 내버려두는 것은 또 무엇때문일까요. 저는 아직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건 A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고, K같은 프로파일러들에 대한 경멸에서 나온 버릇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A를 포함해서 누구건 간에 K보다는 J와 같은 프로파일러에게 노출되는 편을 택할 겁니다.
말하자면 J는 심판하지 않는 관중인 겁니다. 만약 모든 프로파일러가 K와 같다면 A는 아마 비난은 피해갈 수 있을지언정
동시에 따분할 스테레오 타입 중 하나의 페르조나를 뒤집어 써야 했을겁니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글루스의 이오지마나 네이즐의 희생양이 되느니 그편이 나을테니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경계선이 존재합니다. 바로 관객, 그러니까 프로파일러를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죠.
프로파일러를 K로 정의하느냐 J로 정의하느냐는 A의 선택입니다.


저는 K로 정의한 A도 알고있고, J로 정의한 A도 알고있습니다. 확실히 후자쪽이 훨씬 더 재미있고,
더 많은 퍼센테이지의 사적 정보를 노출하고 있죠. 그래봤자 자신은 물음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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