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 홍루몽vs 일본고전 겐지 모노가타리.

  • 소상비자
  •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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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청계출판사 버전의 12권짜리 홍루몽을 사 한번 훑어본 이후,
지금은 벌써 다섯 번째로 읽을 만큼 홍루몽의 세계에 푹 빠졌습니다.
영상으로 옮겨진 걸 보고 싶어 임청하 주연의 영화 '금옥양연홍루몽'도 몇 번째로 명장면 중심으로 보고,
1987년에 나온 중국 CCTV판 드라마도 구해서 명장면(주로 가보옥-임대옥 장면) 중심으로 훑고 있으며,
올해 안엔 방영이 될지말지 모르겠는 신판 홍루몽 드라마 예고도 보며 갈증을 달래고 있죠ㅠㅠ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던 마오쩌둥의 말을 충실히 수행 중입니다.
(중국의 봉건적인 요소를 죄다 타파하고자 했던 마오가 겉보기만으론 부르주아들의 먹고 놀자판 얘기인 홍루몽엔 관대했는지 희한합니다만;)

읽을수록 몇백 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에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개성을 불어넣은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삼국지처럼 스펙타클한 장면들도 없고, 영웅들이 나와 한가닥 하는 것도 아닌,
한 가정의 소소한 일상과 평범한 인간군상들(어떻게 보면 찌질하기도 한)이 찧고 까부는 일상사가 이렇게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전 사실 춘향전이나 숙향전 등의 '무슨무슨 전' 류의 이야기에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어요.
내용은 그렇다치고라도 문장이 술술 읽히고 책장이 휙휙 넘어갈 만큼의 몰입도 느끼지 못했죠.
배비장전이나 이춘풍전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개는 엄친아 남자주인공과 엄친딸 여자주인공이 전생에 하늘나라 선관선녀였는데,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 인간세상에 귀양 와 어쩌고저쩌고 시련을 겪다 만나서 해로하고 끝.
(주로 남자주인공은 승상을 넘어 국공, 군왕급으로 승진하고 여자는 정렬부인쯤은 가볍게 되주더군요;)
글쎄.. 유충렬전이나 장국진전같은 군담소설 같은 경우도 재밌게 읽진 못했군요.

아무튼 홍루몽의 경우는 한 일족의 이야기임에도 등장인물은 오지게 많아 처음 읽을 땐 가계표 안 보면 도저히 인물 관계가 이해가 안 되고,
등장인물들도 말 못해 죽은 귀신 붙었는지 엄청나게 말이 많으며,
깨놓고 먹고 놀자판 얘기이니만큼 주인공 가씨 일족의 집치레나 명절 쇠는 풍경, 먹거리, 의상 등등의 묘사가 심하다 싶을 만큼 세세합니다.
주인공들이 읊는 싯구, 술자리에서의 주령, 노래 등도 많아 원문까지 제대로 읽자면 시간 깨나 잡아먹죠.
그런데도 재미있어요.
뭔가 인물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인물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개성과 생기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겐지 모노가타리의 경우는...
제가 원래 일본 고전을 안 읽어 버릇해 익숙지 않아 그런지, 번역이 심심하게 된 건지,
아님 원래 재미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홍루몽을 읽을 때만큼의 재미가 느껴지질 않아요.
같이 말이 많아도 홍루몽에서 왕희봉이나 가모 등이 주절주절 얘기를 풀어놓으면 막 웃으면서 봐지는데,
1권 초반부에 나온 '달밤의 품평'을 보면서는 '왠 남자들이 이렇게 말이 많아-_-' 싶은 것이..;;
그러니까 행동이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해놓은 게 아니라 후딱후딱 넘어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깐.. 제가 평소 다른 고전을 읽을 때의 그 느낌 같습니다.
왜 이런 장면은 보통 더 세세하게 그려낼 거 같은데, 이렇게 후딱 넘어가지? 싶은.

게다가 각 작품의 남자주인공들 모두 작품 내의 여성 캐릭터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만나는 여자마다 '일단은 베드인'인 겐지보다, 타고난 치정의 소유자로서 정신적으로 음란한,
의음(意淫)의 인물인 가보옥이 제 취향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만한 미덕과 가치가 있으니 이 작품도 고전의 반열에 들어 회자되는 것이겠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재미'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네요.
혹시 겐지 모노가타리 읽어보신 분들은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셨나요?


덧. 도서관에서 3권까지 겐지 이야기를 빌려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완역 금병매'나 빌려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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