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미자를 보고 어떤 분들은 미자가 너무 연약하고 순수해보인다거나,
옆에 지켜줄 사람조차 없어서 영화 보는 내내 불안했다고도 하셨는데요,
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의견들이 잘 이해가지 않더군요.
제가 본 미자는 마음, 감성은 순수하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젊은 날에는 나름 영민했고 별꼴 다 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소위 "순수성"을 잃지 않은 몇몇분을 저도 잘 알죠.)
물론 여기서 "별꼴"이라는 게 머리끄댕이 잡히고 일에 시달리는 거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중간 중간 꽃을 보고 한눈파는 장면들도,
미자가 굳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정신을 놓은", 혹은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영화 속에서 미자가 맞는 위기들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 중 가장 큰 위기이자 갈등은 희생자 엄마와 조우하는 두 번의 순간이었구요.
(이 두 장면 보면서 "감독님 참 독하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손자의 일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마음아파하기는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미자는 끝까지 상황을 자신이 통제하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희라를 찾아가는 후반 세번의 중요한 방문만 생각해봐도
세 번 다 남에게 휘둘리기는 커녕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상대방을 오히려 자신이 휘두르고 있었죠.
어떤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저 할머니 뻔뻔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내상에게 시기를 계속 미루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도,
김희라에게 "그렇게 생각하셔도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때도
비굴하거나 벌벌 떠는 것이라기보다는, 당당함과 차분함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마지막 장면에 미자는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시퀀스의 연출은 아무리 보아도 "미자는 자살했습니다, 끝"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도적으로 중요한 단서들은 생략하고 있으니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겠죠.
물론 이런 제 감상이, 연출자나 연기자의 의도와는 정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정작 "그럼 미자는 어디서 뭘 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도저히 모르겠어요.
언니네 집에라도 갔으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