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뒤에 절벽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하이킥 단상(스포유)

  • 익명
  • 03-20
  • 2,462 회
  • 0 건
1.  앞서 올려주신 씨네 21의 김병욱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사실 성장은 갖다 붙이기 나름인 말이에요. 어떤 드라마도 끝에 주인공이 성장 안하는 드라마가 어디있어요. 물론 연출의 의도가 성장에 있긴 하지만 하든 안하든 상관은 없어요. 실제로는 이 속에 허무같은 것이 들어있어요. (...) 운이 좋았으면 뭔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팍팍해요. 제 작품 속에는 항상 그런 게 있어요. 우리가 우연히 태어났고, 그냥 뇌라는 게 생겨 전기자극에 의해 생각을 하고 자의식이란 게 생기고, 세상이 우연으로 점철돼 덧없이 흘러가는데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는다는 게 부질없다고 느끼곤 해요. 신애가 아빠랑 상봉했다 다시 헤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숨바꼭질 술래가 되어 오십까지 세고 돌아설 때 화면이 정지해요. 그 뒤는 안보여줬지만 참 냉정한거죠. 어쨌거나 결국 허무에요.

<출처: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ghkick2&no=294784&page=1&search_pos=-291686&bbs=>

2. 확인하고 싶지 않아요. 한발만 헛디디면 절벽이라는 걸.
그렇게 생이 불현듯 급박하게 옮아간다는 것. 엎어져 버릴 수 있다는 것.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낮으니까
이 항상성으로 계속 이렇게 흘러갈거라고 믿고 싶었어요요.
내가 예측한대로 갈거라고 나는 똑똑하니까(?) 이렇게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다 생각해봤으니까
이중에 하나는 될거라고. 그렇게 맘편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늘.

하지만 어느순간 그토록 참혹한 순간들이 장막처럼 불현듯 덮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모든게 두려운 겁니다. 어느 순간 복면을 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불운이, 죽음이, 고통이
내 얼굴에 다시 보자기를 씌우고 모르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갈지 모르니까요.

천재지변으로 숨진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서
몇일전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모든 급작스러운 고통에 진저리치면서 밝고 무난하고 정상적이라 불리는 것들의 향기를 맡으로
코를 벌름대면서 더듬더듬 조명이 밝은 쪽으로 기어가게 되는 겁니다.


3. 그러다가 오늘처럼 발목을 잡히는 날에는 참 많이 우울합니다.
네 남녀의 오묘한 감정상태라든지 어느 라인의 존재이유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저는 그동안 별 상관없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세라인을 지지했지만, 그건 그저 짝사랑에 대한 습관적 연민과 공감때문이었을거에요.

사람의 감정은 깨진 엿가닥의 날카로운 조각들처럼 수십갈래로 갈라질 수 있고
갈라진다고 해서 그 감정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훈이 정음에게 느낀 감정과 세경에게 느낀 감정
또는 세경이 지훈에게 느낀 마음과 준혁을 생각한 마음이
모두 각각의 무게감을 가지고 한 인물의 내면에서 양립할 수 있는 것이라는걸
저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양다리다 , 어장관리다 이런 말들하고는 다른 영역에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지요.
그것은 오롯이 한쪽만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준혁의 마음과 대비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고 포기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그라 들 수 있다는 보편적 생의 명제를 확인한 마지막회라서...
정말 싫었습니다.
지난 7개월의 시트콤은 삶의 항상성, 예측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으니까요.
슬픈일이든, 기쁜일이든 우리는 한회한회를 보면서 그 회 안에서, 또는 전회와 다음회와의 관계안에서 예측가능한 삶이라는 명제를 재확인하였어요.
치고 박고 싸우고 위기를 맞아도 우리는 삶이 연속되어서 이어질 것이라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시트콤의 마지막은 그 일상성의 명제를 부수고 삶의 허무를 이야기하네요.

불현듯 엄습하는 미래는 언제나 제게 슬픔을 줍니다.
그것은 김병욱피디의 말처럼 허무일수도 있으며 공포일 수도 있고..
비루한 생명체로 살아가는 억울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4.세경이가 엄마병실의 트리 이야기 했던게 자꾸 자꾸 생각나네요.

게시판2004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37484 하이킥에서 슬픈 장면들.. 푸팡 3,049 03-20
137483 그러고보면 퇴마록 결말이랑 하이킥 결말이랑 약간 비슷 cancel 1,592 03-20
137482 지붕킥 신세경이 사실은 귀신? LiTo 3,845 03-20
137481 하이킥 결말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Jager 2,417 03-20
137480 하이킥... 죽은 게 아닐지도. clancy 2,210 03-20
137479 지붕킥 안녕 뽀로리 1,118 03-20
137478 하이킥의 결말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지만, 김병욱 PD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음 cancel 2,032 03-20
137477 지붕킥 결말을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한줄기 희망 브루스웨인 2,945 03-20
137476 헐..저도 지붕킥 볼걸그랬내요...(결말내용있음) 여은성 2,198 03-20
137475 세계 각국 가정의 식비가 나오는 책 misehan 1,454 03-20
137474 [오동진의 뷰파인더] 아! 조희문 tomk 1,363 03-20
137473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이 유명한 이유가 뭔가요? (스포일러있음) 야옹씨슈라 1,992 03-20
137472 62억원 들인 농촌 개발 마을 4대강 사업으로 수몰 위기 그로쏘 1,269 03-20
열람 한발 뒤에 절벽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하이킥 단상(스포유) 익명 2,463 03-20
137470 지붕킥의 결말은 이미 예고된 거였네요. soboo 4,758 03-20