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스포) / 닉 변경 : 모나드
아주 좋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장점이 많고 미덕도 많은 만큼 아쉬운 구석도 꽤 있었습니다.
주제나 의도와 태도는 진지하고 좋은데 에피소드들이 조금은 성의가 없지 않나 싶더군요.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그 남편될 사람의 갑작스런 어리광과 그 주변인들의 대처가 별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느껴져서 꽤 도구적인 에피소드 같았습니다. 게다가 별로 일리가 없어보이는 클루니의 설득에 단박에 넘어가는 새신랑을 보고 더욱 그렇게 느껴졌죠.
물론 그 심경변화란 게 단순히 어리광일 뿐이기 때문에 큰 설득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했다기 보단 그저 손을 잡아끌어주는 어른이 필요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울림이 너무 없더군요. 그 울림이란 바로 다음 에피소드, 클루니로 하여금 강연까지 포기하고 파미가의 집으로 불쑥 찾아가게 만드는 힘과도 연결되고, 새신랑과의 대화를 통해서 가족과 관계에 대한 보다 나은 대답을 스스로 발견하는 순간인 만큼 뭔가 뻑, 하고 와닿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평이하고 안일한 대화가 오갈 뿐이더라구요.
이것도 물론, 재론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여느 때처럼 똑같은 대화를 하고 일반적인 경험을 겪더라도 어느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극적인 순간이나 명상적인 깨달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사고의 국면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원인체는 반드시 극한의 상황이나 특이한 경험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의 재발견을 통해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순간을 묘사할 때는 두가지 중 하나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의 짜임새와 작법의 견고함으로 승부를 볼 경우, 아귀가 딱 들어맞는 에피소드들의 충돌과 화합, 그리고 작위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창의성과 밀도가 높은 대사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일상적이고 물흐르듯 흐르는 전체적 분위기 속에서 감성을 터치하려는 경우, 그에 걸맞는 매우 섬세하고 성실한, 보편의 일상에서 어떠한 정수를 뽑아내는 대사나 묘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대사없이 그저 상황만 보여주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죠. 그것도 꽤 잘 먹히는 방법이고요.
어쨌든 제가 보기에 인 디 에어는 둘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밋밋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장면의 마지막 부분, What should I do? / Go get her. / 이렇게 대사를 마무리하고 바로 이어서 클루니의 누나가 문밖에서 흐뭇하게 환한 미소를 짓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위 두가지 경우 중 전자에 해당하는데 정말 전형적인 Coda종결입니다. 전형적이라는 것이 문제될 건 전혀 없는데, 그에 앞선 대사들의 깊이가 종결을 맞으면서 공수를 주고받고 시너지를 내는 매커니즘이니까요. 문제는 계속해서 언급했듯이, 분위기는 뭔가 있는 척하거나 뭔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풍기는데 한마디로 아무 것도 느끼질 못해서 입맛만 다시게 했던 게으른 설득의 대사였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저의 개인적인 취향이며, 아무래도 결혼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있는 저를 설득해줄 딱 좋은 에피소드라고 느꼈음에도 저 스스로를 별로 납득시키지 못한 클루니와 그의 대사에 대한 원망도 조금 어려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뭔가 있는 것 같다고 끄덕거리는데 저로서는 전혀 와닿지도 않고 참신하지도 않았던 대사는 강연장면에도 역시 해당합니다. 아무리 후반부에 가서 그 세계관과 논리를 벗어던지게 되는 'casual'한 삶의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소개되는 당시에는 좀 더 그럴듯 해야할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강연자는 아니더라도, 전문직업인으로서의 힘과 논리, 확신이 있는 강연 정도는 되어야 했을텐데요.
또다른 에피소드. 클루니가 파미가에게 여동생의 결혼식에 같이 가달라고 말하려고 갑자기 다른 비행기를 잡아타는 시점도 좀 뜬금없게 느껴지더군요. 그 시점이 눈에 띄는 음악까지 사용하면서 클루니의 심경변화가 확연하게 시작되는 구성점인데 그게 왜 갑작스럽게 느껴졌을까요. 그전의 에피소드를 좇아 보자면, 실연 당한 안나 켄드릭과 파미가, 클루니가 파티를 즐기고, 파미가는 일 때문에 떠나고, 켄드릭과 클루니가 사진을 찍다가 연애관 차이로 다투고, 디트로이트로 가서 또 한 명을 해고한 뒤 이제 돌아가려는 공항에서 벌어지는 심경변화입니다.
파티하던 밤에 파미가와의 애틋한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고 하더라도, 켄드릭과 다른 연애관을 내세우며 다툴 때에도 실은 작은 심경의 변화가 이미 시작중이었던 것이라 해도, 디트로이트의 황량한 풍경과 실직자의 눈물이 어떤 화학적 촉매가 된 것이라고 해도, 이 모든 것들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아 이쯤해서 저렇게 변화가 시작되고 파미가에게 뛰어가야 영화가 진행되겠구나,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원작 소설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심리적 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는 뭔가 부족한 느낌에 입맛을 계속 다실 수밖에 없더군요.
어쩌면 이런 느낌의 영화, 잔잔하게 흐르며 인생의 깊은 곳을 터치해주고 쓴맛도 보여주며 코미디로서도 매력적인 그런 영화를 심심찮게 접해와서(이를테면 어바웃 슈미트 같은) 2%의 부족함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모양새가 단점만 지적한 꼴이 되었는데, 단점이라기보단 개인적으로 조금 부족했다거나 아쉬웠던 부분들을 짚었던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파미가가 그런 역할로 영화에서 자리를 비울 것을 이미 짐작했지만 이후 클루니의 쓸쓸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천만 마일리지 달성과 다시 파견직을 시작하는 등의 장면이 바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관계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과 설교가 아니라, 덧없는 관계의 한 측면을 가감없이 보여준 다음, 불확실한 믿음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그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떠나보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사소한 궁금증.
해고전문가라는 직업이 실제로 있는 거라 들었는데, 켄드릭이 제안한 화상서비스도 실제로 진행된 적이 있거나 고려된 적이 있을까요.
사내에서 상사가 직접적인 감정노동을 하는 대신, 보다 우아한(?) 방식으로 일종의 서비스를 해주기 위해 고용하는 것일텐데, 그게 화상서비스로 진행된다면 굳이 비용을 지불하고 그런 서비스를 이용할까 싶습니다. 실제가 아니라 영화속의 도구적 장치라고 해도 이해가 전혀 가지 않네요. 그 제안을 받아들인 상사도 이해할 수 없고요. 잠깐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않나요. 그게 가능하다면 화상대화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녹화된 동영상을 보여주기만 해도 되겠어요.
아무튼 이 부분이 전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몰입에 방해된 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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