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의 아카데미상 싹쓸이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여성감독 수상, 최초의 이라크전 소재 영화 수상 등 여러 이슈가 각종 미디어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한 가지 부분이 잘 안 다뤄지고 있다. ‘허트 로커’는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가장 돈을 못 번 영화라는 점이다. 흥행기록이 체계적으로 집계된 후부터 따져도 다르지 않다. 환율변동을 감안했을 때 지난 51년 중 최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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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 ‘허트 로커’는 애초 그 정도 수익만 벌어들일 영화다. 성격 자체가 그렇다. 신나는 전쟁 영웅담이 아니다. 반전을 부르짖는 화끈한 사회파 영화조차도 아니다.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이라크 전쟁 상황에 사이콜러지컬한 분석을 가했다. 전쟁의 긴장에 중독돼 무감각해진 병사 이야기다. 아예 영화 첫머리에 “전쟁은 마약이다”라는 자막이 뜬다. 건조하고 신경증적이며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는다. 시장 성향에 맞춰 분류해보면 해외 예술영화와 유사하다. 그리고 딱 해외 예술영화 히트작 정도 돈을 벌었다. 마땅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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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질문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상의 방향성이 달라진 건 자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방향을 틀었느냐는 것이다. 왜 기존 대중친화적 방향, 할리우드 문법에 충실한 영화들을 버렸느냐는 것이다.
단순한 답이 있다. 심사위원단의 변화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단은 곧 AMPAS(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회원이다. 현재 회원 수는 5777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 5777명은 평생 그대로가 아니다. 신세대가 순차적으로 밀려들어오고, 구세대는 사망 등의 연유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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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다분히 긍정적인 변화다. 어찌됐건 진보적 태도란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방향 전환으로 대중과의 접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이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믿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원하던 영화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생경하고 성찰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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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AMPAS 회원들, 1990년대 키드들이 계속해서 비주류적 영화를 미는 까닭은 뭘까. 아마도 할리우드 황금시대 1970년대를 재현코자하는 의도일 수 있다. 1990년대 인디영화 열풍도 당시 ‘1970년대 황금기의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는 확실히 남달랐다. 최강의 광고탑 아카데미상의 호위 아래 가장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이 전체 대중취향을 바꿔냈다. 비평계와 대중이 합일됐다. 그 추진력으로 미국이 영화 장르 진화의 첨병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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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의도는 부질없다. 197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 미국대중문화 진화는 산업 자체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히피세대 등장, 68혁명, 베트남전 발발 등 갖가지 사회적 요인이 바탕이 됐다. 이를 21세기와 같이 놓고 보긴 힘들다. 이라크전은 베트남전과 다르고, 인터넷혁명은 68혁명과 다르며, 히피세대는 금융위기 후 등장한 신(新) 잃어버린 세대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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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의 딜레마는 한국 입장에서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 대종상의 흥망도 이와 유사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종상 흥행효과’라는 단어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대중과의 괴리가 발생했다. 영화산업의 혁신을 요구하는 대중 분위기가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게 실망감이 더해지자 ‘애니깽’ 스캔들 하나로 삽시간에 무너졌다. 자멸한 셈이다. 그리고 이후 그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광고탑은 나오고 있지 않다. 대부분 대종상과 유사한 딜레마를 지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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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아카데미상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산업에 있어 ‘상’의 역할은,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모르고 쓰면 그저 절구공이지만 알고 쓰면 요술방망이다. 현존하는 각종 영화상의 시급한 궤도수정과, 기획 중인 신설 영화상의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코드는 ‘대중’이다. 그게 싫다면, 그저 회의실 하나 빌려 태극기 걸어놓고 박수 치며 ‘그들만의 잔치’를 열면 된다. 선택은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